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수술비가 급했다. 병원비 견적서를 접었다 펼 때마다 숫자가 바뀌는 것 같았다. 밤이 되면 계산기를 두드리다 멈췄고, 멈추면 천장에서 물방울 소리가 똑같은 간격으로 떨어졌다. 그 소리가 자꾸 가난의 무게처럼 들렸다. 전봇대에 붙은 쪽지는 겹겹이 테이프를 갈아 입은 듯 낡았다.
돼지꿈 삽니다/팝니다
꿈방 초대: 연락처 남겨주세요.
장난이라고 생각했지만, 장난으로라도 뭔가를 해야 했다. 펜으로 번호를 남겼다. 곧 초대가 왔다. 방 이름은 복 夢(몽). 관리자는 꿀복.
꿀복: 규칙 필독. 돼지 ‘관련’ 꿈만.
꿀복: 묘사는 구체적으로—냄새, 소리, 무게감.
꿀복: 등급 높을수록 단가↑
꿀복: 주의 – 꿈의 주인은 첫 판매 시점으로 고정.
돼지코 필터가 씌워진 프로필들이 후기를 뿌렸다.
“꿈 사고 바로 당첨됨 ㅋㅋ”
“계약 땄어요. 사장님 ㄳ”
“집에 저울 옴; 정육점인가 ㅋㅋ”
나는 웃음 이모티콘을 누르지 않았다. 규칙을 세 번 읽었다.
그날 밤, 꿈을 꿨다.
주방 싱크대에 돼지가 머리를 들이밀고 그릇을 핥았다. 물이 아니라 동전이 흘렀다. 동전끼리 맞부딪히는 소리가 유리잔 밑에서 울리듯 맑았다. 돼지는 내 쪽을 보며 코를 킁킁거렸고, 김밥 말듯 혀로 영수증을 말아 삼켰다. 영수증 끝에 병원 로고가 잠깐 보였다.
아침에 일어나자 입안이 짰다. 단톡방에 꿈을 올렸다. 냄새, 소리, 무게까지 가능한 한 자세히 적었다. 곧 답이 왔다.
꿀복: A-등급. 첫 거래 축하. 계좌 주세요.
사기일 수 있었다. 그래도 계좌 번호를 보냈다. 알림음이 울렸다. 150만 원이 들어왔다. 같은 시간, 분리수거함 위에 박스가 하나 놓여 있었다. 발신인 없음. 열자 벽걸이 저울이 나왔다. 정육점에서 본 것과 비슷하지만 더 날씬했고, 화면이 휴대폰처럼 밝았다.
꿀복: 저울 설치하세요.
주방 벽에 못을 박아 걸었다. 전선이 짧아 콘센트에 억지로 연결되었다. 화면이 깜빡였다.
+0.37 kg
그 아래 작게: 적립중
못머리를 손톱으로 눌러보는 순간, 쇠 대신 살을 떼어내는 듯한 느낌이 손끝에 스쳤다. 나는 손을 뗐다. 벽은 멀쩡한데, 손끝에 따뜻함이 남았다.
그날 오후, 엄마 병실에서 문고리를 잡았다 놓는 사이 간호사가 말했다. “보증금 일부 입금된 것 같아요.” 저녁엔 병원 앞에서 잃어버린 지갑을 누가 문에 걸어 놓고 갔다. 현금은 그대로였고, 영수증만 없었다.
이틀 뒤, 또 꿈을 꿨다. 학교 복도 끝에서 돼지 한 마리가 저금통을 머리로 들이받았다. 통은 생각보다 무겁게 “퍽” 하고 울렸다. 돼지는 통 위에 올라앉아 저울처럼 가만히 있었다. 뒤에서 누가 말했다. “등심은 가격표가 예쁘지.”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A보다 높은 특등이 붙었다. 송금액은 더 컸다. 저울 아래 줄이 바뀌었다.
적립중 5.1 kg
내 손바닥에 얇은 선이 하나 생겼다. 손금이 늘어난 줄 알았다. 선은 손목 쪽으로 반달처럼 굽었다. 검색해 보니 돼지고기 부위별 도표의 절개 방향과 비슷했다. 다음 밤엔 선이 엄지 밑 살패드를 훑고 지나갔다. 피곤해서 겹쳐 보이는 거겠지, 하고 향초를 켰다.
꿈은 잦아졌다. 돼지가 영수증 더미 위에 누워 체온으로 잉크를 번지게 했다. 돼지가 물고기를 씹자 비닐봉지 소리가 났다. 돼지가 전기저울 위에 한쪽 발만 올리고 숫자를 살짝 건드렸다. 나는 매번 냄새와 소리와 손끝으로 느낀 무게까지 적어 보냈다. 송금은 빨랐고, 저울 숫자는 잔잔하게 올랐다.
