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말 독일 연구소 면접을 보고 다음날 오퍼 메일을 받았다. 보스의 논문을 즐겨 읽기도 했고, 우리나라에서는 하기 힘든 분야를 주력으로 하는 연구소였기 때문에, 바로 억셉 메일을 보냈다. 이후 보스가 5월 1일부터 일을 하면 좋겠다고 하여, 부랴부랴 독일행을 준비하게 되었다. 사실 한국에서 준비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고(그래서 별로 바쁘지는 않았고, 쉬었다), 독일 현지에 들어와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으며 여러 가지 일들을 해결하고 있다. 오늘은 독일행이 결정된 후 비자받는 것부터 독일에 입국하여 적응하는 일련의 과정을 적어보고자 한다.
비자
독일 입국&적응기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비자 신청을 위한 주한독일대사관 방문을 예약하는 것이었다. 3개월 정도 여유가 있었다면 아침 8시에 접속하여 매일매일 새로 풀리는 일정을 예약하면 됐지만, 필자는 입국이 2개월도 안 남았기 때문에 다른 분들이 취소한 일정을 잡아야 했다. 며칠 동안 5분 간격으로 방문 예약 홈페이지를 새로고침 하면서 확인했고, 다행히도 제 때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참고로 과거에는 누군가 예약을 취소하면 바로 취소표가 올라왔다고 하는데, 현재는 바로 올라오지 않기 때문에 언제 취소표가 올라올지 모르며 계속해서 새로고침하는 수밖에 없다. 연구소에 들어와서 여러 나라 사람들을 만나며 알게 된 사실은 우리나라 대사관만 이런 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있는 독일대사관도 예약 잡기가 힘들고 일처리가 느리다고 한다. 독일에 입국해서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비자 때문에 계약이 6개월 혹은 1년씩 늦어진 분들도 있고, 특히 독일 내부에서의 프로세스가 필요한 경우에는 정말 오래 걸린다고 한다. 최근에는 독일로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안 그래도 느린 외국인청 프로세스가 더 느려졌다고 한다.
다시는 보기 싫은 주한독일대사관 방문예약 화면
여하튼 예약을 잡은 뒤에는 연구원 비자를 받기 위한 서류를 준비했다. 준비서류는 주한독일대사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었고, 연구원 비자의 경우 아래와 같은 서류가 필요했다.
1. 비자신청서 2부 : 온라인 서식
2. 여권 및 사본 2부
3. 여권사진 2매
4. 고용합의서/계약서 2부 : 대사관 양식의 고용합의서(hosting agreement)와 보수 및 계약기간이 명시된 계약서 초안
5. 현 근무지 고용증명서 2부
6. 대학졸업 증명서 2부
7. 재정증명서 2부 : 고용합의서와 계약서에 보수와 계약기간 명시되어 있어 불필요
8. 보험 가입증명서 2부 : 공보험 가입 예정 시 근무 시작일 전까지 사보험 가입
9. 기타 : 테어민 이메일 1부, 신분증, 수수료(한화로 75유로), 백신 접종증명서(이제는 필요 없을 수도)
방문 예약 시간에 맞춰 서울역 앞에 있는 대사관에 방문하여 서류들을 제출했고, 근무일 기준 2~3일 후 대사관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비자 찾아가라고 했다. 방문 시에는 신분증이 2개가 필요했는데(출입증 받기 위해 1층 카운터에 1개 제출 + 여권&비자 수령할 때 1개), 1개만 가져가서 대신 본인 명의의 신용카드를 1층 카운터에 맡기고 출입증을 받은 뒤, 남은 신분증으로 무사히 여권&비자를 수령했다.
항공
인천-뮌헨-베를린 루프트한자 항공편으로 독일에 입국했다. 4월 중순 이후 코로나가 거의 끝나가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티켓팅 할 때만 접종증명서를 검사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비행기는 만석이었는데, 슬슬 항공편을 늘려야 되지 않을까 싶다. 뮌헨까지의 비행시간은 원래는 10시간 정도지만, 러시아 때문에 우크라이나 남쪽으로 돌아가면서 비행시간이 12시간으로 늘어났다. 늘어난 시간만큼 볼거리(넷플릭스&유튜브 오프라인 저장)를 더 챙겨간 덕에 그렇게 지루하지는 않았다.
뮌헨 공항에 도착 후 입국심사를 했다. 연구원 비자를 받고 와서 인지 간단한 질문만 받았는데, 뭐하러 왔는지, 어떤 연구소 가는지, 거기에 살 건지 정도만 물어보고 30초 만에 끝났다. 이후 세관 신고하는 곳을 지나갈 때 괜히 앞에 서 계신 아저씨한테 말 걸었다가 가방을 까게 되었다. 별 다를 것은 없었고 10,000 유로 이상의 현금을 가지고 있는지와 새로 산 전자제품이 있는지만 물어보고 끝났다.
