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 지는 일은 자연의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일은 다릅니다.
지는 법을 기억하는 것이 피는 일만큼 중요합니다.
제주에 가면 바람이 먼저 말을 건네곤 합니다.
바람은 늘 같은 방향에서 오지만, 그 속에 실린 이야기는 제각각입니다.
현기영 작가의 소설 『순이삼촌』을 읽고 나서부터는 제주도 바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말이 적고 몸짓이 더 많은 섬의 사람들처럼,
소설은 낮은 목소리로 오래된 일을 건넵니다.
크게 울지 않지만 오래 남는 울음입니다.
올해 초부터 도서관 장독 프로그램인 ‘대하소설로 근현대사 읽기’에 참여했습니다.
이번 달에는 『시민의 한국사 2 – 근현대 편』과 정부 수립 후 제주 4•3 사건을 다룬 현기영 작가의 『순이삼촌』을 읽고 나누었습니다. 현기영 작가는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고 금기시되었던 제주 4•3 사건의 아픈 상처를 소설의 형식으로 세상에 내놓았지요. 그가 어린 시절에 겪은 공포로 말을 더듬게 되었다는 인터뷰를 보았었는데, 이 책 출간으로 고문을 당하는 고초를 겪기도 하고 책은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던 힘든 시간도 보냈습니다.
제주 4•3의 비극을 둘러싼 공포, 침묵, 가해와 피해의 뒤엉킴 속에서 『순이삼촌』은 한 개인의 운명을 넘어 공동체 전체가 겪은 균열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문학은 사실을 폭로하는 도구이면서도, 동시에 살아남은 자들의 말하지 못한 호흡을 전해주는 매개체가 됩니다. 소설 속 순이삼촌은 영웅이 아니고, 말 많은 증언자도 아닙니다. 그가 살아낸 시간은 그 자체로 기록이 됩니다.
소설 속 화자는 오랜만에 고향인 제주로 향합니다.
"내게 고향이란 무엇이었나.
나에게 깊은 우울증과 찌든 가난밖에 남겨준 것이 없는 곳이었다.
관광지니 어쩌니 하지만 그것도 지역 나름이어서 나의 향리인 서촌은 이렇다 할 관광자원도 없고 하늬바람이 몰아쳐 귤농사도 안 되는 한촌(寒村, 가난하고 쓸쓸한 마을)이었다. 적어도 내 상상 속에서 나의 향리는 예나 이제나 죽은 마을이었다. 말하자면 삼십 년 전 군 소개작전에 따라 소각된 잿더미 모습 그대로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향을 외면하여 살아오길 팔 년, 그 유맹(流氓, 흐를 류, 백성 민, 흘러가는 물처럼 이주해 온 백성)의 십 년 전으로 되찾아가려면 아무래도 조심스럽게 주저주저하며 다가가야 하리라. "... p. 43
화자는 "얻기 어려운 이틀간의 휴가를 간신히 따내" (p.42) 고향 제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탑니다. 그는 제주에 도착한 순간을 두고 "정말 눈 깜짝할 새에 고향땅 한복판에 뚝 떨어진 거였다"라며 당혹감을 드러냅니다. 회피하고 부인했던 고향을 한 시간도 안 되는 비행시간으로 마주치게 된 곤혹스러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떤 기억들이 화자를 죽은 마을의 기억과 연동되는 고향을 벗어나고 싶게 했던 것일까요?
