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하던 공시를 접고 꽃을 배운다고 했을 때,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들었던 말들이 기억난다. 목표를 들은 지인들은 내 머리가 꽃 밭이라 했고, 아빠는 꽃 집을 하다가 망한 지인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런 말을 듣고도 나는 무엇에 씐 듯 내 갈 길을 갔다. 성공할 거라는 확신보다는 그럼에도 내 것을 해야겠다는 다짐이었을까. 꽤 고집이 있는 데다 직접 경험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라 반대를 무릅쓰고도 하고 싶었나 보다.
어려서 패기 있고, 어려서 부족한 25살,
어쩌다 나는 꽃 집 사장이 되었을까.
나는 유독 꽃을 좋아했다. 꽃을 바라볼 때의 행복감이 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꽃을 받으면 행복해하지만, 꽃 이름도 많이 알았고 언젠가 나이가 들어서 꽃꽂이를 취미로 가진 어른이 되리라는 목표가 있었다. 여기까진 누구나 비슷하게 생각해 봤을 것이다.
꽃을 배울 당시 나는 '쓰담'이라는 명상/마음 챙김 모임을 운영하고 있었고, 사람들과 마음일기장 작성, 명상 클래스 참여 등을 하는 활동을 했다. 내가 힘들 때 명상을 통해 극복했던 경험으로 세상에 그 가치를 알리고 싶었고, 주변에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없었으면 했다.
6개월 정도 운영을 했을 때, 점점 이 모임의 한계가 느껴졌다. 3 기수 이상 참여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과 흥미를 주기는 어려웠고, 여전히 명상은 하면 좋지만 잘하지 않게 되는 이불 정리 같았다.
어떻게 명상을 더 쉽고 흥미롭게 풀 수 있을까 고민을 하던 중, 나는 언제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지 생각해 보니 꽃꽂이를 할 때였다. 꽃을 만지는 동안에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래 뭐 하나에 집중을 못하던 내가,
이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한다고?“
꽃에 무엇인가 있다..!
이런 몰입의 경험은 처음이었다.
당시 쓰담 모임 활동을 기획하면서 다양한 명상 프로그램을 찾았었다. 아로마 향을 맡으며 심신의 안정을 찾는 아로마 명상부터, 차를 직접 우리고 마시는 차 명상 등. 단순 명상보다 오감을 자극할 수 있는 아이템과의 결합이 있었다.
실제로 꽃을 보는 것만으로 스트레스가 완화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또한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향기도 있고, 촉각도 있는 꽃은 굉장히 좋은 아이템으로 다가왔다.
꽃과 명상을 결합해서 쉽게 풀어보자는 목표가 생겼다. 마음을 쓰다듬어주자는 의미의 '쓰담'에서 꽃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쓰다듬어주자는 '꽃으로 쓰담'이 탄생했다.
때는 바야흐로.. 플로리스트 학원에 열심히 배우러 다니면서 실무 경험은 쌓기 위해 꽃 집에서 알바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인이 남는 공간이 있다며, 소정의 금액만 받을 테니 이곳에서 운영을 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적은 비용으로 직접 운영해 볼 수 있다는 기회가 생겼기에 꽃 집 알바를 그만뒀고, 나는 짐을 챙겼다.
입주를 하루 앞두고 문제가 생겼다. 갑자기 말이 달라졌다. 하루 전에는 19시까지 이용하라던 시간이 16시로 단축되었고, 첫날에는 갑자기 짐을 모두 챙겨 다녔으면 좋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나한테 왜 이러나 싶었지만, 당장 꽃 집을 차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견뎌보자 싶었다. 갈수록 사소한 걸로 마찰이 생겼고, 계속 있을 수는 없겠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때 느꼈다. 지인이어도 구두 계약은 하면 안 되고, 증명할 수 있는 요소를 남겨둬야 하며 내 것이 없으면 서럽다는 것. 그날은 서러워서 좀 많이 울었다.
꽃 집을 운영해 볼 생각에 설레어서 메뉴판을 만들고 있던 나는 이제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버렸다.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무작정 부동산 어플을 켰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은 인턴 생활하며 모아둔 적금, 카카오뱅크 비상금대출이 전부였다. 아, 서울 땅 값 진짜 비싸다.
비싼 서울의 물가에 좌절하기를 몇 번, 그러다가 눈에 들어온 곳이 지금 공간이었다. 당장 부동산에 전화를 하고 보러 갔다.
을지로 4가/종로 5가 사이, 심지어 루프탑도 있다. 깔끔하게 관리된 공간과 루프탑에 첫눈에 반했다.
"여기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참 많겠다.."
이 공간에 서있으니 꽃 집, 공간대여, 클래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머리 위에 그려졌다. 가진 것을 탈탈 털고, 부모님께 돈을 빌렸다. 그렇게 낭만 가득 첫 사업이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