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사무실 형광등이 먼저 출근했다. 백색광이 모니터의 푸른빛과 섞여 책상마다 얇은 껍질처럼 내려앉았다.
복사기 드럼이 데워지며 ‘웅—’ 하고 길게 숨을 내쉬었고, 에어컨은 구석 자리만 정교하게 찾아갔다. 자리 배치표 맨 위에는 디자인1팀 팀장 / 미라, 그 아래 셋째 줄 구석에 사원 / 은하. 에어컨 바람이 직격하는 자리였다.
점심 전, 탕비실. 커피 머신이 두 잔째 물을 내리다 말고 멈췄다. 그 멈춤 사이로, 웃음이 먼저 들어왔다.
“메일 좀 똑바로 쓰자, 은하 씨. 고객 앞에서 ‘~요’가 너무 많아. 애처럼 굴지 말고. 언제까지 하나하나 다 알려줘야 해?”미라가 컵 뚜껑을 닫으며 말했다.
“맞아요. 말투가 좀… 가볍게 들려요. 고객이 남편이야? ‘해주세요~’ 아잉—”
민정이 킥킥 웃음을 덧칠했다.
“죄송합니다. 고치겠습니다.”
은하의 손이 종이컵을 쥔 채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복도 끝 프린터가 토해낸 출력물을 집어 들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누군가 낮게 흘렸다. 농담처럼, 그러나 곧장 심장에 박히는 톤으로.
“얼마나 밝히면 벌써 임신이야, 체력도 좋아. 남자 밝히게 생겨가지고.”
“저번에 봤는데 남편 잘생겼더라. 왜 쟤랑 사는 거야?”
“몰라~ 밝혀서 그런가 봐. 아, 부럽다. 부러워.”
킥, 하고 둘이 웃었다. 나머지는 소리 없이 입꼬리만 올렸다. 입모양은 오래 남는다. 그날도 은하가 초대되지 않은 단체 메신저에는 은하의 이야기가 떠돌았다.
회의 자리 배치처럼 미라는 은하를 조금씩 팀 밖으로 밀어냈다. “누가 좀 가져다줘요”라는 말 뒤에는 은하가 자연스레 일어섰다.
목요일 정오, 점심 전에 회의를 준비하던 은하가 허리를 움켜쥐었다. 표정이 한 박자 늦게 부서졌다. 탕비실로 휘청이며 사라졌고, 작게 "악—" 하는 소리 뒤로, 칸막이 너머에서 플라스틱이 눌리는 쿵— 소리가 세 번.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뭐야, 얘 어디갔어? 이젠 시간도 몰라?"
메신저에 알림 하나—회의 10분 지연.
그날 저녁, 은하는 조퇴했다. 금요일 오전, 회색 얼굴로 돌아왔다. 그다음 주 내내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했다. 의사의 진단은 스트레스성 유산. 키보드를 치다 소리 없이 웃고, 다음 칸에서 조용히 울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은하의 자리를 통과하기 시작했다. 말 걸지 않았고, 부르지 않았고, 시선을 피했다. 직접 괴롭히지는 않았다. 그냥, 투명한 사람처럼 지나갔다.
다음 주 월요일 9시 1분 전, 사내 메일이 울렸다. 부고.
제목 줄에 故 이은하 님이 박혔다. 사유는 적히지 않았다. 탕비실 유리 성에에 오전 내내 떠다니던 문장—“점심 전에 회의 준비”—가 메일 제목과 겹쳐 보였다.
은하가 쓰러지던 날, 미라가 “점심 전까지” 하라고 닦달하던 말도 따라 떠올랐다. 미라는 스크롤을 내리던 손을 멈췄다. 형광등이 한 번 깜빡였다. 장례식장은 아무도 가지 않았다.
“아, 몰라. 내 잘못 아니야. 아프면 말을 해야지.”
미라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모니터를 다시 켰다.
이틀 뒤, 인사팀 진상 조사가 시작됐다. B-3 유리 회의실. 둥근 모서리 테이블, 녹음기, 빨간 LED. 미라가 맞은편에 앉았다.
“팀장님, 팀 내 은하 씨 지내는데 불편함은 없었다, 그 말씀이죠?” 인사팀 주현이 물었다.
“네. 업무상 피드백만 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잘해줬는데요, 은하 씨를.”
“탕비실에서 있었던 발언 관련 진술이 있어요. ‘얼마나…’로 시작하는.”
“기억나지 않아요. 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
“그렇죠. 팀장님 사내 평판도 좋으신데… 그냥 절차상 묻는 거예요.”
녹음기의 붉은 점이 미세하게 튀었다. 형광등이 길게 떨렸다. 주현이 “간섭이 있네요” 하고 장비를 끄자, 회의는 끝났다.
문을 나선 미라는 여자 화장실 안쪽 칸으로 갔다. 거울은 지나치게 깨끗해 얼굴을 반사하지 않고 빛만 통과시켰다. 귀 가장자리에서 얇은 ‘지—’가 올라왔다. 형광등이 깜빡, 깜빡. 배 밑이 갑자기 무너졌다. 세면대 모서리를 붙잡은 손이 미끄러졌다. 타일의 냉기와 세제 냄새가 한꺼번에 코로 밀려들었다. 구역질.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팀장님?”
대답하려 입을 여는 순간, 가슴 안쪽에서 전화벨 소리가 한 번이 울렸다. 짧고 정확한, 내선음 같은. 미라는 옆으로 쓰러졌다.
