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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Aug 13. 2024

제사는
빛을 기원하는 은밀한 손길이다

아내의 선택이 소중한 까닭

제사는 

한물간 사람들의 전유물인가

자유를 제한하는 속박인가

유효기간이 지난 폐습인가

후손에게 지우는 벅찬 고행인가

의미 없는 이런저런 반복들인가

욕망을 소외시키는 비틀어진 질서인가     


제사는 삶의 길에서 마주친 우연이다.     


우연을 선택으로 바꾸는 일 

그것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아내의 선택이 소중한 까닭     


밖을 배회하다 요란한 장식 없는 수수한 밥집이 그리울 때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래간만에 동네가 아닌 타지의 밤하늘을 서너 번 만난 뒤의 일입니다.     


집 냄새는 허기진 가슴을 자극했습니다.

당연하다는 듯 늘어져 있는 냉장고를 흔들었습니다.     


그러나 마주한 냉장고는 찬바람만 일없이 서성일뿐 그 흔한 김치 한 조각 보이질 않았습니다.

서둘러 대충 걸치고 마트로 향했습니다.     


마트에는 얼마 전 손녀를 본 지인이 힘에 벅차 투덜거리는 카트를 달래면서 크고 작은 물건들을 쌓아 올리고 있었습니다.     


“제사라…”     


놀란 눈으로 카트를 바라보자 그 지인은 주름진 미소를 흘리면서 짐의 정체를 밝혔습니다.     


“아이고 이제 정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어차피 우리 세대가 마무리되면…”

“여기에 명절 차례까지 지내야 하니 여간…”

“한해 한해 몸도…”

“그런데 남편이…”     


지인은 말을 끝맺지도 못한 채 계속 다음 말을 이었습니다.

지인의 말에는 제사의 힘겨움이 진하게 묻어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때마다 제사상을 차립니다.

제사는 어쩌다 보니 주어진 그래서 감당해야 하는 당연한 일이 되었습니다.     


수십 년, 

아내는 때만 되면 지금까지의 삶을 허락하신 조상께 감사하며 나물을 다듬습니다.     


팔자가 어쩌니 저쩌니 떠들 수도 있겠지만 아내의 손은 당연한 듯 묵묵합니다.

더 많이 차리지 못하는 게 죄송할 뿐입니다.     




그러나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작은 움직임에도 아픔을 호소하는 나이가 된 아내이기에

병원에 갈 때마다 새로운 병명을 세월의 꼬리표처럼 달고 오는 아내이기에

세월의 아픔을 참고 형편의 고통을 견디고 일의 괴로움을 달래면서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유지하는 아내이기에.     


아내가 차리는 제사상이 어제와 다르게 다가옵니다.

미안하고 딱하고 애처롭고… 눈물겹습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추모식으로 대체하면…”

“한 번으로 통합은?”     


그러나 아내는 불편함, 힘겨움, 부담감이라는 단어는 부모님을 위한 일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고개를 젓습니다.     


아내를 구속하는 속박은 집요하지만 그것을 끊으려고 하면 마음이 아프고,

아내가 원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것을 갈망하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참으로 눈물겨운 분투입니다.    

 

파스칼은 병을 “위안이 있는 재앙”이며 죄인을 하느님에게로 다시 이끈다고 했다지만

아내의 아픔은 위안 없는 세속의 고통 속으로 내몰릴 뿐입니다.     


아픔 속에서도

자신의 편의를 벗어던지는 아내의 삶이

관습의 제복을 벗고 자기만의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에 저항하는 아내의 삶이

고마울 뿐입니다.     


제사상을 차리는 아내에겐

군더더기는 걸러지고 사랑이라는 본질만 남습니다.

신체의 고통과 욕망은 빠지고 정신의 위대함과 영혼의 아름다움만 남습니다.   

  

아내의 손길이 귀하고 값진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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