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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목지에서 따라온 것

by 달빛소년

살목지는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에 있는 저수지다. 낚시 좋아하는 회사 동료 상훈이 거길 “성지”라며 여러 번 다녀왔다고 해서, 그 말을 믿고 따라간 게 금요일 밤이었다.


퇴근길에 산 라면과 삼겹살, 가스버너, 텐트. 둑길을 따라 내려가니 물가가 낮게 열렸고, 갈대 끝에서 진흙 냄새와 쇠 비린내가 번갈아 코끝을 찔렀다. 건너편에는 보안등 하나가 박자 없이 깜빡였다. 그 빛이 물안개 위를 얇게 긁고 지나갔다. 이상하게도 그날은 다른 낚시꾼이 없었다.


우리는 텐트를 치고, 로드 두 대씩 펴고, 헤드랜턴 밝기를 낮췄다. 찌에 봉돌을 단단히 물리고 캐스팅을 하니, 수면이 느릿하게 입을 다물었다. 상훈이 말했다.


“여기, 보강지랑 쌍둥이라더라. 대물 나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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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면 둘 다 닮았겠지. 대물 손맛도.”


그때 멀리서 늪을 누르는 발소리 같은 게 한 번 났다. 물새가 날아오른 건지, 바람이 뒤집힌 건지 알 수 없는 소리. 우리는 동시에 뒤돌아봤다가,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돌렸다. 밤은 생각보다 빨리 가라앉았다.


자정이 조금 지났을 때였다. 찌불이 정지화면처럼 고정된 바로 그때, 둑길 위에서 헤드랜턴 하나가 내려왔다. 등산모자, 목 긴 장화, 쉰 중반쯤으로 보이는 아저씨. 우리가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그가 먼저 말했다.


“많이 잡았나? 원래 사람들 북적였는데, 귀신 소문난 뒤로 요샌 통 안 와. 사람 없으면… 우리 같은 낚시꾼들만 좋지, 안 그래?”


“허허, 그렇죠.”


“근데 조심혀. 밤엔 여자가 따라다닌다 카더라. 물은 더 그렇고.”


장난 반, 충고 반의 말투였다. 그는 우리 자리에서 세 칸 떨어진 곳에 순식간에 채비를 폈다. 손놀림이 유난히 축축한 느낌이었다. 가까이 오며 담배 불을 빌릴 때, 라이터 불꽃이 파랗게 일어났다. 더 이상한 건 그의 장화였다. 물가를 걸었는데도 젖은 자국이 하나도 없었다. 모래 위가 말끔했다.


“여기, 여자 있어요?” 상훈이 농담처럼 묻자 아저씨가 웃었다. 입은 웃었지만 목젖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찌를 던지자 수면에는 파문이 없었다. 대신 물 색만 한 톤 짙어졌다. 저수지가 삼켜 숨긴 듯했다. 우리는 말없이 라면 물을 올렸다. 끓는 소리가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가 했다. 바람 때문이라기엔, 그 리듬이 사람 숨 같았다.


새벽 세 시 반, 모기향이 반쯤 남았을 무렵, 아저씨는 둑 위로 올라가다 말고 한 번 돌아봤다. 눈빛이 빛을 반사하지 않았다. 곧 물안개에 녹듯 사라졌다. 장비 소리도, 발소리도 없었다. 남은 건 약한 고무 냄새였다. 나는 그 냄새를 어디서 맡았더라 하고 혀끝으로 더듬으며 텐트 지퍼를 닫았다. 물가에서 먹는 라면은 이상할 만큼 맛있었다. 삼겹살에 소주까지 얹었다. 물고기가 통 오지 않아, 우리는 조금 일찍 누웠다.


그날 밤, 꿈을 꾸었다.


텐트 지퍼가 저절로 반쯤 열렸다. 그 아저씨 얼굴이 빛 없이 들어왔다. 그 뒤로 젖은 머리카락이 바닥을 끌며 따라왔다. 그는 신난 아이처럼 손뼉을 치며 말했다.


“거봐, 내가 있댔지! 뭐랬어!”


그 말과 함께 여자가 기어 들어왔다. 코가 있을 자리만 움푹 파인 얼굴. 물에서 막 건져 올린 것 같은 무게가 내 가슴에 올라앉았다. 늑골 사이가 눌렸다. 숨이 들어가지 않았다. 헤드랜턴이 켜진 것도 꺼진 것도 아닌 반쯤의 어둠에서, 그녀의 손톱이 젖은 비닐처럼 살 위를 미끄러졌다. 온도가 없는 차가움이 등에 붙었다. 아저씨가 신나게 말했다.


