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인간 프로젝트 세 번째 이야기
프라도의 공주
마리아 테레사는 토스카나 대공국 피렌체에서 아버지 훗날 신성 로마제국 황제가 될 레오폴트 2세와 스페인 카를로스 3세의 장손녀인 어머니 마리아 루이사의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마리아 테레사와 그녀의 형제자매들은 당시 왕족 자녀들이 일반적으로 하인 수행원에 의해 양육되는 방식이 아닌 부모에 의해 자랐으며 의례적인 궁정 생활에서 크게 분리되어 단순하고 검소하게 살도록 가르침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1787년 9월 마리아 테레사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대리로 독일 작센의 안토니 왕자와 일단 대리 결혼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10월에 독일의 드레이덴에서 직접 결혼을 하였습니다. 역사에 관련된 책을 읽다 보면 그 당시의 관습이나 가치관을 알게 됩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상식들이 그때는 사회적인 통념이 되었던 것을 보면 인간이 성장하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질문을 해야 되는 것 같습니다. 오래전 결혼이라는 건 그저 권력을 확장시키기 위한 계약이었으므로_지금도 그런 결혼이 남아있을 수 있겠지만 제가 본 경험은 없습니다_ 대리 결혼이 가능했고 합스부르크 왕가의 존재를 위해 근친혼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저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그녀가 모차르트와 같은 시대에 살아 부부가 된 그들을 축하하기 위해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조바니를 공연할 예정이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정이 생겨 부부의 축하 공연은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으로 대체됩니다. 하지만 피가로의 결혼이 새 신부에게 부적절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고 오페라를 끝까지 관람하지 않고 부부는 일찍 오페라 극장을 떠났습니다. 이런 상황을 알게 된 모차르트는 그 당시 몹시 불평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마리아 테레사는 가정생활에 헌신하는 단순하고 가정적인 인물로 묘사되었고 남편 안토니와 네 명의 자녀를 가졌으나 모두 유아기에 사망합니다.
신성 로마 지국 황제인 아버지를 도와 작센에서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프랑스 이민자들 간의 회담을 주선하였고 1791년 8월 25일 필리츠 선언이 이루어졌습니다. 필리츠 선언은 프랑스혁명에 맞서 루이 16세를 프로이센과 신성 로마 제국이 공동으로 지지한다라는 내용이 담겨있다고 합니다. 1806년 나폴레옹 1세와 전쟁 중 그녀와 그녀의 가족은 작센에서 프라하로 피신합니다. 1813년에 귀환하고 후에 1814년 빈회의에서 나폴레옹과 휴전을 체결함으로써 많은 영토를 잃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리아 테레사는 1827년에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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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여름 보내세요! 오늘도 좋은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