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다 지나갔다.
한차례 비가 오고 나니 더 가을로 가는 길목이 깊어진다.
매미 소리가 사라지고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전에는 들어도 듣지 못했던,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생겼다는 것이 감사하다.
아침에 잠깐 나와서 걷다 보니 날이 좋아 뒷동산까지 올랐다.
가끔 아이들과 오르던 동산이 오랜만에 올라서인지 새롭게 느껴졌다.
[사실]
뒷동산은 그전부터 동네에 있었던 산이다.
전날의 비로 바닥이 젖어있다.
나뭇잎도 계단에 착 달라붙어 있다.
산으로 오르는 길에 여름에 잘 자란 가지들이 뻗어있다.
그늘이라고 이끼들이 돌에 붙어 세력을 뻗고 있다.
화강암이 많은 산이라 곳곳에 조경을 해 놓은 돌들이 화강암이다.
무궁화 꽃줄기가 해가 있는 쪽으로 돌려 피어있다.
나팔꽃이 덩굴로 감아올려 꽃이 한걸음마다 하나씩 피어있다.
양반집에 많이 심었다던 배롱나무꽃이 지는 것이 여름 끝자락임을 알려준다.
정상이라고 말하려니 조금 민망한 정상에 올랐다.
샌드백이 나무에 걸려 있다.
산에 사람들이 사용하기 편하게 여러 시설을 갖춰 놓았다.
산을 매번 오르면서도 못 보고 지나쳤는지 아님 이번에 걸어놨는지 전신 거울이 걸려 있다.
노란 꽃이 있어서 들여다보니 참외꽃 같다.
도토리 채취금지라고 플랜카드가 걸려 있다.
이름 모를 하얀 꽃이 피어있다.
길목에 오래전 잘려나간 나무의 밑동이 있다.
내려오는 길에 음악소리가 나는 곳에서는 에어로빅이 한창이다.
[느낌]
산을 오르며 본 나팔꽃은 너무 가녀리고 후~하면 불어 떨어질 것 같은데 어제의 비에도 끄떡없었다.
가을의 시작을 지고 있는 배롱나무가 보여준다. 더운 여름이었지만 가는 세월이 아쉬워진다.
참외꽃이 왜 거기서 피었나요?
아마 사람들이 참외를 먹고 씨를 뱉었나 보다.
도토리를 주워 가는 사람들은 도토리가루를 진정 먹는 걸까?
도토리 가루를 만들려면 도대체 얼마만큼을 주워간다는 말이냐고.
먹을 것도 많은데 관찰하고 놓고 가면 안 되는 걸까?
길목에 잘린 나무는 사람들의 길이 좁아져 잘라낸 모양이다. 편의를 위해 잘린 나무를 보며 정말 인간중심의 세상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에어로빅을 꼭 산에서 해야하는 걸까?
자연을 느끼고 싶어 뒷동산에 올랐다.
산을 오르면서 만나는 사람들, 눈에 들어오는 것들, 들리는 소리가 산에서 볼 법한 풍경이 아니다.
매번 오를 때마다 이런 풍경이었을 텐데 그때는 느끼지 못했다.
좋게 말하면 사람들과 공생하는 산. 정말 아낌없이 내어주는 산.
자연보호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광경도 목격한다.
말 못하는 산이 힘들다는 말을 내게 건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