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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로카 Dec 31. 2022

롱패딩이니까 괜찮아.

개성 없는 김밥이라고? 오히려 좋아.

 체대생들의 겨울 필수품이었던 롱패딩이 유행한 지 어느덧 5년 가까이 지났다. 우리나라는 유행이 금방 바뀌는 것으로 유명한데 지금도 시내에 나가보면 많은 사람들이 롱패딩을 입고 있다. 숏패딩이 새로운 대세라는 광고문구를 본 것도 몇 년 전 같은데, 막상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얼마 전에도 올 겨울에는 날씨가 포근해서 숏패딩이 유행할 것이라는 기사가 나왔는데, 댓글은 모두 롱패딩 얘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롱패딩의 인기가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단순히 따뜻해서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롱패딩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누구나 보통은 아래위로 긴 검은색의 후드 달린 단색의 패딩을 떠올릴 것이다.

그렇기에 일단 입고 나가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검은색이라서 눈에 띄지 않는다. 클론이 되는 것이다.


또한 기장이 길어서 발목까지 오기 때문에 지퍼를 잠그면 안에 입은 옷이 거의 다 가려진다.


이 점이 아주 중요하다. 평범하고, 잘 가려진다는 특징.


이런 특징 덕분에 한 겨울에 과감한 옷차림을 입고 싶은 사람에게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연말에 파티를 위해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싶은데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여성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사람이 드레스에 맞는 코트나 짧은 상의를 입으려면 일단 상하의의 조합을 고려해서 코디를 해야 한다. 보온성까지 고려하려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하의는 가릴 수가 없기 때문에 화려한 옷을 입은 경우 다른 사람의 눈에 잘 띌 수밖에 없다. 파티장에서만 눈에 띄고 싶은 입장에서는 반가운 시선은 아니다. 추운 것은 덤이고.


하지만 롱패딩을 입으면 발목까지 전부 가릴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옷을 입었는지 가리기가 편하다. 보통 검은색이니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눈에 더더욱 잘 띄지 않는다.


이건 상당한 이점이다.

상하의 모두 가릴 수 있으므로  외투와의 조합을 고려하지 않고 온전히 내가 원하는 대로 입을 수 있다.

평소보다 화려하게 입고도 롱패딩으로 온전히 가릴 수 있으니. ‘저 파티하러 가요.’라고 광고하고 다니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유용하다. 수면바지와 잠옷을 입고 침대 안에 쏙 들어가 있는데, 갑자기 편의점을 가야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짧은 상의만 있다면 귀찮더라도 바지를 갈아입어야 하지만 롱패딩을 입는다면?

그냥 위에 대충 입고 나가도 된다. 물론 발목 부분을 보면 수면바지라는 것이 티가 나지만 그 정도는 대충 넘어갈 수 있다.


옷에 많이 신경 쓰는 사람과 안 쓰는 사람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마법의 아이템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입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옷에 대한 사회적인 시선이 관대해졌다. 어떤 상황에서도 입을 수 있는 옷이 된 것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패션을 평가할 때 롱패딩은 약간 논외로 보는 경향도 생겼다. 패션 아이템보다는 독립된 보온만을 위한 아이템으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슈트 위에 코트를 입을 때는 색의 조합과 핏 등을 토대로 패션을 평가하였다. 하지만 요즘은 누가 슈트 위에 롱패딩을 입어도 '슈트를 입을 일이 있는데 날씨가 너무 추워서 롱패딩을 입었구나.' 하고 이해하고 딱히 슈트와 패딩의 조화를 평가하지 않는다. 옷 위에 입는 이불 정도로 평가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슈트 위에 걸치면 결혼식에도 갈 수 있고, 음식물 쓰레기 버리러 갈 때도 입을 수 있는 전천후인 옷으로 자리매김하였다. SPA 브랜드에서 저렴한 제품도 나오기에 중고생들도 많이 입는다. 10만 원 이하 제품도 얼마든지 있으니 학부모가 '등골브레이커'가 될 일도 없어진다.


남녀노소 모두가 입으니 '겨울엔 롱패딩'이 뭔가 하나의 공식이 되고, 디폴트가 된 것이다. 새로운 겨울 외투가 출시된다면 롱패딩의 장점을 상쇄할 뭔가가 나와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롱패딩의 시대는 이어지고 있다.




기본템이라는 말이 있다. 유행에 관계없이 입을 수 있는 스테디 한 아이템을 말하는데, 보통 흰 티나 일자 청바지, 체스터 코트 등을 일컫는다.


하지만 기본템이라고 불리는 블레이져나 코트, MA-1등의 아이템들도 몇 년 전 제품은 촌스러움이 느껴진다. 몇 가지 작은 디테일이 그리 보이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10년 후에 롱패딩이 촌스럽게 보일까? 왠지 아닐 것 같다. 심지어 브랜드 로고가 크게 프린팅 되거나 패치워크가 들어간 제품이라 할지라도 롱패딩이라 관대한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을까 예상한다. 어찌 보면 롱패딩이야 말로 진정한 기본템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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