초음파실은 유난히 밝았다. 형광등은 낮처럼 고르고, 기계들은 숨을 쉬지 않는 금속처럼 조용했다. 의사가 말없이 젤 뚜껑을 ‘찍’ 열고, 배에 차가운 것을 펼쳤다. 소독약 냄새가 입천장에 붙었다.
“숨 들이마시고요… 배 힘 빼세요.”
프로브가 슥— 움직일 때마다 화면에 검은 타원이 떴다 사라졌다. 심박선은 없었다. 옆 프린터가 짧게 ‘끽—’ 하고 돌다 멈췄다. 사진은 나오지 않았다.
“임신 사실, 알고 오셨어요?”
“아뇨… 오늘 처음…”
미라의 목소리가 화면 속 어둠에 스며들었다. 의사가 프로브를 잠깐 떼었다. 장갑 낀 손끝에서 젤이 한 방울 또르르 흘렀다. 그는 화면을 본 채로, 아주 조용히 물었다.
“너도…”
다음 음절이 금속성으로 갈렸다.
“…밝히니?”
“네…?” 미라는 순간,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의사가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입꼬리가 실밥 터지듯 양옆으로 늘어났다. 웃음 소리는 없었고, 웃음의 모양만 얼굴에 길게 그어졌다. 형광등은 깜빡이지 않았다. 방은 끝까지 밝았다.
젤이 배에서 식어 내렸다. 기계가 마지막으로 ‘딱’ 하고 눌린 듯한 소리를 냈다. 프로브가 복부를 짓눌렀다. 거기서 한 뼘 더 내려앉자, 속에서 질긴 끈을 당기는 통증이 척추뼈로 번졌다.
프린터가 사진 한 장을 뱉었다. 아무것도 없는 초음파 사진 귀퉁이에 흐릿한 빨간 글씨와 시간이 인쇄되어 있었다. 박미라 11:59
미라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의사의 웃음은 더 이상 표정이 아니었다. 조롱이었다. 그 무음의 웃음이 방 안을 가득 채우자, 화면 속 타원은 아주 천천히, 완전히 꺼졌다.
소리를 지르며 미라는 기절했다.
정신을 차리자 링거 줄이 팔을 잡고 있었다. 간호사는 말했다.
“유산의 충격으로 기절하시는 분이 있어요. 보호자분께 연락을—”
“괜찮아요. 회사 일이 바빠서요.”
병원 복도를 걸어 나오며, 미라는 휴대폰 화면을 켰다. 잠깐 남자친구에게 전화할까 생각했다가 이내 전화 아이콘 위에 손가락이 멈췄다. 미리 알았다면 뭐가 달라졌을까?
휴대폰에 설치된 사내 메신저 상단에 은하의 부고가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했던 말이 같이 떠올랐다. 얼마나 밝히면 벌써 임신이야, 체력도 좋아. 미라는 휴대폰을 껐다. 천장을 한 번 올려다봤다. 형광등은 끄지 않은 낮처럼 고르게 켜져 있었다.
정오 직전, 빛은 가장 안정적이어야 했다. 그러나 그때만큼은, 빛이 서늘하게 피부를 벗기는 느낌이었다.
퇴원 수속서를 가방에 쑤셔 넣고 회사로 돌아왔다. 정오 전 사무실은 낮처럼 밝았다.
"얘들아. 나왔어. 별일 없었지?"
인사했지만 아무도 미라를 보지 않았다.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미라는 갑자기 살갑게 대하지 않는 팀원들이 이상했지만, 화면 속 커서를 바라봤다.
11:58:47.
메일함 상단에서 알림창 하나가 늘었다가 사라졌다. 다시 하나 늘었다. 일정창이 자동으로 열렸다 닫혔다. 에어컨 바람이 손등의 체온을 균일하게 식혔다.
11:59.
알림음이 났다. 단 한 번. 메일 목록 맨 위에 제목이 박혔다.
[부고] 박미라 님
발신자: 이은하
수신자: 디자인1팀 전체
미라는 클릭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미리보기 창이 자동으로 펼쳐졌다. 빈 본문, 빈 첨부. 하단에는 예약 발송 시간이 떠 있었다. 예약 발송 11:59 / 수신 확인 요청.
팀 채팅창에서 초록 점들이 하나둘 회색으로 바뀌었다. 메일이 읽음 처리가 되는데, 아무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모니터마다 같은 제목이 떠 있었다.
화면 오른쪽 하단에 자동응답 배너가 솟았다.
부재중 자동 회신: 부고 메일 수신 확인했습니다.
누른 적 없는 문장들이 나 대신 나갔다. 또 한 줄.
“박미라 팀장님께서, 9월 19일 12:00시 운명 하셨기에 삼가 알려드립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등 뒤에서 누군가 의자를 아주 조용히 밀어 넣는 소리가 났다. 미라는 돌아보지 않았다. 12:00. 제목 옆의 점이 사라졌다. “읽음”으로 바뀌었다. 미라는 여전히 클릭하지 않았는데도.
미라는 화면을 껐다. 검은 모니터 표면에 형광등이 정직하게 박혔다. 빛은 깜빡이지 않았다. 정오의 빛은 이상하리만치 오래 남았다.
사무실 여기저기에서 미라를 쳐다보는 느낌이 들었다. 팀원들의 입꼬리가 실밥 터지듯 양옆으로 늘어났다. 웃음 소리는 없었고, 웃음의 모양만 얼굴에 길게 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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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04 [조문 여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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