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XX 년 8월 26일(월) 04:20–22:10
장소: ○○구 ○○아파트 신축현장
근무조: 야간 B조 / 2인 1조(사수=‘하나’, 제보자=‘둘’)
작업: 철근 번들 정리, 안전그물 점검, 가설계단 청소
기타: 무전기 공동채널 3번 / 전광판 ‘무재해 0128일’ 표시
나는 전역한 지 석 달 됐다. 전역금은 벌써 다 썼다. 등록금 마감이 일주일 남아 ‘일주일만 버티자’고 되뇌며 출입구를 통과했다. ○○구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 처음엔 적응이 어려웠지만 학생이라 비교적 쉬운 일도 가끔 맡았다. 며칠 하니 손에 감이 조금씩 잡혔다.
비닐 방진막이 새벽바람에 퍼덕— 하고 울었다. 젖은 콘크리트 비린내가 목구멍에 붙었다. 사수가 내 허리에 안전대 고리를 찰칵 잠그며 말했다.
“2인 1조다. 내가 ‘하나’ 하면, 너는 ‘둘’. 놓치면 일 커진다. 위에서 떨어지는 소리 들리면 즉시 정지. 귀 열어.”
크레인 와이어가 하늘에서 윙— 하고 울었다. 붐 끝에서 내려오는 훅에 매단 철근 번들이 서로 스치며 띵… 하고 맺혔다. 절단기를 돌릴 때 나는 탄 쇠 냄새가 간헐적으로 끼어들었고, 장갑 안쪽으로 스며든 물기는 손가락 마디마다 차갑게 고였다. 현장은 항상 소리와 냄새와 촉감이 먼저 왔다. 사수는 퉁명하고 무뚝뚝하지만 일을 잘한다.
첫 라운드가 절반쯤 지났을 때, 무전기에서 잡음이 끊기더니 문장 하나가 붙었다.
“사고 났다, 사람이 떨어졌다.”
사수는 어깨만 까딱했다. “타 채널 겹칠 때 있어. 일해.” 그래도 이상했다. 그 문장, 현장 교육 영상 도입부에서 들었던 사고 알림용 표준 멘트와 호흡이 똑같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옥상 확성기가 한 번, 타워크레인 인터폰이 한 번, 바람이 등 뒤에서 앞으로 밀려올 때마다 같은 속도와 같은 억양으로 그 문장이 섞여 들었다. 멀리 있던 방송이 점점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무전기를 장갑으로 살짝 눌러봤다. 떨림은 없었지만, 속삭임처럼 귓불에 붙는 감각은 계속 남았다.
라운드 교대 직전, 사수가 내 쪽으로 호출을 던졌다.
“하나.”
나는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둘—” 그런데 문장이 먼저 들어왔다.
“사고 났다—”
사수가 다시, 더 단단한 목소리로 불렀다. “하나.”
“… 사람이 떨어졌다.”
이번에는 옥상 확성기가 대답했다. 스피커 천이 찢어질 듯 지직— 하고 끼어들었다. 나는 대답을 삼켰다. 사수의 시선이 잠깐 날 스쳤다. ‘장난치지 마라’는 눈빛. 나도 내가 왜 못 말했는지 몰랐다. 혀가 딱풀처럼 턱에 붙은 느낌이었다. 머릿속에서 ‘등록금’이란 단어가 콘크리트처럼 굳어졌다. 일주일만 버티자. 그 굳은 덩어리가 내 목을 잡아당겼다.
가설계단을 돌아 내려오는데, 안전그물 아래서 노란 안전모 하나가 혼자 또르륵 굴러왔다. 내 발끝에 닿아 멈추더니 바람이 방향을 바꿀 때마다 바닥을 짧게 찍었다. 뒤집어 보니 안쪽에 둥근 땀 테만 또렷했다. 보통 이마선이 눌린 자국이 남는데, 여긴 없었다. 얼굴 자국이 아예 없었다. 헬멧을 한 번 더 뒤집었다. 똑같았다. 사수가 다가와 내 손에서 헬멧을 가져가더니 별말 없이 다시 내 손에 얹어 주었다. “치워라.” 그의 목소리 뒤로 철근 번들끼리 스치는 띵…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그다음은 빠르게 왔다. 타워크레인 훅 아래서 묶인 번들 한 무더기가 무게 중심을 잃어 미끄러졌다. 금속이 금속을 긁는 비명이 하늘로 말려 올라가다가, 바닥에서 쾅— 하고 터졌다. 진동이 발목뼈까지 올라왔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동시에 소리쳤다. “멈춰!” “비상!” “119!”
