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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를 만나러 갔는데, 환자였다

누구나 저마다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간다. 어떤 이들에겐 십자가가 신체의 일부처럼 자연스럽다.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한다. 그런 상태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걸어간다.


2010년 새해가 밝은지가 며칠 되지 않았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외래는 오전 진료 전인데도 분주하다. 방송 촬영팀이 진료실 한 곳에 카메라와 조명기구를 설치한다. TV 건강정보 프로그램 촬영이 곧 시작되기 때문이다. 진행을 맡았던 나는, PD와 함께 원고를 점검했다. 주제는 만성폐쇄성폐질환 COPD 조기 진단의 중요성이었다. 병원 홍보팀 직원이 다가오자 나는 마음속에 맴돌던 말을 꺼냈다.


“교수님께서 촬영도 잘 하시겠죠? 학회 발표는 잘하시던데…”

“기자님, 걱정하지 마세요. 교수님께서 말씀 진짜 잘하시거든요.”


현장에서는 늘 예민하다. 특히 현장이 병원이라면 돌발 변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응급 환자 발생으로 취재나 촬영 중인 의사가 호출된다든지, 자신들을 촬영하는 것으로 오해한 환자와 보호자가 항의한다든지, 인터뷰 중인 환자의 컨디션이 나빠진다든지 긴박한 일이 벌어지기 쉽다.


당시 나는, 보건의료 분야를 취재한 지 1년도 되지 않았다. 서울시청을 3년 출입하다가 이쪽으로 옮겨왔다. 이 분야가 낯설어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고 현장은 전쟁터였다.

촬영할 호흡기내과 교수가 왔다. 이 병원에서 보직을 맡고 있어 출입 기자로서 인사한 적이 있었다. 내과 전문의 특유의 섬세함과 신사다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40대인데도 흰 가운이 주는 무게감 때문인지 나이가 더 들어 보였다.


“교수님, 학회 발표 때처럼 해 주시면 됩니다. 잘하시더라고요. 다만 이건 방송이니까 어려운 말들을 쉽게 풀어서 이야기해 주세요. 어색한 부분이 있으면 신호 드릴 테니까 긴장하지 마시고요. 저랑 아이 컨택이 중요해요. 시선이 흔들리면 안 됩니다. 어색해도 제 눈을 보고 말씀해 주세요.”

“네.”


그가 수줍게 웃었다. 들고 있던 원고가 보였다. 모서리가 닳았고 이곳저곳에 형광펜 자국이다.


‘연습을 많이 하셨나 보다. 잘하실 거야.’


그는 손꼽히는 전문가다. 특정 질환을 연구하는 의사들의 모임인 학회에서도 중요한 포지션을 맡고 있었다. 세심하고 꼼꼼한 진료로 환자들로부터 존경받았다.

촬영이 시작됐다. 오프닝 멘트에 이어 나는 첫 번째 질문을 했고 그가 답해야 할 때였다. 첫 한두 문장은 자연스러웠다. 이런 느낌이면 되겠다고 생각할 무렵, 어디선가 바람 소리 같은 게 들렸다.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교수 답변을 들으며 잘못된 표현이나 어색한 부분이 없는지 살피느라 바빴다. 또 소리가 났다. 교수는 답변을 이어가고 있는데, 아까보다 소리가 컸다.


‘휙~ 휙~’


한 문장이 끝나면, ‘휙~ 휙~’ 소리가 났다. 이상한 건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리가 나는 지점은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다. PD는 가만히 있다.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평소라면 “이게 무슨 소리죠? 잠시 끊고 가겠습니다.” 이렇게 말할 텐데. 교수가 답변을 이어가는 동안 소리는 계속 났다. ‘휙~ 휙~’


‘이게 무슨 소리야? 왜 PD는 가만히 있지?’