역사의 폭력과 공동체의 고통을 드러내며 “침묵을 깨는 문학”인 『순이삼촌』을 읽고 났을 때,
지인이 선물한 『논어』에서 눈에 들어왔던 구절이 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천하에 도가 있으면 예악과 징벌이 천자부터 나오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예악과 징벌이 제후로부터 나온다”
예악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기본 규범이요, 정벌은 악을 응징하는 수단으로,
모두 천자에 의해 시행되는 것이었다. 공자가 활동한 춘추 시대는 천자의 권위가
무너져 위계질서가 무너져 혼란했고, 천자에 의해 시행되어야 할 예악과 정벌이
제후에 의해 시행되고 있다. 사회가 혼란하면 위계질서가 무너져 윗사람은 권위를
잃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넘보게 되고, 그리하여 사회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이
거듭된다......... 유일석 옮김 『논어- 옛 선인들에게서 배우는 지혜 이야기』 중에서,
공자는 “천하에 도가 있으면 예악과 정벌이 천자부터 나오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예악과 정벌이 제후로부터 나온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단순히 정치 제도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질서의 근본이 어디에서 비롯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공자에게 예악은 사람들의 삶을 바르게 이끄는 규범이었고, 정벌은 그 질서를 해치는 악을 바로잡는 마지막 수단이었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 사적인 욕망이나 권력 다툼이 아니라, 공적인 권위와 도덕성을 갖춘 존재에 의해 시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자가 살았던 춘추 시대에는 천자의 권위가 무너지고, 제후들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예악과 정벌을 남용하면서 사회 전체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현기영의 『순이삼촌』에 기록된 제주 4•3 사건 역시 이러한 “도가 무너진 사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국가가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국민의 생명과 존엄을 보호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작품 속 제주 사회에서는 공권력이 오히려 공포의 대상이 되고, 선과 악의 기준은 흐려집니다. 누구를 보호해야 하고, 누구를 벌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사라지면서, 무고한 사람들이 의심과 폭력의 희생자가 됩니다. 이는 공자가 말한 정벌이 더 이상 도덕적 질서를 회복하는 수단이 아니라, 혼란을 확대하는 도구로 전락한 상황과 닮아 있습니다.
『순이삼촌』에서 인상적인 점은 거대한 이념이나 정치적 구호보다, 그 속에서 상처 입은 한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입니다. 순이삼촌의 침묵과 고통은, 질서가 무너진 사회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이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를 보여줍니다. 위계질서가 무너지고 권위가 도덕성을 잃을 때, 그 피해는 언제나 힘없는 사람들에게 돌아갑니다. 공자가 우려했던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넘보고, 혼란이 악순환되는 사회”가 바로 이러한 모습일 것입니다.
이 두 텍스트를 함께 읽으며 나는 질서란 단순히 위에서 아래로 명령이 내려오는 구조가 아니라, 그 명령이 정당하고 도덕적일 때만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천자의 권위가 형식만 남고 도가 사라졌을 때 춘추 시대가 혼란에 빠졌듯이, 국가 권력이 정의와 인간 존엄을 잃을 때 현대 사회 역시 비극을 겪을 수 있습니다. 『순이삼촌』은 그 비극을 잊지 않고 기록함으로써, 잘못된 정벌과 무너진 질서를 다시 성찰하게 만듭니다.
결국 공자의 말과 『순이삼촌』이 공통으로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힘 그 자체가 아니라, 도와 정의이며, 예악과 정벌은 사람을 살리는 방향으로 작동할 때만 정당성을 갖습니다. 과거의 혼란과 상처를 기억하고 성찰하는 일은, 다시는 도를 잃은 권력이 비극을 낳지 않도록 하기 위한 오늘의 예악이자 정벌일지도 모릅니다.
한국역사연구회에서 발간한 『시민의 한국사 – 근현대 편』에는, ‘ 제주 4•3 사건과 제주 4•3 사건과의 직접적인 연관 속에서 발생한 1948년 10월의 여순사건’은 과거 단죄 없이 미군정은 일본 앞잡이와 친일 매국노를 기용하고, 미군정은 남한의 민주 발전에 대한 노력 경시했으며(p.331), 친일협력 세력 청산은 식민 잔재 청산과 민주주의 사회 건설을 좌우할 핵심 요소이지만, 미군정의 통치 편의 목적이 우선했고, 식민시기 관리와 경찰을 기용, 조선총독부의 행정체제를 활용하여 현상 유지정책 실시했고 당시 이승만정부는 친일협력 세력 청산보다는 반공이 우선이며 반민특위 활동을 공개적으로 방해했다고 기술되어 있습니다(p.354).
제주 출신인 강요배(1952 ~ ) 화가의 그림 동백꽃 지다 앞에 서면, 말 대신 강렬하고 선명한 색이 먼저 다가옵니다.
