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아파트 404동 401호를 계약했을 때부터 뭔가 걸렸다. 같은 평형대보다 전세가가 눈에 띄게 낮았다. 부동산에서는 “원래 집주인이 지방으로 내려가서 급하게 내놓아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했다.
엘리베이터 게시판엔 스카치테이프가 반쯤 떨어진 안내문이 덜렁거렸다.〈404동 401호 반송 우편물 보관 안내 – 관리실〉'예전 주인이 택배를 두고 갔나...?' 승민은 그렇게 생각하며 관리실에 갔다.
관리실 유리창 너머에 앉아 있던 직원이 스탬플러를 톡톡 치며 고개를 들었다.
“404동 401호 새로 들어 오셨죠? 전입신고는 하셨어요?”
“네. 근데… 전에 살던 분은 급히 나가신 건가요?”
승민이 쓰레기봉투랑 우편함 열쇠를 건네며 넌지시 물었다.
직원이 고개를 기웃하더니, 옆에 쌓인 반송봉투 더미에서 하나를 슬쩍 뒤로 밀었다.
“요즘 다들 급하죠. 서류상으론 정상 퇴거예요. 뭐… 별일은 아니고.”
“우편물이 자꾸 와서요?”
“그 집은 좀 그랬어요. 주소 변경이 늦었나 봐요. 반송은 저희가 처리합니다.”
직원 시선이 잠깐 〈404동 401호 반송 우편물〉 스탬프에 닿았다가 빠르게 돌아왔다.
“복도 CCTV는 잘 나오나요?”
“4층 카메라가 가끔 신호가 튀어요. 기사 불러놨어요. 밤에는 택배가 늦게 들어오니까, 인터폰 확인하시고 받으세요.”
직원은 말끝을 흐리며 명부를 넘겼다. 빳빳한 종이 모서리가 ‘최…’로 시작하는 이름을 스치고 사라졌다.
“필요한 건 또 없으세요?”
“아… 괜찮습니다.”
유리창 너머에서 직원의 미소가 어딘가 얇게 느껴졌다.
“네, 401호. 우편물 오면 연락드릴게요. 반송은…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승민은 운이 좋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렇게 이 집에 들어왔다. 입주한 지 일주일쯤 지난 어느 저녁.
현관 앞에 낯선 상자가 있었다. 주소와 이름은 정확했지만 보낸 사람 칸이 비어 있었다. 상자를 들고 들어와 테이프를 그었다.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이 툭 떨어졌다.
오늘 아침, 출근하는 자신의 등. 계단 난간 끝에 점 하나처럼, 흰 소복을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승민은 사진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장난이겠지. 테이프 본드 냄새가 손끝에 오래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다음 밤에도 상자가 있었다. 사진 속 승민은 퇴근해 문 앞에 서 있었다.
복도 끝 어둠 속에서, 그 여자가 이쪽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 뒷면엔 잉크가 막 찍힌 듯 번지지 않은 도장이 선명했다.
“배송 완료.”
승민은 경비실로 전화를 걸었다가 끊었다.민폐 같았다. 엘리베이터 모니터를 보려고 내려갔다.
4층 복도 카메라는 ‘신호 불량’ 안내만 떴다.
올라오는 동안, 등줄기의 땀이 식어 갔다.
또 다른 밤.
상자는 한밤중에 도착해 있었다.
비닐과 먼지 냄새가 거실 공기에 스며들었다.
사진 속 장소는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자신의 측면.
창문 유리에 흰 소복 여자의 얼굴이 얇은 물기처럼 발라져 있었다.
사진 하단 여백에 삐뚤빼뚤한 글씨.
“부재중. 거실 배송 완료.”
승민은 커튼을 젖혔다.
베란다 바깥, 가로등과 빈 놀이터만 푸르게 떨렸다.
휴대폰으로 112를 눌렀다.
통화 버튼 앞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이걸 뭐라 설명하지.
화면을 껐다.
새벽이었다.
쿵, 쿵— 문 두드리는 소리에 깼다.
문을 열자 또 상자.
사진 속 승민은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다.
방 문틈에서 드리운 소복 자락이, 사진 아래를 스쳤다.
사진을 구겨 쓰레기통에 넣었다.
냉기가 발목에서부터 차올랐다.
스탠드를 켜 둔 채 밤을 새웠다.
에어컨을 켜지 않았는데도 공기에서 필터 먼지맛이 났다.
휴대폰은 화면을 켰다 껐다 했다.
알 수 없는 짧은 신호음이 한 번씩 박혔다.
마지막 상자는 묵직했다.
테이프를 자르자 폴라로이드들이 층층이 쏟아졌다.
문 앞에서 상자를 여는 자신.
거실.
주방.
욕실.
집 안 모든 공간이 순서대로 박혀 있었다.
장면이 넘어갈 때마다, 흰 소복 여자는 한 칸씩 가까워졌다.
싱크대 수전의 은빛에, 욕실 타일의 물기 사이에, 그녀의 형체가 번졌다.
맨 아래 마지막 사진.
손끝이 얼었다.
침대 위에 누운 자신.
바로 옆에서, 여자가 그의 손을 꼭 잡고 나란히 누워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다.
가슴은 오르내리지 않았다.
사진 뒷면에는 커다란 송장이 붙어 있었다.
- 배송 허브: 무궁화아파트 404동 401호 Hub
- 품목: 이승민
- 수취인: 최은정
- 상태: 허브 도착
종이가 손에서 미끄러졌다.
승민은 비틀거리며 침실로 달려갔다.
문을 여는 순간, 사진 속 장면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침대 위, 자기 자신.
옆에, 흰 소복 여자가 손등을 얼음물 같은 점성으로 움켜쥔 채 조용히 누워 있었다.
숨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방 공기는 응고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인터폰이 혼자 켜졌다.
기계음이 평평하게 방 안을 밀었다.
휴대폰, 초인종, 우편함 스피커에서 같은 음성이 겹쳐 흘렀다.
“이승민 배송완료. 수령인 최은정.”
거실 조명이 한꺼번에 꺼졌다. 404동 401호 주방의 전등이, 완료된 배송을 확인하듯 한 번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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