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관찰해 본다.
사실과 감정을 분리해서 사건을 바라보면 좀 더 정확하게 사태를 파악하지 않을까?
그래서 아들과 있었던 일을 써본다.
나의 내면을 관찰하는데 이것이 사실이지만 거기에 더해지는 감정들이 있다.
이것이 사실인지 감정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사실과 감정을 구분 못했구나?
그래서 감정이 매번 흔들렸던 것 같다.
[사실]
2주 전쯤 아들이 학원을 그만두었다.
그때부터 친구를 만나 늦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요일 아침 7시에 일어나 어디 나갈 준비를 한다.
왜 일찍 일어났냐는 말에 친구랑 자전거 중고 거래를 하러 가기로 했단다.
어디로 가냐고 물어보니 집에서 가까운 경기권이다.
다녀와서 시험공부를 친구랑 도서관에서 같이 한다고 책을 챙겨간다.
점심때쯤 전화를 하니 안 받는다.
전화받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만원 입금해 달라고 전화가 온다.
축구하러 간다고 저녁 먹기 전까지 온다고 톡을 한다.
7시쯤 신랑에게 귀가 전화를 독촉해 보라 말한다.
집으로 귀가한다.
[내 감정 변화]
사실대로 나열했지만 내 감정은 사실과 무관하게 이리저리 튀어 다닌다.
그래서 글로 써 내려보면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있을까 싶어 적어보기로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던 친구와 축구를 하면서 친하게 되었다.
급격히 친하게 되면서 저녁마다 나가서 밤에 들어온다.
아이가 집에만 있고 놀고 싶어도 숫기가 없어 친구에게 전화하지 못하던 아이였다. 그래서 걱정이었는데 마음 맞는 친구가 생겨서 정말 감사했다. 하지만 또 다른 감정이 올라왔다. 늦게 다니는 아들이 걱정이 되었다.
사실 이번 자전거 중고 구매에 따라간다고 했을 때는 아들의 안 하던 짓이라서 너무 놀랐다. 아들의 뭔가가 깨지는 순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녀오라고 말했다.
앞가림을 잘하는 아들이니 걱정은 없었다.
가족과의 여행 말고는 처음이고, 어른들 없이 그들의 지하철 여행이 내가 설레기도 하고 아들의 얼굴을 보니 기대를 하는 것이 역력했다.
어른들 없이 뜻이 맞는 친구들이랑 떠나는 첫 모험이다. 작은 어려움이겠지만 친구들과 어려움도 협동해서 헤쳐나갈 것이라 생각한다. 좋은 어른들이 옆에서 도와줄 것을 상상해 본다.
공부한다는 말을 믿은 내가 어리석은 것일까?
집 주변으로 와서도 운동장 가서 실컷 축구를 하고 저녁 먹기 전에 온다고 한다.
12시간을 밖에서 친구들과 부대끼며 놀았다.
그 의미는 아이가 그 친구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안하다. 스스로의 앞길을 챙기지 못하고 정신없이 노는데 푹 빠져서 다닐 것 같은...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도 해봐야지... 학창 시절 친구랑 그렇게 한번 안 놀아보면 후회되지라는 생각도 들지만 옆길로 샐까 걱정이다.
아이의 행동을 보면서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을 하고 있는 내가 보인다.
바른 행동을 해도 걱정, 안 해도 걱정.
바른 행동이라는 것도 내가 정해놓은 기준, 나의 인식이라고 나를 달랜다.
왜 나는 둘째, 셋째는 걱정이 안 되고 항상 첫째만 걱정하지?
가만 생각하면 둘째가 친구랑 버스 타고 어딜 다녀와도 잘 다녀오라 했고,
셋째가 학원에 늦게 도착했다 연락이 와도 별걱정을 하지 않았다.
유독 첫째한테만 그러는 걸까?
이쯤이면 아이가 문제가 아니다.
내가 문제이다.
아이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의 행동을 판단하고 있었다.
이건 이렇게 했네. 다행이다. 엄마가 없어도 전화를 해서 설명하고 설득했구나.
아 이건 좀 아쉽다. 좀 더 연습해야 하는 부분이네.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준다고 생각했는데 곧이곧대로 듣지 못하고 나 혼자 판단을 한다. 아이가 엄마 없이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을지, 세파에 적응을 할 수 있을지 가늠을 하고 있다.
아이도 아마 내가 하는 잘못된 행동, 불안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 부모니까 말은 못 하고 참고 있을 수도 있다.
아이가 부모와 대화가 안돼 느끼는 좌절감도 분명 있을 것이다.
알지만 아이랑 그냥 친구처럼 공감하고 웃고 떠드는 것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 살아갈까 나 없이도 잘 살까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걱정하는 부모보다 격려해 주고 응원해 주는 부모이고 싶지만 그게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