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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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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Nov 22. 2024

그 입을 다물라

함께 할 날이 얼마나 더 남았을지

함부로 뱉은 말은     


삶을  

구불구불하게 돌아가게 만든다.

두려움으로 가득 채운다.

뒤죽박죽 휘젓는다.

파멸로 이끈다.   

  

고통과 연결 짓고 이성을 흐리게 한다.

너무 많은 시간을 싸움 속에 허비한다.

희망도 행복도 눈물에 젖게 한다.

평생 후회와 죄의식에 시달리게 한다.  

   

삶에게

가장 무거운 짐을 지운다.

어두운 그림자를 남긴다.

날카로운 칼끝을 내일에 찔러 넣는다.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지옥일 뿐이다.   

  

뱉는다고 다 말이 아니다.        


  



함께 할 날이 얼마나 더 남았을지     


사흘이 지났지만 아내의 입은 여전히 닫혀있습니다.     


힘들다며 투정하는 아내에게 세상 사람 다 피곤하고 힘들지 당신만 힘드냐고 했었습니다.

그 말이 아내의 마음에 상처를 냈습니다. 


상처 입은 마음은 온몸을 휘돌아 영혼까지 검게 태웠습니다.     


상스럽고 고약한 대꾸가 처음은 아닙니다.

잦았습니다. 

수시로 모욕과 무시를 넘나들었습니다.

그래도 아내는 주름진 영혼을 지닌 가엾은 존재로 여겨 긍휼히 넘기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공기가 다릅니다.

새로운 아픔이 예전에 있었던 아픔에 무게를 더해서일까 상처는 금세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집안은 미라처럼 삭막해지고 거칠고 날카롭게 부서진 공기는 몸과 마음을 마구 찔러댔습니다.  

   

가깝지만 멀고, 눈앞을 스치지만 허상처럼 지나치고

둘이지만 혼자 먹고, 둘이지만 혼자 보고, 둘이지만 혼자 쉬고

함께 있지만 혼자 있습니다.    

 

오랜 세월 아내와 함께 했습니다.

아내는 새로운 힘의 원천이었고 오물을 뒤집어쓴 듯 지저분한 세상도 아내와 함께라면 웃어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아내의 문이 닫혔습니다.     


함부로 연 내 입 탓입니다.

경박한 입이 화근입니다.

즐거움에 찬물을 끼얹는 한마디로 함께의 공간은 천국에서 지옥으로 바뀌었습니다.     


둘의 공간엔 삭풍이 불고 둘의 자리는 얼음장이 되었습니다.

서로를 꺼리고 서로를 거부합니다.

곳곳에 놓여 있는 사진 속 웃음마저 슬프고 방방이 들어있는 가구들도 휘청입니다.

잿빛 우울감이 무겁게 짓누릅니다.     


함께 할 시간이 얼마나 더 남았을지,     




망설임 끝에

어둠이 내린 아내의 방문을 조용히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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