적립중 19.8 kg
적립중 27.3 kg
적립중 31.4 kg
방 안에 비계 냄새가 얇게 깔렸다. 창문을 열면 들어온 공기가 오히려 더 따뜻해졌다. 코끝에 닿는 공기가 무게를 가진 것처럼.
엄마 수술은 예정보다 빨리 잡혔다. 담당의가 말했다. “타이밍 아주 좋았습니다.” 나는 두 손을 모았다 펼쳤다. 손바닥 안쪽에 선이 두 개 더 늘어 있었다. 이번엔 팔목을 넘어 팔꿈치 안쪽까지 올라 있었다. 화면을 끄고 도표를 지워도, 선은 남았다.
복 夢(몽)의 후기는 더 들떴다.
“돼지꿈 샀다가 코인 떡상 ㄹㅇ”
“출하일엔 잠수 ㅋㅋ 행운 기원”
“냄새; 저울.. 집주인에게 들킴;;”
몇몇 아이디가 회색으로 바뀌었다. 프로필은 남고, 마지막 한 줄만 남았다.
“다음엔 더 자세히 적을게요. 냄새까지.”
꿀복이 공지를 올렸다.
꿀복: 정산일 전후 이틀은 연락 지연 있을 수 있어요. 축복받는 시기라…
나는 꿀복에게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 저울은 왜 오는 거예요?
— 숫자는 뭘 뜻하죠?
꿀복: 꿈은 돼지에게서 복을 빌려오는 과정.
꿀복: 빌린 건 무게로 갚아야 해요.
꿀복: 갚는 사람=첫 판매자. 고정.
꿀복: 걱정 마세요. 다들 잘 지냄. 요령만 지키면.
폰을 내려놓았다. 벽 저울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흔들릴 때마다 소수점 둘째 자리 숫자가 올랐다 내렸다. 호흡 같았다. 손바닥의 선은 팔뚝 안쪽으로, 거기서 겨드랑이 라인까지 아주 얇게 번졌다. 움직일 때마다 선 끝이 수치처럼 당겼다.
그날 밤, 나는 꿈을 팔지 않기로 했다. 방에서 퇴장 버튼을 눌렀다. 꿀복이 바로 다시 초대했다.
꿀복: 아직 정산 전. 나가면 정산이 실패로 잡혀요.
꿀복: 실패분은 추가 적립으로 넘어갑니다 : )
몇 명이 웃음 이모티콘을 붙였다. 폰을 뒤집었다.
다음날 아침, 저울 화면이 바뀌어 있었다.
[정산] 수취 12 / 총 적립 121.0 kg / 출하 예정 D-1
— 무게를 줄이려면 돈을 상환하거나 ‘도축’을 누르세요.
— 무게를 줄이려면 돈을 상환하거나 ‘도축’을 누르세요.
도축 장소: 수취인의 집
나사를 풀었다. 나사는 빠졌지만 저울은 떨어지지 않았다. 코드를 뽑아도 화면은 켜져 있었다. 벽과 저울 사이에 얇은 막 같은 게 늘어났다가, 내가 잡아당기면 손톱 밑으로 살이 드는 감각이 번쩍했다. 손을 뗐다. 손바닥의 선들이 더 진해졌다.
돈을 빌릴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모두 “괜찮아?” 하고 묻고, 곧 “돈은 어렵다”로 돌아왔다. 설명을 얹으면, 조용해졌다. 밉지 않은 사람도 조용해졌다. 엄마에게는 전화하지 않았다.
그래, 꿈은 팔 수 있지. 나는 꿈을 대리로 팔아보려 했다. 동기에게 돼지 사진과 영상을 잔뜩 보내고 돼지 인형을 안고 자 보라 했다. 다음날 동기가 말했다. “꿈 꾸긴 했는데 별건 아님 ㅋㅋ 근데 난 방 초대가 안 되네?” 그 꿈을 대신 팔겠다고 올렸다. 꿀복이 답했다.
꿀복: 정산 전에는 판매 불가. 정산 진행?
벽 저울 숫자가 +0.4 kg 늘었다.
밤이 되었다. 요철 리어카 끄는 소리가 골목 끝에서 스르릉- 스르릉- 지나갔다. 평소보다 늦은 시각, 바닥이 쿵 하고 울렸다. 문고리에 귀를 댔다. 아무 소리도 없었다. 대신 따뜻한 금속 냄새가 코에 들었다. 피라기보다 동전 냄새였다. 웃음이 나왔다가, 입안에서 금속 맛으로 굳었다.
