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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Deokhye

작은 인간 프로젝트 세 번째 이야기

by 미지수

이덕혜 (1912.5.25 -1989.4.21)

프라도의 공주 번외 편


덕혜공주는 1912년 5월 25일 서울 창덕궁에서 아버지 고종 황제와 하급 궁녀인 어머니 양귀인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 양귀인은 그녀가 태어난 뒤 복녕이라는 왕실 칭호를 받았습니다.


스크린샷 2025-05-26 오후 4.37.04.png 덕혜(대략 1924)


덕혜 공주는 당시 60살이었던 고종의 첫딸이었기에 아버지 고종은 그녀의 탄생을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고종은 1916년 덕혜를 위해 덕수궁에 유치원을 설립했고 1917년에는 당시 조선 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타케를 설득하여 그녀의 이름을 황실에 등록하게 하고 공주라는 칭호를 부여하였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 고종황제는 1919년 1월 21일 급사하였습니다.


1921년 덕혜는 서울의 히노대 초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으나 1925년에 학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일본에 강제로 끌려갔습니다. 그 당시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일본에 포로로 끌려갔듯이 왕족인 덕혜 역시 어린 나이에 일본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프라도의 공주 시리즈를 그림으로 그리면서 궁중화가된 저는 인물과 역사에 대해 다양한 정보를 찾아보았는데요. 그림을 계기로 역사 공부를 하면서 드는 생각은... 배움의 길은 끝이 없구나! 그리고 영화 덕혜옹주를 한 번 더 보았습니다.


1929년 어머니 양귀인의 사망 소식을 듣고 덕혜는 정신적으로 더욱더 힘든 시기를 겪게 됩니다. 1931년 5월 그녀는 일본인 타케유키 백작과 원치 않은 결혼을 강요당하고 그다음 해에 딸 정혜(마사에)를 출산합니다. 하지만 덕혜는 정신 질환을 앓게 되고 여러 해를 정신병원에서 보내게 됩니다. 그녀의 남편 타케유키는 1955년에 그녀와 이혼을 하고 그다음 해 1956년에 딸 정혜는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덕혜의 병세는 서서히 깊게 악화되어 갔습니다. 공주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인생은 일본의 꼭두각시에 불과했습니다.


1962년 1월 26일 덕혜는 김을한 기자의 도움으로 한국으로 37년 만에 돌아오게 됩니다. 대한민국이 1945년 8월 15일에 광복을 맞이하고 왜 그녀는 7년이나 지나 대한민국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는지 저로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덕혜는 한국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기록이 삭제되었기에 국적을 다시 회복하고 이덕혜라는 이름으로 살게 되면서 한국에서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기 시작합니다. 덕혜는 창덕궁 낙선전에서 한 동안 지내게 됩니다. 그녀는 노령으로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지냈고 1989년 4월 21일에 창덕궁 수강 전에서 사망합니다.


화가로서 다른 사람의 모습을 그린다는 것은 인물에 대한 이해와 화가의 정체성도 그림 속에 묻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한 묘사도 중요하겠지만 현대시대는 사진에 인물 뽀샵을 하듯이 예전에는 화가가 직접 인물이 아름답거나 멋지게 보일 수 있도록 보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같은 인물이더라도 그리는 화가에 따라 같은 사람이 다른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제가 그린 공주들은 저의 관점이 더해진 초상화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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