처음 듣는 인위적이고 규칙적인 소리. 이 소리가 사물로부터 나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떡하지? 교수님이 내는 소리 같아.’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얼어붙었다. 시간이 갈수록 이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PD와 카메라 감독, 오디오맨, 홍보팀 직원은 숨죽여 있었다. 이 촬영을 이끌어 가는 건 나였으니까 내가 나서야 했다.


교수는 한 두 문장을 말하고 소리를 냈다. 장애로 인한 소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교수님, 잠깐 쉬었다가 할까요? 설명 잘해주고 계신 데요. 전문적인 내용을 쉽게 설명하시다 보니 좀 지치신 거 같아요. 말씀은 이런 식으로 해 주시면 됩니다. 잘하고 계세요.”


어디서 이런 거짓말이 술술 나오는지 모르겠다. 뇌는 늘 이런 식이다. 벼랑 끝으로 몰려야 순발력이 발휘된다.


“음~~ 이렇게 해 보는 게 어떨까요? 한두 문장 설명하시고 조금 쉬세요. 몇 초든 몇십 초든 쉬세요. 카메라는 계속 돌고 있으니까 신경 쓰시지 말고요. 편하게 하세요. 다시 한두 문장 설명하시고 쉬시고요. PD님이 편집 잘해주실 거예요. 그렇죠? PD님?”


나는 PD 다리를 슬쩍 발로 건드렸다. PD는 내 신호를 알아들었다.


“네. 제가 편집하니까요. 김 기자님이 하자는 대로 하면 좋겠습니다.”

“네. 그러지요.”


교수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 그가 고마웠다. 어떻게든 촬영에 임하려는 의지가 읽혔다.

그는 틱(Tic) 장애가 있었다. 틱은 아이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직이거나 소리내는 것을 말한다. 학령기 아이들에게 흔한 질병인데, 성인에게서도 나타난다. 그는 긴장할 때 틱 장애가 나타났던 것 같다.


내가 그에게 발신하는 메시지는 따로 있었다.


‘교수님, 틱 장애가 있는 거 같은데요. 전혀 문제 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아요. 기죽지도 말고요. 저만 믿고 따라오세요.’


그는 알아들은 것 같았다. ‘휙~ 휙~’ 소리가 계속 나긴 했지만, 문장과 문장 사이에 나는 소리여서 문제 되지 않았다. 그는 소리를 내면서도 나와 눈을 맞추며 답변했다. 침착하게, 아무 일 없듯이. 포기하지 않았다.


내 머릿속에는 촬영이 중단되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무조건 끝까지 마쳐야 하는 게 목표였다. 절박했다. 만약 촬영이 멈춘다면 그는 카메라 앞에 두 번 다시 설 수 없을 게 분명해 보였다. 그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촬영이 중단되면 나에게도 타격이 생길 게 뻔했다. 기자는 어떤 상황에서든 취재원으로부터 이야기를 끌어내야 하는데, 촬영을 접어버린다는 건 자격 미달이라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촬영이 끝났다. 교수는 어떤 일도 없었다는 듯 인사하고 사라졌다. 모두 한숨을 쉬었다. 죄송하다며 어쩔 줄 몰라 하는 홍보팀 직원에게 약속을 받아냈다. 오늘 일을 절대로 발설하지 말라고, 윗선에 보고하지 말라고. 이게 교수 귀에 들어가면 그는 앞으로 어떤 방송 출연도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협박이었다.


회사로 돌아가는 차량에서 병원 건물을 바라봤다. 그곳에 그가 있다. 태연한 척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한 그였지만, 마음속은 천둥 번개가 치고 벼락이 쳤을 것이다. 촬영과 관련한 좋지 않은 기억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이번에는 잘해 내서 징크스를 깨려고 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촬영이 멈추면 장애는 더 심해질 게 확실했다.


촬영장에서 그가 자신의 한계를 이겨내려면 내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 촬영을 주도하고 있는 나를 신뢰할 수 있게끔. 나는 태연한 척 연기했다.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 일을 겪은 후 현장에서 함부로 반응하지 않으려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촬영한 영상은 문제없이 방송됐다. 몇 달이 흘렀고 그날 일이 희미해져 갈 무렵, 또 다른 틱 장애를 봤다. 이번에도 대가에게서 목격했다.


