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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여사 Sep 06. 2024

따로와 같이 사이

도박중독에 오염된 삶을 정화시키는 해독제, 갬아넌

책방에서 우연히 <손잡지 않고 살아난 생명은 없다>를 보는 순간 "손잡지 않고 회복된 중독은 없다."라고 제목을  읽었습니다. 단도박이나 회복은 혼자서 할 수 없기 때문이죠. 도박충동을 다스리고 도박을 하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당사자의 소관이지만, 자신의 의나 간절함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누군가 손을 잡아주고 끌어주지 않으면 도박병에서 헤어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단도박모임 GA에서 서로를 '협심자協心者'라고 부르나 봅니다.






단도박모임 GA(Gamblers- Anonymous익명의 회복 모임)


'도박을 끊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만 있으면 성별, 직업, 종교에 상관없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습니다. '중독성 도박'이라는 같은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도박을 끊고 회복의 삶을 살아가려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모인 '자조自助모임'입니다. 먼저 시작된 알코올중독 자조모임 AA과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그 밖에도 발달장애인 자조모임, 미혼모 자조모임, 사별자 자조모임, 만성질환자 자조모임 여러 종류가 있죠.


단도박모임 GA는 익명성匿名性과 비밀보장이 생명입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것도 모임에서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이 되는 거죠. 같은 이유로 단도박 잘하다가 재발이 되더라도 모임에 나올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도박중독자 가족모임 갬아넌Gam-Anon


환자 보호자는 자신보다 환자에게 초점을 맞추고 돌보는 게 되죠. 그런데 가족은 덩굴처럼 얽힌  감정덩어리라 자칫 잘못하다가는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기게 됩니다. 병시중 드는 가족 스트레스에 취약해져 몸과 마음이 상하기 쉽죠. 이것을 가족모임에서는 '가족병'이라고 부르는데 실제로 모임에 참석하는 가족 중에 '신체화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저도 그랬고요.

게다가 가족주의 문화가 뿌리 깊은 우리 사회가중되는 면이 있죠.


10년 전 아들이 처음 모임에 같이 가보자고 해서 갔습니다. 아들이 도박병에 걸렸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힘든데 '완치불가'대실망이었죠. 특별한 처방전 없이 일주일에 한 번, 평생을 다녀야 한다는 부담감.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으니 모임 때마다 얼굴이 바뀌는 것 등등.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가다 말다 다 결국 흐지부지죠.



막상 해볼 수 있는 것 다 해보고 나니 갈 데가 갬아넌밖에 없었습니다. 가장 오래 하는 치료가 제대로 된 치료라고 했던가요. 죽는 날까지 잠재우고 다스리고 다독거리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한참 지나서야 깨닫게 된 거죠.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 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도박중독자의 단도박모임 GA도박중독자 가족모임 갬아넌Gam-Anon


매주 한번 GA와 같은 건물, 각자 다른 방에서 니다. 단도박모임 GA에서는 "방배 박 선생님" " 사당 이선생님"이라고 부르고 도박중독자 가족모임 갬아넌Gam-Anon에서는 "방배 최여사님" "사당 김여사 님"이런 식으로 부릅니다. 어느 동네에 살고 있는지 하고 자신의 姓만 밝히는 거죠. '여사'라는 호칭이 아직 어색하지만 저는 정여사로 불리고 있습니다.

GA와 갬아넌Gam-Anon의 책자와 진행방이 다르고 서로 내용을 공유하지 않는 게 규칙이라 제가 아는 건 가족모임에 관한 것이 전부입니다.



"지금부터 *월 *일 단도박 가족모임을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로 모임이 시작되고 참석자들은 교본과 책자를 돌아가며 한 꼭지씩 읽습니다. 그다음부터 "안녕하세요, 사당 김여사입니다."라고 인사하며 근황토크와 읽었던 내용에 대해 소감을 나눕니다.


이때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하지 않고 듣기만 합니다. 충조평판 없이 듣다가 모임이 끝난 후 따로 피드백을 하거나 의논을 하거나 아예 하지 않기도 합니다. 본인이 원할 때만 하는 것이니까. 질문을 하지 않았는데 먼저 들이대며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죠. 간혹 자신의 경험과 사례를 얘기하는 분도 계시지만 모든 게 case by case라서 무 조심해야 합니다.

모임에서 사용되는 책자 2권 - 갬아넌 교본 & 하루하루에 살자


하루하루에 살자


알아 넌(Al-Anon)에서 발행한 책자를 갬아넌에 맞게 고쳐 쓴 책으로 1984년 시작될 때부터 사용해 왔다고 합니다. 모임이 없는 날에도 펼쳐서 읽며 하루하루 살아낼 에너지를 비축합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과 나는 별개,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지켜보자.

내가 책임져야 할 것과 책임지지 않아야 할 것을 구별하자.

먼저 내 몸과 마음이 무엇을 원하는지 귀를 기울이자.

아들을 돌봐야 한다는 것은 착각, 도박지옥에서 구출해야 한다는 것은 교만이란 걸 명심하자.


그때그때 달라지고 차이는 있지만 이렇게 되고 있다는 기쁨! 도박병을 앓고 있는 아들과 거리 두기가 되는 만큼 내 몫의 삶이 살아지더라고요. 언제나 개인의 행복이 먼저이고 그게 결코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는 틱낫한 스님의 말이 갬아넌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합니다.


갬아넌을 통하지 않았다면 가능했을 겁니다. 중독과 회복 사이에서 필요한 것은 특단의 처방전이 아니었고, 같은 문제 같은 아픔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었죠. '따로  또 같이'할 수 있는 공동체가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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