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에는 4층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없어진 척한다. 몇 해 전 사고가 난 뒤 학교는 층 안내판에서 ‘4’를 지웠고, 4층에 있던 교무실을 다른 층으로 옮겼다. 안내판에 딱 이렇게만 적혀 있다.
3F →
5F ↑
그런데 계단을 한 칸만 더 올라가 보면 안다. 3층 위엔 분명 한 층이 더 있다. 교실이었던 그곳은 책상과 의자가 가득 차 있고, 두꺼운 철문이 막고 있다. 페인트가 벗겨진 문 위에는 노랗게 바랜 종이 한 장.
출입 금지
딱 그 말뿐이었다.
졸업식이 끝난 저녁, 한 아이가 참고서를 사물함에 놓고 온 걸 떠올렸다. 학교는 텅 비어 있었고, 복도 형광등은 모두 꺼져 있었다. 계단을 올라 철문 옆 비상문을 밀고 교실 줄로 들어갔다. 자기 반 앞에 서서 문 손잡이를 돌렸다.
철컥.
문은 쉽게 열렸다. 사물함 문을 열고 참고서를 꺼내 꽉 끌어안았다.
그때였다. 멀리 복도 끝에서 짤랑—짤랑 열쇠가 부딪히는 소리, 이어서 쿵—쿵— 규칙적인 발소리. 수위 아저씨였다. 마지막 순찰을 돌며 모든 문을 잠그고, 복도 조명을 끄는 중이었다.
불빛이 한 줄, 한 줄 꺼지더니 교실 앞도 캄캄해졌다. 곧바로 철컥. 교실 문이 밖에서 잠겼다.
놀라서 문으로 달려갔다. 손잡이를 돌렸다.
덜컥—덜컥. 돌아가지 않았다.
“저기요! 저 여기 있어요!”
문을 쾅쾅! 두드렸다. 소리는 텅 빈 복도를 한 번 두르고 사라졌다.
창문? 밖에는 굵은 방범창이 붙어 있었다. 의자를 들어 꽝 하고 쳐 봤지만, 철은 꿈쩍도 안 했다.
유리만 끼리—끼릭— 울었다.
난방은 이미 꺼져 있었다. 교실 공기는 빠르게 식었고, 입김이 하얗게 푸— 하고 퍼졌다. 칠판 분필 가루 냄새와 걸레 짠 물 냄새가 더 짙게 올라왔다. 춥고 무서웠다.
교탁 옆에 앉아 공책을 펴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엔 글씨가 반듯했다. 뒤로 갈수록 획이 흔들렸다.
저녁 7:10 — 문이 잠김. 불도 꺼짐. 손이 얼얼함.
밤 9:30 — 문 손잡이 만지면 얼음 같음. 창틀 사이 휘— 파람.
밤 11:58 — 복도에서 짤랑. 쿵—쿵— 온다. 살았다.
밤 12:00 — 문 앞에서 찰칵. 열쇠 넣는 소리…
밤 12:02 — 손잡이가 아주 천천히 돌아왔다가… 멈춤. 왜?
새벽 2:07 — 배고픔. 수도꼭지 살짝 틀어 틱—틱— 물. 쇠맛.
새벽 2:40 — 어둠에 눈이 적응. 뒤 커튼 스르륵? 바람?
새벽 3:30 — 시계 딱—딱—딱 더 크게 들림.
새벽 4:04 — 열쇠구멍에서 후— 길고 가까운 숨.
손끝은 얼었다. 손바닥을 숨으로 데우면 축축하고 따뜻한 냄새가 났다. 의자 다리가 바닥을 긁을 때 끼이—익 소리가 커서, 스스로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잠깐 눈을 붙이면, 교문 깃발줄이 밤바람에 부딪히는 챙—챙— 소리가 교실까지 스며들었다.
그리고 일기의 마지막 장. 글씨가 더 커지고 눌렸다.
혼자인 게 제일 무서운 줄 알았다.
하지만 더 무서운 건 열쇠구멍을 들여다보는 눈이다.
빨갛게 충혈된 눈. 숨을 참고 오래 보는 그 눈.
며칠 뒤, 아이는 싸늘하게 식은 채 수위에게 발견됐다고 한다. 공책은 교실을 창고로 바꾸는 날 교탁 밑에서 발견됐고, 안내판에서도 ‘4’는 완전히 지워졌다.
겨울 방학이 끝나고 개학 후 교장 선생님은 4층 교실이었던 곳은 동파와 전기 시설 고장으로 창고로 쓴다고 말했다. 4층 교실이었던 그곳에서의 사건은 소문으로 돌았다.
어떤 애는 밤마다 4층에서 복도 왁스 바르는 소리(슥—슥—)가 난다 했고, 어떤 애는 계단참에서 열쇠 묶음 달그락 소리를 들었다 했다.
개학 후 우리 반 몇 명이 몰래 올라갔다. 3층에서 한 층 더. 이미 창고로 변한 그곳의 문이 굳게 잠겨있어야 했는데 문이 열려있었다.
출입금지 철문 옆 비상문 틈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갔다. 복도는 싸늘한 분필 냄새와 오래된 걸레 냄새가 섞여 있었다. 형광등은 반만 켜져 지직— 하며 깜박였다.
우리는 오래전 그 아이가 쓰던 교실에 모여 일기를 돌려 읽었다. 종이는 축축하고 차가웠다. 마지막 장을 읽는 순간, 복도 끝 스피커에서 윙— 하는 미세한 전기 소리.
곧, 교실 문이 철—컥. 아무도 안 만졌는데, 스스로 잠겼다.
손전등을 켰다. 먼지가 하얗게 떠올라 반짝반짝 빛났다. 누군가 문 손잡이를 돌렸다. 안에서 힘을 주자, 밖에서도 똑같은 힘이 천천히 눌러왔다. 마치 누군가 손잡이를 꽉 쥐고 버티는 것처럼.
“문… 열어주세요…”
대답은 없었다. 대신 문틈 아래로 아주 얇은 바람이 들어왔다. 바람은 따뜻했고, 동전 냄새가 났다.
우리는 동시에 숨을 참았다. 그때 열쇠구멍에서 후— 길고 느린 숨소리. 이어서 짤랑 열쇠 소리.
나는 말렸지만, 옆 친구가 끝내 열쇠구멍에 눈을 댔다.
구멍 너머는 둥근 화면 같았다. 그 안을 붉은 눈 하나가 가득 채웠다. 눈동자는 점처럼 작았고, 주변 핏줄이 빽빽해 전체가 벌겋게 빛났다.
눈꺼풀은 한 번도 깜박이지 않았다. 대신 고개가 아주 조금, 숨 쉬는 속도에 맞춰 앞뒤로 움직였다.
후— 가까워졌다.
후— 멀어졌다.
초침 소리가 딱—딱—딱 더 커졌다.
쿵—쿵—쿵—쿵—
문이 딱 하고 풀리더니, 복도 불이 탕— 하고 완전히 켜졌다.
그 친구는 그날 밤, 귀 안에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후우—)를 들었다고 했다.
다시 한번 문을 밀었다. 문은 잠겨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도망치듯 집으로 달렸다.
다음날 교실이었던 그곳을 방문했을 때 그곳엔 열쇠구멍이 아예 없었다.
손잡이와 카드리더뿐, 눈을 댈 구멍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다.
빨갛게 충혈된 눈 그건 과연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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