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동산'으로 글쓰기
가끔 오르는 뒷산을 소로우의 책에서 조우한 자연을 만나러 올라가 보기로 한다. 소로우의 자연은 정말 다양한 색채와 풍경 그리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힘도 느껴진다. 자연의 신비로움과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한다.
귀뚜라미 노래는 숲의 개똥지빠귀와 비교할 때 선율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지만 훨씬 더 현명하고 성숙하다. 이 정수로 인해 나는 여름을 통해 가을을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여름의 작용이 하찮게 보일 때도 있다. 몹시 바쁘게 윙윙거리며 지나가는 꿀벌을 붙잡고 나는 네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아느냐고 묻고 싶다. 나는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막 꽃을 피기 시작한 미나리아재비로부터 다년생 초목에게로 건너갈 수 있다. 귀뚜라미는 가을을 재촉하는 가수이다. 그의 노래는 계절을 초월한다. 아니면 계절에 한참 뒤처져 있다. 일종의 고귀한 지각이다. 귀뚜라미 소리는 시간과 공간을 소멸시킨다. 여름은 시류에 편승하는 것들을 위한 것이다.(주1)
소로우의 책을 읽기 전에 뒷산은 나에게 자연이었다. 산의 정기를 받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산을 오르곤 했다. 오늘은 아이들 학교 보내고 천천히 혼자 올라본다. 근데 산을 오르는 내내 '뒷산은 자연이 아니었구나.'가 느껴진다. 그냥 인공 공원 같은 느낌이 계속 들었다. 뒷동산이라도 집들이 들어서기 전부터 산이었다. 먼저 살았던 동물들도 식물들도 있었다. 사람이 집을 짓고 살면서 그것의 질서를 파괴하면서 뒷산의 평화는 깨졌다.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은 참 무서운 일이다. 이렇게 삽시간에 자연이 파괴되고 편할 대로 바꿔놓는다. 언뜻 보면 뒷산도 자연 같다.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꽃과 나무만 있다고 자연이 아니었다.
9시가 거의 다 되어 올라갔는데 뒤따라오던 아주머니가 나를 앞질러 올라간다. 급하게 올라가는 이유가 있는 듯 보였다. 예상이 들어맞았다. 9시부터 에어로빅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 시간을 맞추기 위해 열심히 나를 제치고 걸은 것이다. 참 부지런히 간다는 생각과 에어로빅을 하면서 큰 음악소리와 사람들이 만나던 자리는 민둥산이 되어있었다.
처음은 낯설어 스트레스받았던 동물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항 주변에 사는 나는 그 소리도 적응이 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신경이 거슬리는 건 사실이고, 그 소리가 없으면 더 좋을 것이라는 것도 알지만 비행기 소리를 나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냥 산다. 아마 거기에 사는 동물들도 살아가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적응해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나는 두발이 달려 자유로우니 이사라도 할 수 있지만 이제 산이 아닌 산에서 사는 동물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거나 스트레스로 죽을 것 같다.
내려오는 길에 바싹 잘린 나무밑동이 눈에 들어온다. 원래 있던 산을 공원으로 조성해서인지 길 앞을 가로막은 나무를 그루터기를 남긴 채 잘라 버린 것 같다.
갑작스레 나무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 자리에 먼저 자리 잡은 나무이다.
지나다니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잘라 없애버리고 온갖 기구를 다 가져다 놓고 떨어진 도토리란 도토리는 다 가져가고 큰 소리로 에어로빅을 하는 사람들, 새들보다 더 일찍 산을 오르며 떠드는 사람들. 자연은 다 내어준다는 것을 사람들은 무의식으로 아는 걸까?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되갚음이 있어야 함을 사람들은 잊고 사는 것 같다.
이 부분의 효용에는 하나하나 세목을 늘어놓을 필요는 없다. 그 목록은 한계가 없고, 그 실례는 뚜렷하여, 나는 이런 실례는 독자의 깊은 연구에 맡기기로 하고 다만 개괄하듯이, 이런 실리와도 같은 은혜는 그 이상의 복리와 관계되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 둘 뿐이다. 사람에게 밥을 먹이는 것은, 다만 밥을 먹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일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주2)
무한정 주는 자연도 인간이 무분별하게 사용한다면 선을 향한 자연도 복리로 재앙을 우리에게 줄 수 있다.
동식물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에서 태어난 우리이다. 사람이라 특별하게 자연을 훼손할 특권은 없다.
너무 진부한 말일 수도 있지만 아이들도 자연을 느끼고 살 수 있도록 잘 두어야 한다.
주1>소로우의 일기, 헨리데이빗소로우, 도솔.
주2>자기신뢰철학, 에머슨, 동서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