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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인선 Feb 19. 2024

호떡집에 불이 난 이유

한국인의 쏘울 푸드 호떡의 역사


최근에 K-FOOD의 인기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K-길거리, K-스트릿푸드에 대한 관심도 높이지고 있는 상황(참고로 난 모든 한국 문화에 <K>가 들어가는 것은 싫어한다).


그래서 어묵, 핫도그, 붕어빵, 호두과자 등, 길거리 음식의 범주가 다소 제한적이었던 시대에서 이제 붕어빵 등은 프랑스로 진출, 크루아상으로 멋을 부리기도 하며,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세느강읅 건너 한강으로 돌아오는 시대까지 다가왔다.


한국의 대형 식품기업들 역시 길거리 음식을 자체 브랜드로 개발, 해외 각국에 수출까지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떡볶이, 핫도그, 김밥, 김말이, 붕어빵, 호떡 등이다. 이 6가지가 미주, 유럽, 아시아 등 주요국에 진출, 수출 효자 품목으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겨울철 대표 길거리 음식 중 하나가 호떡. 그렇다면 호떡은 언제부터 먹고, 그렇게 불려 왔을까?


호떡은 왜 호떡인가?

원래 호떡은 단순히 중국 전통의 음식이나 일본에서 유래했나 생각했다. 그런데 기원을 보면 중국에서 시작한 것도 아니며, 일본 문화 것도 아니었다. 한자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는데, 호떡의 호자는 바로 호떡의 ‘호(胡)’자는 한자로 오랑캐'호'자이다.


말 그대로 오랑캐의 떡. 고려시대부터 중앙아시아, 아랍, 그리고 북망 유목민족에 대해 오랑캐라고 불렀고, 한자로는 호인(胡人)이라고 표현했다.


즉, 호떡의 시작을 보면 북방민족, 중앙아시아가 만들어 먹던 떡에서 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실크로드를 통해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으로,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기원전 2 세라고 본다.


중앙아시아 사람들의 주식은 빵? 떡? 밥?

쌀보다 밀이 더 많이 생산되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흉노족, 선비족, 돌궐족 등 오랑캐들은 쌀 대신 밀가루를 반죽해 화덕에 굽거나 기름에 튀겨 먹었다.


기원전 2세기 무렵 한나라 때 흉노족의 왕자가 처음으로 중국 한나라에 호떡을 전한 내용이 전해온다. 후한서(後漢書) <오행지(五行志)>라는 책을 보면 서역의 풍속에 빠져 지낸 영제왕의 이야기가 나온다.

한나라 영제는 서역의 옷을 입고 호떡을 먹었으며 서역의 음악과 춤에 심취했는데, 이렇게 왕이 외국문화에 심취하자 황실의 친척과 장안의 귀족들이 모두 자의 반 타의 반 그 모습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호떡이 한나라 왕실을 중심으로 유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호떡 열풍은 당나라 때까지 이어졌다. 당나라 때 안녹산의 난으로 피난길에 오른 양귀비가 죽기 전에 먹었던 마지막 음식도 호떡이었다고 말할 정도다.


물론 이 호떡이 우리가 생각하는 호떡 하고는 많이 다르다. 갖가지 고기와 채소가 들어간 호떡으로 저렴한 길거리음식이 아닌 황실에서 먹기에도 전혀 손색이 없는 고급 요리였다.  


호떡. 출처 위키피디아


한국에서의 호떡 역사는?

한국 호떡의 역사는 가슴 아픈 구한말의 역사에서 시작된다. 바로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청나라 군인들이 한반도에 들어왔고, 이때 호떡이 소개되었다고 전해진다.


당시 청나라가 조선에 파병한 육군은 약 3,000명. 이때 수십 명의 청나라 상인들이 같이 들어오게 되는데, 이들은 청나라가 망한 뒤에도 본토로 돌아가지 않고 생계를 위해 만두나 호떡 같은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점차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 맞게 조리법을 변화시키며 호떡 안에 조청이나 꿀, 흑설탕 등을 넣기 시작했다.