경유시간이 1시간 35분으로 짧아서 비행기에서 내릴 때는 마음이 급했지만, 생각보다 입국심사와 세관신고가 빠르게 끝나서 여유롭게 경유 게이트로 들어왔다. 마음이 여유로워진 그 순간, 남은 시간 동안 콜라나 먹어야지 하고 들어갔던 가게에서 콜라를 떨어트려 온 가게 바닥을 콜라로 덮는 해프닝이 있었다. 다행히도 직원분들이 매우 친절하게 치우는 것을 도와주셨다. 독일인들이 그렇게 쌀쌀맞다는데, 인복이 있는 건지 친절한 분들을 많이 만나서 순탄하게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숙소 및 대중교통
베를린에 저녁에 도착하여 첫날은 공항 안에 있는 숙소(Steigenberger Airport Hotel Berlin)에 잠을 청했다. 시설은 깔끔하고 좋은데 가격은 16만 원으로 사악했다. 방마다 네스프레소 기계랑 캡슐 2개가 있어서 아침에 커피를 마시고 연구소가 위치한 Müncheberg로 향했다. 이후에 다른 호텔들도 다니면서 깨달은 것은 독일 호텔에는 방마다 네스프레소 기계가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고,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참 좋은 것 같다.
Steigenberger Airport Hotel Berlin
이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티켓팅 기계에서 열차표를 끊어 보았는데, 티켓팅 기계가 영어를 지원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펀칭머신도 해봤다. 이후 베를린, 함부르크, 라이프치히 등의 도시로 이동하거나 출퇴근할 때에는 DB Navigator 어플을 이용하고 있다. 생각보다 어플이 잘 되어 있어서 편하지만, 가끔 열차가 수십 분 아니 몇 시간씩 지연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만 빼면 대중교통 시스템은 전반적으로 괜찮은 편인 것 같다. 보스는 캐나다 시골에서 오셔서 그런지 대중교통이 너무 잘 되어 있다고 하지만, 서울에서 살다 온 필자는 우리랑 크게 다르지 않구나 하는 정도였다. 그리고 열차나 버스에서 검표를 잘 안 한다고 들었었는데, 이용객이 적은 시외 열차에서는 대부분 검표를 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 KTX와 비슷한 ICE(Intercity-Express)에서는 매번 했다.
베를린 Ostkreuz 기차역과 ICE 객실좌석
열차를 타고 연구소가 위치한 Müncheberg로 향했다. Müncheberg는 인구가 만명도 안 되는 소도시로 베를린에서 열차 타고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데, 당연히 농업 연구소이기 때문에 시골 동네에 위치하고 있다(우리나라에서는 당연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소도시이기 때문에 연구소 행정직원분이 픽업해주셨고, 지금까지 한 달 정도 살고 있는 임시 거주지로 들어왔다. 독일에서는 집 구하는 게 특히 베를린 같은 대도시에서는 힘들다고 해서 걱정을 했지만, 다행히 행정직원분의 어머니댁에서 한동안 살게 되었다. 주인아주머니가 영어를 거의 못하시기도 하고 독일어 선생님이셔서 독일어 (발음) 공부를 하며 지내고 있다. Sie와 See의 발음이 다르다고 하시는데, 언제쯤 구분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주인아저씨는 영어를 전혀 못 하시지만, 연구소 다닐 때 타라고 자전거도 빌려주시고 일 끝나고 오면 가끔씩 맥주를 주시고, 얼마 전에는 본인 생일 케이크도 나누어 주셨다. 임시 거주지는 Buckow라는 곳으로 국립공원 안에 위치해서 예쁜 호수와 공원이 많고, 주말이면 베를린에서 놀러 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평일에도 어린아이들과 젊은 여자분들이 많길래, 여기는 시골에도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사나 보다 했는데, 대부분 우크라이나 난민들이라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보다는 시골에 젊은이들이 많이 살기는 하지만, 베를린이나 라이프치히 등으로 나가는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고 한다.
