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부름
물음에 대한 그리고 요구에 대한 대답은
유감스러워도 불가피한 것에 대한 동의다.
그것은 지혜다.
기쁘게 받아들이는 지혜
그에게 마음을 열어두는 지혜
거부하라는 강요를 거부하는 지혜
삶이 거칠어지지 않도록 다듬는 지혜
흔들림 없이 자기 사랑을 시험하는 지혜
짜증과 분노에 도전하는 지혜
지혜가 담긴 대답은 자기 존중이다.
자기를 존중하지 않는 대답은 혹독한 대가가 따른다.
아내의 부름
“여보!”
아내가 부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란 가슴은 붉은 띠를 두릅니다.
그리고 두 주먹 불끈 쥐고 하늘을 찌르면서 소리칩니다.
“그거 꼭 지금 해야 돼?”
“나 지금 나가야 되는데…”
“왜 하필 바쁠 때 난리야 여태껏 가만있다가!”
“나 지금 뭐 하는지 안 보여!”
“그런 걸 내가 어떻게 해 당신도 할 수 있잖아!”
“당신 혼자 하면 안 돼!”
“어휴 이 날씨에?”
…
‘이따가, 다음에, 생각해 보고, 아니, 싫어 싫다고!’
물론 속으로만, 목구멍 아래에서만 우렁찰 뿐입니다.
목 밖으로는 한마디도 내뱉지 못합니다.
한마디라도 아내의 귀에 닿으면 그 순간 집안은 석빙고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부르면 비상입니다.
즉각 하던 일을 멈추고 재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순간의 지체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움직이지 않아도 될 그 어떤 구실이나 변명도 통하지 않습니다.
아내와 함께 있으면 언제나 미어캣이 됩니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아내의 말이 손이 발길이 다가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눈은 언제나 아내의 발길을 쫓고 귀는 아내의 입에 걸어두고 발은 언제나 5분 대기조가 됩니다.
아내는 참 귀찮은 존재입니다.
가만히 두질 않습니다.
주변인뿐 아닙니다. 자신도 늘 달달 볶습니다.
자신에게 그리고 주변인에게 늘 뭔가를 시킵니다. 노는 꼴을 못 봅니다.
그러니 본인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요.
그럼에도 아내는 참습니다.
힘듦을 잘 견딥니다.
아내에게 노동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입니다.
아내의 노동은 가족이 바라는 일이고, 가족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이며, 가족을 위한 일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내의 움직임이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그 끝은 크고 위대합니다.
아내의 참고 견딤의 대가는 가족에게는 기쁨이고 행복입니다.
언제나 튀어갈 수 있도록 구두끈 동여매고 아내의 부름에 귀 기울이는 이유입니다.
볶이는 삶이 기쁜 까닭입니다.
“네!”
아내의 부름에 대한 대답은 짧을수록 좋습니다.
‘이러쿵저러쿵’, ‘이래서 저래서’,‘이렇고 저런’ 핑계와 구실은 가족의 기쁨에 상처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좋아하는 일을 같이 좋아하는 것은, 아내의 손길에 작은 손 하나 더 보태는 것은, 아내의 발길에 또 다른 발자국을 찍는 것은 아내를 그리고 가족을 사랑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