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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사 Aug 21. 2024

불안과 평온 사이

빚을 대신 갚아주지만 않아도


"빚을 안 갚아주면 이대로 죽으란 말이에요?"


"그래. 네가 싼 똥이니까 네가 치워야지, 어린애도 아니고..."



아들과 남편 사이에서 오가는 말이 무서웠습니다. 




대학졸업을 앞두고 발각된 아들의 도박문제는 손쓸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서야 차분하게 빚문제를 의논할 수 있었습니다. 갚아주지 않더라도 도와줄 수 있는 게 있는지 찾아보려고 했지만 별로 없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세 아이 모두 대학 마치면 일자리를 구해 독립하기로, 거기에 필요한 일정정도의 독립자금은 지원하기로 약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단 큰애를 내보내기로 했죠. 아들은 급한 대로 일자리부터 구했고 혼자 살 원룸도 구했습니다. 독립자금을 지키기 위해서 전세권설정등기를 해야 했는데 그걸 해줄 주인을 가깟으로 찾아.


10년 전 이렇게, 첫째의 독립은 등 떠밀리듯 갑작스럽게 진행되었습니다.


도박으로 인해 파생된 문제 속에서도 빚만큼은 대신 갚아주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의 단호함 때문이었습니다. 도박문제에 대해 배운 게 없고 GA의 존재도 몰랐지만. 아들의 애원, 원망, 좌절에도 꿈쩍하지 않는 남편이 서운할 때도 있었지만 그 덕에 부모에게까지 디밀어 대는 빚독촉, 협박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추심회사에서 우편물 집중포화로도 모자라 직원이 집까지(전세권설정등기가 엄마 명의로 되어있어서 우편물이 본가로 오고 있었음) 찾아왔습니다. 남편이 알려주는 대로 '다시 이런 식으로 하면 경찰에 신고하겠다.'라고 했죠. 그래서 그게 끝이 된 겁니다. 전혀 겁먹을 필요가 없다는데도 난생처음 겪는 일이라 가슴이 쿵쾅쿵쾅 했답니다.


한 번쯤 눈 감아줄 줄 알았던 엄마가 아빠의 지령?을 받고 냉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고 큰애는 야속해했을 겁니다. 허용적인 엄마에게 '틈'이 보이질 않았으니 얼마나 서운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그것 못지않게 엄마가 얼마나 속으로 약해지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해야 했었는지 과연 알기나 할까요.

 




"차라리 그때 죽었어야 했는데....."


기껏, 집에 와서 밥 먹고 돌아가면서 한다는 말이.

못 들은 척 돌아서서 한참을 울었습니다. 도박 사실을 알기 몇 해 전 심정지로 의식을 잃었던 적이 있는 큰애 입에서 나온 말이라 놀라고 두려웠습니다. 죽었어야 했다고, 죽고 싶다고, 죽는다고 하는 말이 가슴을 후벼 팠지만 그렇다고 해서 빚을 갚아줄 수는 없었습니다. 도박에 대해 상담을 받고 교육을 받고 배우면 배울수록 '빚에 대한 단호함'만이 아들을 살리는 방법임이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래, 죽기밖에 더하겠어.'

'어차피 죽는 거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뿐이라고.'

 

이를 악물고 돈을 갚아주지 않기 위해 버티는 것이 갚아주는 것보다 천만 배 더 힘든 것 같습니다. 말에 휘둘리지 말고 배운 대로 하자고 마음을 다잡고 다잡아야했습니다.






빚을 갚아주지 않으면서도 도박을 하는지 안 하는지, 빚은 제대로 갚아나가는지, 궁금하고 의심스러웠습니다. 병이 든 건 아들인데 그걸 보고 더 괴로워하는 엄마, 참 한심합니다. 아들앞에서는 아닌 척하고 뒤에서 혼자 걱정한다고 병이 낫는 것도 아닌데. 불치병을 가지고 괴로워해봤자 당사자나 가족 모두 불행할 뿐인데 말입니다.


아들은 월급을 날렸나 봅니다. 휴대폰 소액결제를 최대한 끌어 쓴 걸로도 모자랐나 봅니다. 사채를 끌어다 쓰고. 하다 하다 재택근무할 때 쓰라고 내준 회사 노트북까지 전당포에 맡기고. 안면이 있는 사람에게 여기저기 돈도 빌렸나 봅니다.

알고는 있지만 캐묻는 순간 네 문제가 아닌 내 문제가 될 것만 같아 피했습니다. 감당할 수 없으면 도망이라고 가야 하는데 저는 도박중독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런 마음이었는데 아들은 도박에 점점 더 빠져드는 것 같았습니다, 적어도 제 눈에는. 혼자 힘으로 안된다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정말' 모르겠더라고요. 도박에 미쳐있는 애한테.



하다 하다 신용불량자가 되고. 신용카드 없이, 신용거래 못하게 되고. 차라리 이렇게 된 게 낫습니다. 도박을 하느니 도박을 하기 힘든 상황이 된 게. 빚을 혼자서 감당해야 하니 벌이 한도 내에서 빚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갚아나가면 되는 것이란 걸. 10년 허송세월에서 배운 것이죠. 도박을 끊은 상태에서 충동을 잠재우며 근근이 살아도 괜찮다는 것도.





불청객처럼 걱정과 불안이 찾아오면 끌려다니지 않으려고, 물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습니다.


마구잡이로 읽고 닥치는 대로 쓰고 정처 없이 걸었습니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가기 마련이라지만 걱정과 불안이 쓰나미처럼 밀려올 때는 미칠 것 같았습니다. 그나마 몸을 움직이면 생각이 줄어들어 한결 견딜만해졌어요.





이런 티베트 속담있습니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다."


걱정에 대 들은 바대로 적습니다.

걱정의 40%는 현실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 30%는 이미 일어난 일, 22%는 매우 사소한 것이라는. 그리고 나머지 4%는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 마지막 남은  4%만이 내가 어쩔 수 있다는.

평온함을 청하는 기도/ Canva By 정여사


삶에서 내가 '어쩔 수 있는 것'은  4%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위대한 힘이여!

어쩔 수 없는 4%를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시고

어쩔 수 있는 4%만이라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나머지 92%는 온전히 당신 뜻대로 하소서.



<평온함을  청하는 기도>를 바꿔보면서 '어쩔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자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불안과 평온사이를 오락가락하다가도 잠시 이 순간 멈추고.



Tip

갬아넌 모임에서 가족에게 전하는 주의사항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반응 때문에 괴로워하지 말 것
다른 사람의 회복을 위해 우리 자신이 이용되거나 악용당하지 말 것
다른 사람이 할 일을 대신해 주지 말 것
다른 삶의 생활을 조정하지 말 것(먹고 자고 일어나는 것. 빚 갚아주는 것)
다른 사람의 실수나 비행을 감싸주지 말 것
만일 자연스러운 위기라면 막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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