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지훈은 중고거래 앱을 켜고 있었다. 학비를 아끼려, 시세보다 싼 노트북을 찾던 중이었다. 그때 눈에 띈 글.
“맥북 싸게 팝니다. 급처분.”
시세보다 무려 40만 원은 저렴했다. 프로필 사진은 30대로 보이는 평범한 여성. 매너온도는 70도 이상으로, 누구라도 믿고 거래할 만한 높은 점수였다. 지훈은 망설임도 잠시, 곧장 채팅을 열었다.
지훈: 맥북 혹시 팔렸나요..?
판매자: 오늘 저녁 늦게 가능하세요? 낮엔 바빠서요.
지훈: 네, 어디서 뵐까요?
판매자: 사람 없는 데가 좋아요. 시끄럽지 않고… 옥수역 근처 주차장 괜찮으세요?
지훈: 네, 괜찮아요.
판매자: 제가 이민을 가게 돼서 싸게 처분하고 가려구요. 좋은 분이 쓰셨으면 해요.
판매자: 요즘 사기가 많아서요. 픽업 전에 신분확인만요. 성함/연락처 남겨주실 수 있을까요?
지훈: 김지훈이고요… 전화번호는 010-9021-231X 입니다.
조금 뒤 문자가 도착했지만, 지훈은 순간 멈칫했다.한밤중, 주차장. 거래 장소치곤 이상했다. 하지만 곧 머릿속에서 다른 상상이 부풀어 올랐다.
“그래도… 40만 원은 크다.”
등록금, 알바 시간, 노트북 사양. 혹시 이게 진짜 ‘득템’일지도 모른다. 운이 좋으면 내일부터 최신 맥북으로 과제를 할 수 있는 거다. 불안감이 고개를 들었지만, 그 위로 더 달콤한 목소리가 속삭였다.
“여자라니까 괜찮겠지. 매너온도도 높잖아. 작동만 확인하면 손해 볼 일은 없잖아. 어쩌면 이번만큼은 정말 행운일 수도 있어.”
지훈은 결국 합리화했다. 가슴 한구석에 알 수 없는 불편함이 남아 있었지만, 설렘 섞인 기대가 그것을 눌러버렸다.
밤 11시 40분.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 여름밤인데도 공기는 차갑고 축축했다. 형광등은 불안하게 깜빡였고, 벌레 부딪히는 소리가 텅 빈 공간에 메아리쳤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판매자는 보이지 않았다. 발길을 돌리려던 순간…
“혹시… 중고거래 하러 오셨어요?”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돌아보니 체격 큰 남자가 서 있었다. 평범한 옷차림이지만, 웃음기 없는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아, 네. 혹시 사모님 대신…?”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아내가 연락드렸고, 오늘은 제가 나왔습니다. 맥북 있어요. 이쪽으로 오시죠, 김지훈씨 맞죠?”
지훈은 순간 섬뜩했다. '닉네임만 보이는 앱인데, 내 이름을…?' 하지만, 곧 스스로 눌렀다.
‘맞다..아까 내가 이름 알려줬지. 이런 거래도 흔하잖아.’
남자는 CCTV가 닿지 않는 주차장 깊숙이 걸어갔다. 지훈은 고개를 들어 CCTV를 확인했다. 순간 깨달았다. 그 길에는 단 하나의 카메라도 없었다. 뒤에서 또 다른 발소리가 겹쳤다. 규칙적으로, 그의 보폭에 맞춰 따라오는 소리. 지훈은 목이 말라 침을 삼켰다. 손을 떨며 핸드폰을 켰다. 그러나 화면에는 낯선 글자가 떴다.
“서비스 불가. 신호 없음.”
더 들어가자, 검은색 스타렉스가 보였다. 차량 옆엔 무표정한 남자가 서 있었고, 슬라이딩 도어 너머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운전석 창문이 천천히 내려갔다.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노트북 여기 있습니다. 차 안에서 확인하세요.”
지훈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쳤다.
“괜찮습니다. 밖에서 보면 돼요.”
앞의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입술만 웃고, 눈은 전혀 웃지 않았다.
“배터리가 없어서 충전 중이라… 차 안에서 보셔야 해요.”
그 순간, 등 뒤에서 거친 팔이 목을 감싸더니 두꺼운 비닐이 머리를 덮었다. 숨이 막혔다. 비닐 안쪽이 금세 습기로 뿌옇게 차올랐다. 헐떡이는 숨소리가 자기 귀 바로 옆에서 증폭됐다. 귓가에 낮고 건조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가만히 있어. 괜히 발버둥 치면 간 터진다."
지훈은 몸부림쳤다. 그러나 거친 팔에 단단히 붙잡혀, 스타렉스 쪽으로 질질 끌려갔다. 슬라이딩 도어가 벌컥 열렸다. 비닐 틈으로 깜빡이는 불빛이 스쳤다. 쇠맛 섞인 냄새. 낮게 씹히는 신음. 뿌연 시야 너머로 바닥에 웅크린 형체가 어렴풋이 꿈틀거렸다. 사람이었다.
“젠장… 이 새끼는 눈이 다 나갔네. 못 쓰겠어.”
앞의 남자가 툭 내뱉었다. 지훈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뭐야… 누구야….”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리고 그의 몸도 뒷좌석 안으로 거칠게 내던져졌다. 스타렉스 문이 철컥 닫히는 소리와 함께, 주차장은 다시 적막에 잠겼다. 잠시 후, 바닥에 떨어진 지훈의 핸드폰 화면이 깜빡였다. 마지막 알림이 도착해 있었다.
“거래 완료되었습니다 :)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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