“봐봐, 있지? 있지! 둘이지? 내가 뭐랬어!”


바로 그때, 상훈이 내 옆 텐트에서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꿈인데, 현실처럼 들렸다.

아침은 유리처럼 맑았다. 물안개는 거짓말처럼 걷혔고, 갈대는 어제와 같은 자세로 서 있었다. 상훈 얼굴은 색이 빠진 종이 같았다.


“꿈…” 그가 말했다. “너도 봤냐?”


우리는 꿈의 디테일을 나누지 않았다. 대신 차로 갔다. 트렁크를 열어 커피를 꺼내려다, 뒤타이어가 완전히 주저앉은 걸 봤다. 펑크. 바닥에는 짧은 머리카락 몇 가닥이 젖은 채 붙어 있었다. 바람은 쉭, 쉭—어젯밤 라면 소리와 같은 박자로 빠졌다.


“스페어 있지?” 상훈이 물었다.


있었다. 그런데 스페어의 밸브캡이 사라져 있었다. 보험사에 전화를 거니 통화음이 반 박자씩 밀렸다. 둑 위, 밤새 보던 보안등이 낮에도 깜빡이고 있었다. 그 깜빡임과 휴대폰 진동이 같은 박자였다. 그때 뒷유리 성에 위로 글자 하나가 떠올랐다. 우리가 한숨 내쉬자 글자는 더 또렷해졌다.


같이 가

같이 가


어린아이 필체. 나는 손등으로 지우려다, 피부에 물 냄새가 배는 느낌에 멈췄다.


보험사 직원이 와서 타이어를 갈았다. 그는 코를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희한하네, 고무 타는 냄새가 계속 나요.” 우리는 장비를 급히 걷었다. 둑길을 빠져나오는 내내, 사이드미러 한쪽에 젖은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잔상이 매달린 듯 따라왔다. 뒤로 걸어오는 사람처럼.


그날 이후, 여자는 자주 꿈에 왔다. 첫날은 창문을 열어 달라 했고, 둘째 날은 물컵으로 길을 내 달라했다. 셋째 날은 말이 없었다. 대신 숨만 내쉬었다. 내 숨과 같은 박자였다. 라면 끓던 소리와 같은 속도였다. 넷째 날은 달랐다.


여자는 무릎으로 내 갈비를 짚고 천천히 올라탔다. 무게가 늑골 사이에 박혔다. 움직이려 해도 팔과 다리가 이불 아래서 젖은 끈으로 묶인 것처럼 붙잡혔다. 욕망의 느낌은 조금도 없었다. 체온과 호흡을 빌려 가는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저수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입술이 닿지 않았는데 입안이 물맛으로 가득 찼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고무 냄새가 깊게 들어왔다. 그녀의 머리칼이 목덜미를 스치며 박자를 탔다. 보안등이 깜빡일 때와 같은 박자, 라면 물이 끓을 때와 같은 속도. 그녀가 귓불에 대고 속삭였다.


“같이 가.”


나는 내 숨이 내 것이 아닌 순간을 분명히 알았다. 내 가슴이 오르내리는 동안, 그녀의 것이 먼저 오르내렸다. 그녀는 잠깐 흥분에 들뜬 아이처럼 박자를 재촉했고, 곧 아무 말 없이 무게를 내렸다. 차가움이 등뼈를 통해 빠져나가며 끝났다.


깨고 보니 이불 끝이 젖어 있었고, 쇄골 위에 길게 긁힌 물자국이 남아 있었다. 목 뒤, 오른쪽에 물방울 모양 세 점이 아주 얕게 부풀어 있었다. 그날 아침, 상훈은 목 뒤를 만지며 말했다.


“나, 목 뒤에 물방울 세 개가 매일 같은 자리에 맺혀.” 상훈이 말했다.


그때부터 나는 이유를 알았다. 그녀가 따라온 이유를. 숨과 체온, 그리고 자리 한 칸. 밤의 물이 사람 쪽으로 건너오려면 필요한 것들. 우리는 무당을 찾아갔다. 시장 끝, 천막집. 여자는 우리를 보자마자 향을 눌러 껐다.