평화로운 Buckow
임시거주지 마당과 주인집 아저씨 생일케익
거주지등록(안멜둥)과 계좌 개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입국해서 장기간 거주하기 위해서는 우선 거주지 등록을 하고 현지 계좌를 열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도 있고 그냥 동사무소나 은행 방문하면 바로 해결될 일이지만, 독일에서는 그리 간단치 않다. 무엇을 하든 간에 우선 예약을 잡아야 한다. 거주지 등록을 하기 위해서는 시청에 예약을 잡아야 하고, 계좌 개설을 위해서도 은행에 예약을 잡아야 한다. 필자의 경우 감사하게도 연구소에서 모든 예약을 잡아주셨고, 필요한 서류들도 같이 준비해주셔서 순조롭게 거주지 등록과 계좌 개설을 마칠 수 있었다. 소도시이기도 하고 외국 연구자들이 많이 방문하다 보니, 행정직원분이 시청/은행 직원분들과 상당히 친하신 것 같았고, 덕분에 준비가 덜 된 서류들도 나중에 제출하는 것으로 퉁치고 모든 일이 해결되었다.
위 과정 중 만나는 분들마다 이 동네에 한국인이 방문한다는 것도 신기하고, 우리나라 신여권에 각종 문화재들이 그려져 있는데 그게 너무 이쁘다고 여권을 몇 분씩 구경하셨다. 행정직원분에 따르면 십수 년 전에 한국인 연구원이 며칠 연구소를 방문한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장기적으로 일하러 온 한국인은 처음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동네 돌아다닐 때마다 신기하게 보면서 할로 할로 인사 건네주는 분들도 많고, 당연히 인종 차별하는 어린놈의 시키들도 있기는 하다. 다행히 베를린에서의 노숙자를 빼면 성인에게서는 인종차별적 발언을 들은 적은 없다. 보스 말로는 연구 펀딩 관련해서는 인종과 성 차별이 있다고 하니, 아마 암묵적인 차별은 존재하는 것 같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동남아인들을 차별하는 것을 종종 느끼기도 했고, 특히 경쟁 관계가 있을 때는 여기보다도 더 심하게 차별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독일인들이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고 과거에 비해서 많이 발전했다고 느낀다.
핸드폰 개통
시골 동네이기도 하고 거주지가 도로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서 주인집 아주머니와 행정직원분이 무조건 통신망이 잘 갖춰진 텔레콤으로 개통해야 된다고 하셨다. 대도시에 산다면 텔레콤보다는 요금제가 저렴한 보다폰이나 알디톡 등을 쓰는 게 좋을 것 같다. 독어로 의사소통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영어가 가능한 베를린 ring-center 대리점에 가서 프리페이드 유심을 구매했고, 당연히 신분증(여권)이 필요했다. 구매할 당시 거주지 등록이 안 되어 있었는데, 그냥 지금 살고 있는 집 주소 말씀드리니 별문제 없이 개통되었다. 데이터는 전체적으로 잘 터지지만, 숲 속으로 산책을 가거나 열차나 버스가 숲을 지날 때는 안 터지고, 전반적인 속도는 우리나라보다 느리다. 프리페이드 유심이기 때문에 28일마다 충전해놓은 금액에서 차감이 되는데, 충전은 MeinMagenta라는 어플에서 할 수 있다. 필자는 듀얼심 폰을 한국에서 구매해와서 사용하고 있으며, 한국/독일 유심 둘 다 끼우고 한국은행업무 같은 것도 정상적으로 보고 있다. 한국 요금제로는 KT 장기정지_로밍문자수신&인증 5,500원짜리를 사용하고 있는데, 알뜰폰보다는 비싸지만 약정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비교적 비싼 요금제(전화, 문자 무제한, 데어터 5gb - 25유로)를 가지고 있는 텔레콤 프리페이드 유심
보험 가입
비자발급을 위해서 사보험(educare24)을 가입해두었지만, 연구소 근무가 시작되면서 동시에 공보험(TK)에 가입되었기 때문에 사보험은 해지하였다. 독일에서는 3개월 전에 해지 통보를 해야 한다고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보험 해지 메일을 보냈고, 감사하게도 상당히 빠르게 환불처리를 해주셨다. 사보험 신청은 보험사 홈페이지에서 매우 쉽게 할 수 있고, TK 공보험의 경우에도 한국에서 쉽게 신청을 할 수 있다. TK 홈페이지에서 온라인 가입을 할 수 있는데, 보험 카드를 받을 주소가 결정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연구소 게스트하우스 주소를 입력하였고, 다행히 행정직원분이 보험 카드를 잘 보관하고 계셨다.
TK 공보험 홈페이지, 빨간색 박스의 Zum Online-Antrag에서 신청하면 된다
글을 쓰다 보니 입국부터 지금까지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서 순탄하게 독일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고,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서도 썼지만 어딜 가나 역시 인복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혹시나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되실 분들께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고, 독일로 오시는 분들 모두 좋은 분들 만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