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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환자실 환자 2–모은 재산을 죽는 순간까지 알려줬다

12월 출간될 책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

기계들이 판을 치고 있는 중환자실이지만, 일부 환자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정체성을 보여줬다. 시한부라고 하더라도 죽어가는 게 아닌, 그 순간까지 살아가기로 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인생에서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구현하고 지켰다.


가족을 향한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던 중년의 남자가 있었다. 죽음 앞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지켜갔다. 죽음은 삶과 동떨어진 게 아닌, 생의 마지막 퍼즐이라는 걸 알게 해줬다. 그는 옆으로만 누울 수 있었다. 등이 심하게 굽은 척추 장애가 있어서였다. 의식이 있던 그는 종일 무언가를 기록했다. 얼마 전까지 인공호흡기를 달았으나 지금은 뗀 상태이며 움직이는 데 불편한 것도 없었다. 콧줄과 소변줄, 기본적인 정맥관만 삽입됐다. 바이탈 사인(vital signs)을 확인하는 금속 패치도 몇 개만 붙였다. 중환자실에서 보기 드문, ‘밀랍 인형’화 되지 않은 환자였다.


그는 아버지 병상을 기준으로 왼쪽에 있었다. 오른쪽으로 누워있는 그는 아버지의 왼쪽 얼굴을 주로 봤다. 아버지가 왼쪽으로 돌아누우면 둘은 서로를 바라봤다. 둘은 눈만 마주치면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 들었다. 둘 다 목에 구멍을 뚫은 상태여서 말을 하지 못했으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말은 언어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니까.


아버지 면회를 가면 그와 눈이 자주 마주쳤다. 내가 그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면 그는 미소 지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아빠 보러 왔구나. 네 아빠와 나는 말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지만 우리는 이야기한단다. 힘내라고. 끝까지 힘내자고.’ 한번은 날 보며 손짓했다. 가까이 갔더니 베개 밑에서 지갑을 꺼내 돈을 줬다. 나는 그의 가족을 바라봤다. 그들은 빨리 받으라고 했다. 나는 감사하다고 말하며 허리 굽혀 인사했다. 받은 돈이 두툼해서가 아니라 중환자가 주는 돈이어서 무게감이 실렸다고 해야 할까.


그의 병상에서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가족회의였다. 가장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화기애애한 가족회의였다. “와!” “이런!” “아빠!” “여보!” “진짜?” “정말?” 가족의 입에서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고 땅, 건물, 소유, 이전, 증여, 등기 이런 단어가 들렸다. 그는 글자를 써서 소통했다. 왼손으로 문서 받침대를 움켜쥐고 그 위에 고정된 종이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썼다. 옆으로 누운 상태에서 글씨를 쓴다는 게 쉽지 않은데, 유독 큰 손은 더 불편해 보였다. 얼마나 손에 힘을 줬는지 볼펜을 쥔 손가락 마디들이 굵은 매듭처럼 보였다.


“그건 언제 샀어? 왜 말 안 했어?”


아내는 어이없어했다. 그는 빠른 속도로 쓰고 가족을 바라봤다. 강렬한 눈빛이 목소리를 대신했다. ‘내 말 알아듣는 거지? 이거 중요한 거야.’ 자신이 알려주는 것들을 가족이 하나도 놓치지 않고 알아듣길 간절하게 바란다는 게 느껴졌다. 다급할 때는 자신도 모르게 말하려 시도했다. 그럴 때면 쇠가 긁히는 소리가 희미하게 나다가 사라졌다. 목에 구멍을 뚫어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었는데 상태가 호전돼 호흡기를 떼면 상처가 나을 때까지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한다.


그들의 가족회의는 TV 미니시리즈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했다.


“이 사람한테 연락하라고? 이 사람이 다 알려준다고?”

“아빠 왜 우리한테 말하지 않은 거야?”

“그 땅을 언제 내 이름으로 해놓은 거야?”


질문이 빗발칠 때 그는 다급했다. 일일이 말해줘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가족 모르게 부동산을 사서 모았는데, 자신은 곧 죽을 운명이고 죽음의 순간은 오늘밤에라도 올 수 있으니.


아내와 자녀들은 남편이, 아빠가 언제 이런 걸 사서 관리했을까 놀라고 고마워하는 눈치였다. 입 밖으로 표현하지 않았어도 그들이 주고받는 눈빛에서 알 수 있었다. 이게 무슨 중환자 면회인가. 그들에게서 웃음이 터져 나올 때도 있었다. 말기 상태였던 그는 가족과 같이 있을 시간이 별로 없는데, 면회 시간은 온통 부동산 얘기로 보내기 바빴다. 당시 나는 시트콤 같은 이 가족의 면회를 지켜보며 웃을 때가 많았다.


“엄마, 저 아저씨 곧 죽을 텐데 매일 재산 얘기만 해. 심오한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아?”

“저분은 가족이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조치해 주는 거야.”

“사람들이 그러는데 저 아저씨 아직도 모아둔 재산을 다 말하지 못한 거 같대. 그 상태로 죽으면 가족은 그 재산이 있는지도 모르는 거잖아. 오늘밤에도 당장 죽을 수 있는데. 미리미리 말해두지. 힘들게 모은 재산을 가족에게 말도 못하고 죽으면 억울하잖아.”