출하 예정일 새벽, 알람 직전 눈이 떠졌다. 바닥이 타일 같았다. 내 눈엔 장판인데, 발바닥엔 타일의 물기가 눌렸다 돌아왔다. 싱크대에서 물 내리는 소리가 세 번 났다. 저울이 문틀만큼 커져 있었고, 화면이 새빨갰다.
[출하] 도축 대기중
꿀복에게 메시지가 왔다.
꿀복: 1차 등급판정 도체중 93kg, 등지방두께 14mm, 수율 56%.
꿀복: 등지방 양호, 복부 지방 부착 매우 좋음.
폰을 내려놓았다. 벽에서 웃는 소리 같은 떨림이 새어 나왔다. 저울과 휴대폰이 같은 박자로 숨을 쉬었다. 복도에서 리어카가 멈추는 소리, 고무장갑이 늘어나는 무음의 끼익, 스테인리스 위에 무언가 내려앉는 무게만 있었다. 돼지 우는 소리는 끝내 없었다.
저울이 울렸다. 알람처럼 다정했고, 숫자는 무정했다.
[정산] 지불 수단: 체중 / 잔여: 28.0 kg
도망치면 가벼워질까. 한 발 떼자, 머리 안쪽 숫자가 슬쩍 늘었다. 나는 멈췄다. 숫자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처음부터 여기서 이루어지도록 계산된 것. 문이 열린 적이 없는데 열린 상태가 되었다. 바깥 복도에 흰 김이 쌓였다. 김이 발목을 감쌌다.
나는 작업대 앞 사람처럼 팔을 들었다. 손바닥의 선들이 서로 정확히 분할하며 마주 보였다. 선은 팔꿈치, 겨드랑이 라인, 갈빗대 사이로 조용히 넘어갔다. 갑자기 손목이 가벼워지고, 이어 어깨, 목, 복부가 가벼워졌다. 공기가 안쪽을 지나가며 분류하는 느낌. 내가 선반 위에서 구획되는 느낌.
저울이 마지막으로 숫자를 바꾸었다.
0.0 kg
그다음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빠르게 비워지는 쪽의 감각은 기록하기 어렵다. 다만 아주 선명한 한 순간이 있었다. 영수증 한 장이 내 입에서 나갔다. 잔물결처럼 흔들리다가 사라졌다. 영수증 끝에 병원 로고가, 아주 잠깐.
…
뉴스 속보에 ‘도축장’이라는 단어가 반복됐다. “○○동 주택서 불법 도축 정황…비계 처리 냄새 민원 다수.” 자막이 바뀌었다. “주민 A씨 ‘새벽마다 저울 울리는 소리’.” 나는 그 뉴스를 보지 못했다. 대신 그날 오후, 엄마에게 문자 하나가 갔다.
— 병원비 명세서가 정정되었습니다. 자체 할인 적용.
수정 이력은 없었다.
복 夢(몽) 에는 새 공지가 올라왔다.
꿀복: 신입 환영. 규칙 필독.
꿀복: 돼지꿈은 복이 아니라 ‘꿈삯’입니다.
꿀복: 받은 만큼, 몸으로 내놓으세요.
꿀복: 요령만 지키면 안전해요 :)
이모티콘들이 다시 반짝였다. 누가 물었다. “저울 어디서 사요 ㅋㅋ” 꿀복이 답했다. “배송 예정”. 회색으로 굳어 있던 몇몇 프로필은 완전히 사라졌다. 방 인원 수는 잠깐 줄었다가 금세 채워졌다.
다른 골목 전봇대에 새 쪽지가 붙었다. “돼지꿈 삽니다/팝니다 — 꿈방 초대.” 학생 하나가 쪽지를 조심스럽게 떼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 손바닥에 아주 옅은 곡선이 막 생겨나는 중이었다. 그 선은 시간이 지나면 안심일 수도, 갈빗살일 수도 있었다. 손이 폰 화면을 터치했다.
새벽 공기엔 젖은 금속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다. 꿈을 꾼 적 없는 사람에게는 전혀 나지 않았다. 꾼 적 있는 사람에게는 소수점 둘째 자리 정도로 났다. 밤이 되면 저울은 각자의 벽에서 천천히, 당연하게 숨을 쉬었다. 숫자가 생겼다가 지워지고, 다시 생겼다. 현관문 틈으로 공기가 들고 나가고, 부엌 타일 아래 얕은 물길이 생겼다가 마르고, 방 안의 공기가 살짝 무거워졌다가 가벼워졌다.
받은 만큼. 내놔라.
저울은 늘 정확했고, 꿈은 늘 구체적이었다. 누군가는 그걸 복이라 불렀고, 누군가는 삯이라 불렀다. 둘은 다른 말이 아니었다. 한 글자 차이로, 몸의 위치만 바뀌었다.
제보 : tellmeyoursecret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