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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몽몽 Apr 22. 2022

순수와 무지 그 어딘가(1학년)

코로나 속 보결에서 찾은 저경력 교사의 성장통

 매 쉬는 시간 교과서, 마이크, 학습자료가 가득 들어있는 바구니를 들고 복도를 힘차게 내걷는, 학급 초등학교의 전담 교사이다. 올해로 4년 차에 접어들고 영어 전담 경력 3년(올해가 끝나면), 담임교사 1년에 해당하는 저경력 교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3월 한 달 동안은 그 앞선 4년의 행보가 무색할 만큼 전 학년의 임시 담임으로 들어갔었다. 내 기존 영어 수업이 철회된 채, 3일 동안은 3학년, 하루 동안 1학년, 세 시간 동안은 5학년 임시 담임교사 등···.      

이렇게 된 연유는 코로나에 확진이 되신 선생님들의 빈자리에 전담인 내가 들어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략 70명이 되는 교원들 중에 약 20명 정도가 한꺼번에 코로나에 걸려 버려 학교를 못 나오게 되는 상황에서 학교에 남아 있는 선생님들이 번갈아가며 오지 않은 담임선생님의 자리를 메운다. 기존 내 수업 시간이 아니지만 다른 반의 담임 대행하는 것을 우리는 ‘보결’이라고 부른다.

     

 보결 통보는 주로 하루 전 날, 퇴근하기 직전, 당일 아침에 이루어지고 마냥 빈손으로 보결을 갈 수 없기에 부랴부랴 해당 학년에 맞는 자료를 찾기 급급하다. 예상치 못하고 격리에 들어가신 선생님들은 일주일치 수업을 준비하지 못하고 가시기에 내가 빈손으로 들어가도 수업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아닌지조차도 알 수 없는 복불복이다. 그리고 새로운 학생들과 한 시간 동안의 짧은 레포를 형성해서라도 수업을 이끌고 가야 하니 평소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나는 초기에 주로 1학년 보결을 들어가는 것을 무척이나 겁내 했었다. 매해 담임 신청할 때도 1학년은 후순위로 적어냈던 나였기에 아직 분내가 폴폴 나는 이 작은 생명체들과 일반적인 대화를 할 수 없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했었기 때문이다. 내가 1년 차, 6학년 영어 전담을 맡고 있던 그때도, 1학년 담임선생님께서 가정사로 때문에 학교에 오시지 못해 그 반에 보결을 처음 들어간 날이 있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트위드 재킷을 입은 나에게 한 학생이     

“와, 비서 같다.”

라는 말을 했었다.      


“이렇게 입으면 비서가 되는 거니?”

“코난에 그렇게 생긴 비서가 나오거든요.”     

라는 예상치도 못한 대답에 내 질문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크게 받았다. ‘이렇게 입으면 이런 사람이다.’라는 말에 편견이라는 말을 설명하기도 무색하게 그냥 1학년 학생들은 순수 그 자체였으며, 나와 함께 있던 10분 만에 선생님이라며 그린 그림과 귀퉁이에 ‘사랑해요’를 적은 종합장을 찢어 선물을 주며 사랑고백을 하는 학생이라기보단 그냥 귀여운 어린아이 정도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 보결수업이 쑥쑥 체조를 했던 것도 1학년 보결 트라우마에 화근이 되기도 했었다. 화면을 보고 체조를 따라 해 보자고 했다. 갑자기 어떤 학생이 체조의 동작이 태권도장에서 배운 것이랑 비슷하다며 갑자기 품세를 하기 시작했다. 덩달아 엄마랑 스트레칭할 때 하는 자세라며 화면에 나오는 체조와는 무관한 자세를 취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너도 나도 할 수 있는 이상한 동작들을 선생님께 뽐내기 위해 모두 본인 자리를 이탈해 내 앞에 웅성웅성 모이게 되는 어이없고도 황당한 풍경이 발생했었다. 그런 앞선 경험에 1학년은 내게 어려운 대상이었다. 6학년들은 나의 카리스마에 제압당해 빠릿빠릿하며 성실히 수업에 임했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올해 4년 차에 접어들며 들어간 1학년 보결은 첫해 보결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잘 마무리되고 있었다. 교과서 ‘봄’ (바른생활, 즐거운 생활, 슬기로운 생활의 통합버전 책)을 공부하며 ‘나비야’도 부르고 봄에 볼 수 있는 동식물들을 보았던 경험도 발표해보고 이전과는 다르게 부드럽고 간결한 문장을 구사하며 순조롭게 보결을 진행하는 내 모습에 뿌듯함이 피크를 달할 때쯤, 아차 싶은 순간이 찾아왔다.

마지막 활동으로 학습지를 나눠줄 때였다.     

‘얘들아, 앞에 친구가 뒤로 전달해주면 된단다.’


그러더니 손을 번쩍 들고 한 학생이     

‘전달이 뭐예요~?’     


나는 내적 웃음이 가득했지만 최대한 당황하지 않은 척      

‘아, 뒤로 넘겨주면 되는 거야. 건네주면 되는 거란다.’라고 대답해 주며 전달하다를 설명했다.

     

 오늘도  혼란스러운 코로나 통에 1학년의 순수함과 무지에 치인 저경력 선생님은 모든 1학년 선생님들과 그의 부모님,  아이의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에 존경심을 표한다.


그리고 다음 시간 4학년 보결을 가며 생각한다. 아이들은 자란다. 첫 해, 내게 비서를 외쳤던 학생은 올해 의젓한 4학년이 되어 있을 모습을 떠올리며 아이들에게 한 해가 얼마나 큰 성장을 가져다주는지. 외적인 성장이든 내적인 성장이든. 그 모든 성장은 놀랍도록 신비하구나.


언젠간 나도 좀 더 베테랑이 되어 1학년 아이들의 눈빛만 봐도 척척 천리안을 꿰뚫는 교사가 되어있겠지.

그리고 내게 온 보결을 즐기며 나도 성장해있겠지. 그리고 오늘 내가 만난 아이들도 순식간에 성장하겠지.

그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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