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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로카 Jun 07. 2022

저 좋은 사람 아니니 기대하지 마세요.

인생의 디폴트 값을 낮추면 생기는 일

   디폴트라는 단어가 있다. 공사채나 융자를 갚지 못하는 상태라는 경제학 용어이지만,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기본값을 이야기할 때 많이 쓰는 단어이다. 보통 인생 전반에 있어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어떤 기본적인 기댓값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준은 당연히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예전에 유명한 맛집에 갔다가 실망했던 적이 있다. 높은 기대치에 비해 맛이 별로였기 때문이다. 반면, 별 기대 없이 들어간 식당에서 뜻밖의 맛있는 음식에 눈이 휘둥그레진 경험도 있다. 이 것은 맛의 기댓값이 달랐기 때문에 생긴 경험이다. 이처럼 같은 상황이더라도 어떤 기대치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기분이 극과 극으로 달라질 수 있다.


음식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특히 인간관계에 대해 실망을 많이 했던 나는 사람에 대한 기대치를 낮춘 후에 스트레스의 양이 대폭 줄어든 것을 느끼게 되었다. 즉, 사람에 대한 디폴트 값을 바꾸었더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첫째, 서비스업에 친절을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예전에는 서비스업은 당연히 친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디폴트 값이 친절이었던 것이다. 이러면 상대가 친절하게 서비스를 해도 기분이 딱히 좋지 않은데, 불친절하면 기분이 확 나빠진다.


반대로 디폴트 값을 불친절에 두니, 편의점 알바나 서빙하는 사람이 친절하면 뭔가 행운을 얻은 것처럼 엄청 좋고,  불친절하더라도, 그냥 원래 그런 사람이 구 나하고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둘째, 내로남불은 당연한 것이다. 나는 남과 자신에 대해 이중잣대를 가진 사람을 보면, 일관되지 못하고 이기적이라고 비난을 하였다. 인간은 일관적이라는 디폴트 값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인간은 당연히 이기적이고 남과 자신에 대한 잣대가 다른 존재라고 기댓값을 낮추었다. 그 결과 사람들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오히려 그들에 대해서 실망을 하지 않게 되었다.


셋째, 존댓말은 당연한 것이다. 사회에서 사람을 만나고 통성명을 하고, 나이를 확인하고 말을 놓는 일련의 과정이 언제부턴가 상당히 피로하게 다가왔다. 이제는 나이에 관계없이 무조건 존댓말을 하는 것이 스스로의 원칙이 되었다.


이렇게 스스로를 세팅하고 나니까 나보다 어린 사람, 심지어 미성년자에게도 존댓말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대한민국 정서상 연장자가 존댓말 하면 연하자는 아무래도 좀 더 조심히 말을 하게 된다. 서로 조심하다 보니 얼굴 붉힐 일도 없다.


넷째, 어린 사람은 나를 안 좋아한다. 공적이든 사적이든 나이대가 다양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어울릴 때가 있다. 이때 연장자가 말을 하면, 모두가 적당히 호응해주는데, 여기서 '어? 내가 이 자리의 인기남이군.' 이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참사가 시작된다.


이 것은 기본적으로 연하자들이 나에 대해 호의적일 것이라는 착각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디폴트 값을 바꿔야 한다. 나를 안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대하는 것이 속 편하다. 나는 여러 명이 모였을 경우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모두가 나의 의견을 궁금해할 때만 짧게 이야기한다.


이렇게 인간관계에 대한 기대치를 대폭 낮추면 타인에 대해서 실망할 일이 없다는 장점이 있다. 인간이 가진 대표적인 부정적인 감정은 분노, 슬픔, 실망 등인데, 분노와 슬픔은 한 번 쏟아내고 나면, 뭔가 카타르시스도 느껴지고 시원함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실망은 그렇지 않다.


뭔가 시커먼 감정이 애매하게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느낌이 든다. 잘 없어지지도 않아서 잊을만하면 생각난다. 물론 정신력이 강한 사람은 금방 잊을 수 있겠지만 내 경우는 무언가에 실망하는 감정이 쌓이면 금방 우울해지곤 했다. 그래서 실망이라는 감정을 줄이기 위해 세상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는 습관이 생겼다.





어렸을 때 동화책을 많이 읽었는데, 내용은 달라도 결말은 항상 같았다. '주인공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항상 해피엔딩 이야기만 보면서 인생은 그저 행복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어쩌면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기에 동화에서나마 현실을 잠시 잊고 행복을 느낄 수 있게 쓴 것이 아닌가 싶다.


안타깝지만 인생은 고통, 불행이 디폴트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 인간관계도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언제든지 실망스러운 행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지 너무 낭만적으로 기대하면 실망감만 커진다. 무언가에 대해 실망을 했다면 그에 대한 기대치를 한번 낮춰보자. 그러면 마음이 편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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