“물에 오래 있던 것들은, 건너오려면 사람의 ‘숨’하고 ‘열’을 잠깐이라도 빌려. 그래서 올라타. 그날 네가 자리를 내준 거야”


상훈이 어깨를 움찔했다. 무당이 내 손목을 오래 눌렀다.


“여기는 살이 얇아. 물살 붙기 좋아. 너희 밤에 웃었지? 그 아저씨도 신났지? ‘거봐’ 했다지? 그건 사람 말투가 아니야. 물이 자기편 생길 때 쓰는 말이지. 자리를 한 칸 빼앗아 두고 또 오라는 소리다.”


“떼려면요?”


“밥 세 공기, 거울 하나, 동전 일곱. 물길 없는 곳에서 해. 끝나도 뒤돌아보지 말고. 고무 냄새나면 뛰고.”


우리는 그대로 했다. 말라붙은 근교 계곡길에 밥그릇 세 개를 두고, 손거울을 엎어 두고, 그 사이에 동전 일곱을 놓았다. 내려올 때 주머니가 무겁다 싶어 손을 넣자, 젖은 동전 하나가 더 잡혔다. 여덟. 누가 보탰는지, 언제 들어왔는지 몰랐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뛰었다.


집 앞에서 숨을 고를 때, 휴대폰 화면이 셀피 모드로 켜졌다. 내 어깨 위로 젖은 머리카락 그림자가 0.5초 늦게 고개를 들었다. 화면을 꺼도 그 늦음이 귀에 남았다.


그날 밤, 여자는 오지 않았다. 대신 복도에서 장화 소리가 한 번 났다.

철썩—철썩.

그리고 조용해졌다.

새벽, 상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그 여자 꿈에 안 나온다. 물방울도 사라짐. 휴… 살았다.”


그 문장을 읽는 동안, 내 주머니 안쪽에서 딱딱한 것이 만져졌다. 꺼내 보니 스페어 밸브캡이었다. 젖어 있었다. 나는 넣은 적이 없었다.

잠시 후, 메시지가 하나 더 왔다.


“다음 주말, 바다 갈래?”


상훈은 평소 맞춤법에 예민했고 말줄임표를 싫어했다. 그런데 그 메시지는 띄어쓰기가 비어 있었다. 그의 상태메시지는 어느새 ‘같이 가’로 바뀌어 있었다. 전화를 걸자 연결음 박자가 낮에도 깜빡이던 보안등과 같았다. 세 번, 두 번, 세 번.


전화를 끊고 현관창 성에를 닦았다. 닦으려 창문을 한 뼘 내렸다가, 귓불을 스치는 차가움에 멈췄다. 바로 닫았다. 그 순간 도어록이 한 박자 빠르게 “삑” 하고 울렸다. 비밀번호를 누르지 않았는데 앞질러 울린 소리였다. 문 아래 틈으로 고무 냄새가 스며들어왔다.


부엌으로 가 가스를 켰다가, 라면 물 끓는 소리와 같은 호흡이 들리는 느낌에 곧 껐다. 소리가 멎었다. 대신 메시지 한 줄이 도착했다. 발신: 상훈.


“거봐. 내가 있댔지. 뭐랬어.”


나는 답장을 짧게 보냈다.

“그래. 바다는… 갯고랑 없는 곳.”

보내는 순간, 화면 위 자동완성이 문장을 바꿔 올렸다.


같이 가. 사람 하나 더 데리고 가자.

같이 가. 사람 하나 더 데리고 가자.


두 번째 줄은 띄어쓰기가 무너졌다.


같이 가. 사람 하나 더 데리고 가자


나는 그 문장을 길게 눌러 지웠다.


휴대폰이 반 박자 늦게 떨렸다. 멀어졌다가, 가까워지면서.

현관 도어록이 앞질러 “삑” 하고 울렸다.

문틈에서 고무 냄새가 스며들었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무당한테 배운 걸 떠올렸다. 살아 있는 사람 규칙.


밤에는, 신난 목소리를 믿지 말 것.

고무 냄새가 나면, 뒤돌아보지 말 것.

보안등이 낮에도 깜빡이면, 즉시 자리를 옮길 것.

그곳에서는 창문을 열지 말 것.

거실은 조용했다. 다만 라면 물 끓는 소리와 같은 호흡이 벽지 뒤에서 반 박자 늦게 따라왔다.


보안등이 한 번, 두 번, 세 번—깜빡였다.

살목지의 물결이 집 안까지 들어온 듯했다.



제보 : tellmeyoursecret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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