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첫 눈을 맞이 한 날,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아이에게 얼마나 신기할까 생각하고, 함께 눈을 맞으며 어린시절 추억을 들려주던 때가 엊그제 같다. 존재자체로 아름답고 소중한 시절이다.
그 아이가 말을 시작하고 아장 아장 걷다 한글이라도 일찍 떼면 천재가 된다. 그리고 학교에 간다. 내 아이가 천재인것만 같은 엄마는 아이를 더 잘 키우고싶다. 지덕체를 두루 갖춘 리더십과 이웃을 사랑할 줄 아는 따뜻함 마음까지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온갖 노력을 한다. 하지만 하나 둘 버거워진다. 하지만 이미 형성된 높은 기준은 쉽게 내려 놓을 수 없다. 훈육을 잘하고 싶지만 욕심은 이성을 마비시켜 아이에게 해서는 안되는 말과 행동을 하게 되고 곧 후회도 해 보지만 그런 순간도 익숙한 상황은 패턴이 되어버린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게 되면 패턴은 더 자주 반복된다. 차차 아이에 대한 기대는 무너져가고 엄마는 불안과 후회 그리고 밑도 끝도 없는 학교와 교육과 사회에 불만이 터져 나온다. 아이들 학원비는 고스란히 빚으로 쌓여가고 그런 희생에 비해 성적은 만족스럽지 않다. 아이가 원망스러울 지경이다.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재력 , 엄마의 정보력 뭐 하나 맞아 떨어지는 것도 없다. 홧김에 학원도 끊어버리고 싶지만 지금보다도 못한 상황이 될까봐 이도 저도 못하는 현실이 짜증날 뿐이다. 그렇게 갈등이 극에 달하면 부모는 비통한 심정으로하나 하나 내려놓기 시작하고 자녀도 차츰 숨통이 틔인다. 그래도 엄마와 자식사이의 긴장과 갈등은 팽팽하다. 이런 자녀와의 관계는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끝이난다. 그렇게 절실하고 간절했던 것이 대체 무었이었길래 ...부정하고 싶지만 대학이 모두에게 중요했었다는 것을 부정하기 힘들다.
나 또한 그런 과정을 거쳤다. 자식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불안과 진학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그것을 덜어내니 나 자신도 돌아보게 되었고, 사교육비가 줄어 경제적으로도 좀 나아졌다. 그렇지만 아이들과의 관계는 단박에 좋아지지 않았다. 예전과 달라지긴 했는데 습관처럼 나오는 예전 의사소통방식은 관계를 더욱 힘들게 했다. 정말 모두에게 힘든 시기였다. 결국 교육환경을 바꿔보기 위해 이사를 했다. 그때도 복잡한 심정은 여전했다. 뭔가 억울하면서도 좀 교육이 달라져야한다는 생각과 함께 우리 아이들이 마냥 희생자 같이 느껴졌다.
이사한 곳에서 반학기를 지내고 아이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학기초에 학부모 총회를 했다. 어설프긴 했지만 총회에서 학부모회임원을 뽑았다. 운영위원을 뽑는데 경선을 하여 투표소에 들어가서 투표를 했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그런 신기한 경험을 하고 교실로 가서 나는 학급 학부모 대표가 되었고, 학급대표들이 모인 자리에서 학년대표가 되었다. 학부모회활동도 남달랐다. 학부모 교육으로 회복적 정의 연수를 받고 한 학년에 들어가 학부모가 서클 수업을 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학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학부모 학교참여의 의미를 새기게 되었으며, 조금씩 나도 바뀌어 갔다. 이듬해 학교가 혁신학교로 지정이 되었고, 나는 학부모회활동을 더 열심히 하게되었다.
최근에 짐정리를 하면서 부모 교육자료를 보게 되었다. 혁신학교,자녀와의 대화와 소통 등 여러 교육자료들이 있었다. 오래되고 손글씨가 빼곡하여 반가움에 들춰보았다. 당연히 학부모회활동을 본격적으로 열심히 한 2018년도 이후 자료겠거니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이전 자료들이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학부모 교육을 받았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되돌아보니 아이중 한 명은 꼭 반 대표를 하게 했었던 기억이 났다. 학교소식은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학부모교육도 충실히 다녔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내용이 궁금하여 자료를 더 깊이 들여다 보았다. 지금 내가 공부하는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문득 학부모회활동을 하며 자기 소개를 할때가 떠올랐다. 나는 "학교는 선생님에게 맡기고 학교를 젼혀 가지 않는 학부모입니다" 라고 말해 왔다. 왜 그랬을까? 내가 의도해서 거짓을 말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 자료집을 보니 필기도 아주 세심하게 했다. 그때도 노력을 많이 했었다. 교육도 나름 좋았던 기억이 차츰 생생히 떠오른다. 근데 그때는 지금처럼 각성하고 활동하지 않았다.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는 부모교육을 받았으면서 왜그랬을까?
어쩌다 이렇게 열성 학부모가 되었을까? "혁신학교 학부모리더 양성과정"은 학부모로서 좀 다르게 살아야겠다 내지는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 교육은 특별했다. 5살 꼬맹이를 데리고 갔는데 교육에 잘 참여 하도록 배려 해서 따로 데려가서 돌봄을 해줬다. 교육이 강의식이라기 보다 학부모들이 그룹으로 하는 활동이 주가 되었고, 교사와 학부모가 그룹을 이루어 하는 활동도 있었다. 교사와 학부모가 허심탄회하게 웃고 울면서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나눌수 있었던 시간은 특별한 경험이었고 학부모로서 정체성을 갖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 이후 부터 학부모 교육은 공부로 다가왔다. 내가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알아서 제대로 학부모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멋모르고 학부모회활동을 시작하게되었다.
학교활동을 하며 그런 경험을 다시 하고 싶었다. 그런 준비되지 않은 열정으로 시작했던 활동은 힘들었다. 과거의 경험과 기억은 온갖 판단과 남탓을 하게 만들었고, 그리고 경험해 보지 못한 자치는 어렵고 힘들었다.
나는 교육전문가도 아니고 교사도 아니고 단지 아이가 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학부모가 되었다. 그래서 학교를 많은 부분 모른다. 사람은 모르면 두려움도 많다.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속담처럼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이슈가 되면 아무것도 아닌것이 아무 것도 아닌것이 아닌게 된다. 그런 경험이 켜켜이 쌓여 소통과 대화의 걸림돌이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대와 존중은 그러한 걸림돌을 딛고 넘어 솥뚜껑을 솥뚜껑으로 제대로 보고, 더 나아가 자라까지 잘 살 수 있는 맑은 냇가에 방생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갖게 할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