그는 대장암을 다루는 권위자였다. 서울 시내 호텔 콘퍼런스룸, 기자들 몇 명과 제약사 임원들, 병원 관계자들이 그의 새로운 논문 내용을 듣기 위해 모였다. 그가 연단 앞에 서자 조명은 그를 비췄다. 흰 가운을 입지 않았으니 평범한 중년 남자다.


몇 분 지났을까. 소리가 났다.


‘취익췩~ 취익췩~’


설치류가 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지난번 일을 겪고도 의심하지 못했다. 두리번거렸다. 이상한 건 다른 사람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냥 넘기려 했는데 또 소리가 났다. 뭔가에 홀린 것 같았다.


‘나한테만 들리는 소리인가? 사람들은 미동도 안 해. 이상해. 이게 무슨 소리야?’


곧 감지할 수 있었다. 소리는 마이크를 통해 전해지는 것이었다. 교수가 내는 소리였다.


‘이분도 틱 장애구나.’


테이블에서 이야기할 때는 멀쩡했는데,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니까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다. 당시 이쪽 분야를 취재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그에게 이런 장애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함께 있던 사람들은 다 알고 있어 소리가 났을 때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발표 중간마다 소리를 냈다.


‘취익췩~ 취익췩~’

소리에 점차 무감각해졌다. 숨소리가 거친 사람과 대화하다가 숨소리를 의식하지 못하듯, 그렇게. 발표는 훌륭했다. 식사하는 자리로 옮겨갔을 때도 논문 이야기가 이어졌는데, 그는 소리내지 않았다.


성인에게 나타나는 틱 장애의 원인으로 여러 가지가 거론되는데, 극심한 스트레스도 영향을 끼친다고 알려졌다.


두 명의 권위자에게 나타났던 틱 장애는 한계치를 넘어서는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한 게 아닐까 추측했다. 한 분야의 대가가 되기 위해선 절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 자리를 지키려면 노력은 평생 뒤따라야 한다. 그 과정에서 에너지가 고갈되면 여러 고통을 겪을 수도 있다. 고통이 할퀴고 간 상처가 깊을 때 우리 몸과 마음은 신호를 보낸다. 어떤 형태로든.


충격은 컸다.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권위자들을 상대하는 것도 버거웠던 때였으니까. 의료 기자로서 환자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해야 할지 기본적인 자세조차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다. 명의들을 취재하고 촬영하는 자리에서 돌발 상황으로 마주한, 이들의 예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인한 클 수밖에 없었다. 명의들을 만나러 갔는데, 환자들을 본 것이었다.


시간은 흘렀고, 권위자들과의 소통이 활발해지면서 틱을 비롯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꽤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친분이 생겼을 때 직접 말해준 이들도 있었다. 자신에게 어떤 장애가 있는지. 이후 누군가의 장애를 발견해도 자연스럽게 바라볼 수 있었다.


의사로서 신망이 두터운 이들에게 우울증, 공황장애를 비롯한 마음의 병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도 알았다. 환자들의 치료를 돕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병을 드러내는 훌륭한 의사들도 있다.


성인 틱(Tic)이 나타나는 것을 처음 목격했을 때로부터 15년이 흘렀다. 그 두 분은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다. 여전히 환자들로부터 존경받고 있다.


한 가지 의문점이 남아 가끔 머릿속을 맴돈다. 나에게 장애가 있는데,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사람들의 배려로 장애를 알아채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

https://youtube.com/shorts/YP1ysLw_YxA?si=0SyOXzxrRffxMODa

https://youtu.be/UVi8oMw9Er0?si=yaMN34yxGgqWQ9Dq

https://youtube.com/shorts/BwCTyBmnHX4?si=Od021xBFWiBbMgQ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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