“저분은 본인이 빨리 죽을지 몰랐던 거야. 알았어도 받아들이지 않았든지. 지금은 모든 걸 받아들였으니 마음이 조급해진 거야. 가족에게 어떻게든 다 이야기하겠지.”


그는 평생을 성실하게 일했고 가족 몰래 부동산을 사고 투자해 돈을 불렸다. 돈을 모으는 데 장애는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의 몸은 정직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여줬다. 햇볕에 그을린 몸, 작은 체구에 비해 큰 손과 발, 굵은 손가락 마디는 신체를 써서 노동해 왔다는 증거였다. 가족을 먹여 살리고 건물과 땅을 사 모았을수록 손가락 마디는 굵어졌을 것이다. 손톱이 자라듯 그의 손가락 마디는 조금씩 자랐을 것이다.


그는 배에도 등처럼 공을 달고 있었다. 복수가 찼기 때문이었다. 복부를 덮고 있는 짧은 린넨 보가 불룩 튀어나왔다. 암세포는 가족을 위해 평생 일만 해온 몸도 공격했다. 그는 간암 말기였다. 통증으로 힘들어하던 그의 모습은 기억나지 않는다. 진지하게 글씨를 써내려 가던 그의 모습이 선명해서 고통스러워했던 모습을 덮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


어느 날은 젊은 남자가 면회 왔다. 양복을 입은 깔끔한 인상의 젊은 남자는 그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보여줬다. 그의 자산을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이날 그는 면회 시간 전부터 앉아있었던 것 같았다. 병상 위쪽을 세운 다음 베개를 굽은 등 밑에 끼워 넣으니 앉을 수 있었다. 병상 아래쪽에 접혀 있었던 간이 테이블을 펴고 문서 받침대와 볼펜을 놓고 기다렸다. 그에게 사장님의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그는 목걸이 형태의 돋보기를 이용해 서류를 살펴봤다.


“선생님, 이건 사모님께 자세히 설명드렸습니다. 자녀분들과도 공유할 거고요. 오늘 오후에 사모님과 함께 법률사무소에 가겠습니다.”

그들에게 이곳은 중환자실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직원이 사장에게 결제받는 모습과 같았다. 나는 이 모든 광경이 신기했다. 면회가 끝나면 다른 환자들의 보호자들이 웅성거렸다.

“그 남자 오늘도 땅 얘기하는 거 같던데요.”

“그 집 아줌마 표정 봐봐요. 묘한 표정이에요. 좋다고만 볼 수도 없고 얼마나 황당하겠어요. 곧 죽을 양반이 그걸 가족 모르게 모았으니.”

“그 양반 어떻게 해서 돈을 그리 벌었대요. 몸도 성치 않은데 고생을 많이 한 게 보여요. 죽도록 일만 하다가 가네요.”


그의 주치의는 가족을 불러 환자가 너무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면회를 하루에 한 번으로 제한했다. 하지만 주치의는 그에게 설득당한 게 분명했다. 면회는 예전처럼 진행됐다.


나는 그가 놀라울 뿐이었다. 중환자실에서 부동산 이야기를 하는 ‘신기한’ 아저씨, 한 번도 울거나 화난 표정을 보이지 않은 ‘대담한’ 아저씨였다. 다만, 그가 아버지와 마주 보고 누웠을 때는 눈물을 흘리며 운다는 얘기를 전해 들으면 그가 시한부라는 것, 그도 자신의 운명에 슬퍼하는 인간이 맞다고 생각했다. 원통한 마음보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데 방점을 찍었던 것 같았다. 가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세상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에 집중했다. 가족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지 않게 모아둔 재산을 제대로 알려주는 일이 그에게 가장 시급해 보였다. 평소 어떤 것에 가치를 두느냐 이것도 삶의 마지막에 이어진다. 죽음은 삶의 연장선이 맞았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족을 사랑했다. 그렇게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방식대로 삶의 마지막을 살아갔다.


처음에 그들을 돈만 밝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간절한 눈빛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에게는 몰래 불린 자산을 가족에게 제대로 알려주는 일이 무엇보다 절실한 일이구나. 비관하고 분노하며 죽을 날만 기다리며 죽어가는 게 아닌, 그는 이렇게 살아가기로 한 거구나. 그만의 방식으로. 삶의 주도권을 병에게 뺏기지 않았던 거다. 잊을 수 없는 건 레이저 눈빛을 쏘면서도 간간이 포착할 수 있었던 그의 흐뭇한 표정. 가족이 자신의 설명을 알아들었을 때 지었던 표정이었다.


몇 년 전 공항 출국장에서 그가 떠올랐다. 등이 굽은 사람을 본 것도 아니었고 재산 이야기를 하는 화기애애한 가족을 본 것도 아니다. 탑승 수속을 꼼꼼하게 밟는 승객을 보면서 그의 진지했던 얼굴이 떠올랐다. 30년 전, 가족에게 모아둔 부동산과 돈을 말해주는 그의 모습을 보며 먼 곳으로 떠나려 준비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삶과 죽음의 존엄을 생각할 수 있는 책은, 이달 중순 출간될 예정입니다.

★이 글은, 12월 출간될 책에 담지 못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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