강요배, 동백꽃 지다, 1991
동백은 제주에서 흔한 꽃이지만, 떨어질 때의 모양은 유난합니다.
한 장 한 장이 아니라, 통째로 떨어지지요.
붉은 꽃잎들은 하나하나 떨어지지 않고, 응축된 숨을 마지막까지 품은 채 무게를 견디다 갑작스레 가지에서 몸을 내려놓습니다. 그 순간, 꽃은 시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완결을 선택한 듯 고요하게 땅으로 내려앉는 것처럼 보입니다. 윤기 남은 붉음은 아직도 살아 있어, 마치 뜨거운 말 한마디를 끝내 입 밖에 내지 못한 채 침묵 속에 닫힌 입술 같습니다. 떨어진 자리에는 바람도 함부로 스치지 못하는 여운이 남고, 겨울 끝자락의 숲은 그 붉은 낙화를 오래 바라보다 천천히 숨을 고르게 됩니다.
제주 출신 화가 강요배에게 동백꽃이 진다는 것은 단순한 계절의 풍경이 아니었을 겁니다. 붉게 피어 있다가 한순간에 땅으로 떨어지는 그 꽃의 운명 속에서 그는 말로 남기지 못한 섬의 기억을 바라보았겠지요. 캔버스 위의 동백은 장식이 아니라 증언이 되었고, 색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침묵의 무게를 띠고 있습니다. 제주 4•3의 시간은 그렇게 꽃의 형태로 다시 불려 나와, 울부짖지 않고 고개 숙인 채 화면 속에 머물러있습니다.
강요배의 그림은 역사를 재현하기보다 사유하게 합니다.
왜 이렇게 떨어져야 했는지, 왜 이 붉음은 아직도 마르지 않는지.
동백이 진 자리에서 그는 섬이 오래도록 삼켜온 기억을 조용히 꺼내어, 보는 이의 마음속에 놓아둡니다.
화가는 그 낙화를 장식으로 그리지 않았습니다.
붉음은 과장되지 않고, 화면은 절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더 오래 바라보게 됩니다.
붉은 점들이 땅에 닿아 있는 동안, 그림은 소리를 삼킨 채 묻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아왔고, 무엇을 보지 않으려 했는가.
화가는 말합니다.
“혹, 내 생에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면 내가 꼭 해야만 할 일은 무엇인가? ”
그때에 이르러서야 나는‘4• 3’을 생각했다. 알 수 없는 공포의 장막, 저 너머에 있는.
내 고향 제주, 그 섬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중략)........
그러나 아직도 도착된 언설들이 4•3 혼령과 유족들의 마음을 후벼 파고 있으니, 역사는 끝난 것이 아니다.
삶이란 무엇인가? 죽음의 그림자를 끊임없이 걷어 내는 일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언제나 천하에 가득할 것이다.
절망을 딛고 올라서는 곳에, 새봄의 꽃처럼 생이 있는 게 아닐까? “
.......『동백꽃 지다 – 강요배가 그린 제주 4•3』 중에서,
소설과 그림은 서로 다른 길로 같은 곳에 닿습니다.
현기영 작가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 시간을 건너오고, 강요배 화가는 색과 선으로 기억의 자리를 마련합니다.
하나는 말의 윤곽을 세우고, 다른 하나는 침묵의 깊이를 넓힙니다.
우리는 다 살아남은 사람들입니다.
살아남았다는 사실 하나로 빚을 진 셈이기도 합니다.
그 빚은 눈물로 갚을 수 없고, 망각으로는 더더욱 갚을 수 없습니다.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곁에 머무는 일이 가능합니다.
함께 서 있는 것만으로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내일은 성탄절입니다.
오늘 하루의 무게는 창가에 내려두고, 따뜻한 불빛처럼 서로의 마음을 비추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일의 기쁨은 서두르지 않아도 좋으니, 지금 이 순간의 온기부터 천천히 품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선물들이—평안과 용기, 그리고 오래 남을 미소, 함께 하는 기억들이—여러분의
오늘을 포근히 감싸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