중국식 야채고기 호떡에서 한국식 꿀 호떡으로 체질개선을 한 셈. 이러한 한국식 호떡은 인천 제물포에서 처음 판매되기 시작했고, 이후 화교들이 많이 밀집한 명동의 중국 대사관 주변이나 종로 거리 등의 도심에서 팔기 시작했다. 뜨끈뜨끈하고 달콤한 호떡은 이내 한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소울 푸드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한국에 파병된 청나라의 제독 정여창


호떡집에 불났다는 표현은 뭔가?

생각해 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시끌벅적하고 너무 시끄러울 때 붕어빵집에 불났다고도 할 수 있고, 김밥집에 불이 났다고 표현할 수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호떡집에 불났다'라고 할까?

바로 호떡이 핫한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유행하던 탕후루처럼 말이다. 1924년 기록을 보면 경성에 있는 설렁탕집은 약 100여 곳. 그런데 호떡집이 150개나 있었다고 한다.


당시 호떡 한 개의 가격이 약 5전. 일반 노동자의 하루 일당이 50~60 전이니 일당의 10% 정도다. 오늘날 최저 임금에 비유하자면 한 개에 7천 원 정도의 고급 음식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호떡집이 많았다는 것은 바로 장사가 잘 되었다는 것. 그래서 중국 호떡 가게 주인들을 둘러싼 시기도 많았고, 이렇게 호떡집에서 벌어진 사건, 사고를 다룬 내용이 자주 나온다.


호떡집에서 아편을 밀매했다는 기사. 1934년 9월 30일 동아일보


여기에 호떡집주인들이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고리대금업까지 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이러면서 몰래 아편까지 팔며 범죄의 온상으로 지목되기도 한 것이다.


결국 낯선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호떡 가게는 '불난 집처럼 시끄럽고, 어수선한 모습'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조선인은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어가 난무하는 호떡가게의 모습은 한마디로 '불난 것 같은 정신없는 모습'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또 실제로 진짜 불이 나기도 했다.


호떡집에 불을 냈다는 기사. 1925년 3월 6일 동아일보


이러한 상황에서 호떡집의 상황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으면서 결과적으로 '호떡집에 불났다'란 표현이 나오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푸드 트럭에서 파는 중국식 호떡은 무엇?

일명 공갈빵으로 불리는 중국식 호떡은 탕구훠샤오(당구화소 糖鼓火燒)라고 불린다. 중국 다렌지방의 빵요리로 속이 텅텅빈 빵. 이것은 호떡으로 불리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 와서 중국식 호떡으로 불리고 있다. 호떡이라고 하면 호떡이고 아니라고 하면 아닐 수 있다.


공갈호떡 이미지. 출처 나무위키
개인적으로 맛있게 먹은 호떡은?

군산 중동에 있는 중동 호떡이다. 1943년 개업한 이후 3대째 이어오는 호떡집인데 기름 없이 구워서 담백한 맛을 낸다. 일단 가면 은행처럼 대기표를 뽑고 기다려야 한다. 전국 5대 호떡집(?)이라고  불리고 있으며, 일반 호떡과는 달리 검은콩, 검은깨, 흑미 등 블랙푸드로만 가루를 내서 호떡 꿀을 만든다. 그래서 일반 호떡에 비해 꿀의 색이 까맣고 진하며 더 고소한 맛을 낸다.


스트릿 푸드에도 역사가 깊다

결국 무심코 지나간 호떡에도 깊은 역사가 있다는 것. 우리 것에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역사를 가진 음식이 많다. 앞으로 이러한 우리의 스트릿 푸드에 더욱 많은 관심이 모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https://youtu.be/nfYb8ySJjzo?si=usNaWUpYTgi7A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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