우리가 달려간 자리에서, 한 아저씨가 누워 있었다. 임시 반장이 자세를 만지며 “움직이지 마세요!”라고 외쳤다. 바로 그때, 그가 한쪽 팔로 바닥을 짚고 조용히 일어났다. 그리고 마치 긴 숨을 뱉듯 말했다.
“휴, 살았네.”
그가 고개를 드는 순간, 나는 얼굴을 보려고 했다. 그런데 눈이 먼저 그의 목으로 갔다. 키 큰 조명탑 불빛이 쇄골과 어깨를 흘렀다. 그리고 그 위,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 전체가 비어 있었다. 비 온 날 유리창을 닦아낸 자리에 불빛이 미세하게 난반사되는 것처럼, 윤곽만 남은 빈 틀이었다. 눈도 코도 입도 아니었다. 그냥 얼굴의 구멍 같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한 걸음 물러났다. 뒤꿈치가 모래주머니에 걸려 휘청거렸다.
같은 순간, 두세 걸음 옆에서는 사람들이 누워 있는 그 아저씨의 몸을 둘러싸고 있었다. “호흡 약해요! 맥박!” 누군가가 외쳤다. 누워 있는 쪽의 운동화 끈, 바지 옆선, 헬멧 끈은 반쯤 풀려 있었다. 일어나 “살았네”라고 말한 그것은 그림자처럼 조용히 몸을 돌려 나를 쳐다봤다. (정확히 말하면 쳐다본 것 같았다. 얼굴이 없는데도.)
그때 무전기가 울렸다.
“○○-둘, 응답.”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귀에서 딱—딱— 소리가 났다.
“야, 이 새끼야. 사고 난 거 못 봤어? ‘둘’ 왜 안 해? 너도 죽고 싶어?”
손에 든 무전기는 가만히 있었다. 고무 버튼은 눌리지 않았다. 그런데 내 귓불 바로 근처에서 그 버튼이 눌린 것 같은 감각이 났다. 붙어 있던 문장이 정확한 속도로 속삭였다.
“사고 났다, 사람이 떨어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둘… 이상 없음.” 내 목소리가 내 입에서 나왔는지, 아니면 귓속에서 울렸는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아니면 대답했다고 착각했을 수도 있다.
사이렌이 울렸다. 그 순간 전광판 ‘무재해 0128일’ 숫자가 딱—딱— 되감기더니 0000에서 멎었다. 공기 중에 쓴 철 냄새가 강해졌다. 절단기 탄내가 한 번 더 올라왔다. 그러고 나서 방금 전 그것이 서 있던 자리엔 아무도 없었다. 같은 시간, 세 사람이 들것을 들고 와 누워 있는 그 아저씨를 실어 갔다.
이후 절차는 매뉴얼대로였다. 크레인 멈춤, 라인 통제, 관계자 조사. 나는 임시 사무실로 이동했다. 종이컵 커피가 바닥에 작은 갈색 원을 만들었다. 사람들 말은 단조로웠다. “누가 그쪽에 있었지?” “점검은 했어?” “왜 번들이 미끄러진 거야?” 잠깐 고개를 들어 화이트보드를 봤다. ‘무재해 0128일’이라고 적어 두었던 부분이 지워진 채 비어 있었다. 누군가가 말끝을 흐리며 덧붙였다.
“구급대 말로는… 돌아오지 못했다고. 김 소장, 그 자리에서 곧 죽었다고. 자네는 괜찮나?” 반장이 말했다.
“저, 일어났어요. 앉았다가, 고개도 들고… 아저씨가 ‘살았네’라고…” 나는 횡설수설했다. 사무실의 공기가 반 박자 늦게 얼어붙었다. 아무도 맞장구치지 않았다. 대학생이 사람 죽는 걸 보고 정신이 나갔다고 여긴 눈치였다. 사무 담당이 형광펜을 손가락 사이에서 굴리다가 펜촉을 딱 눌렀다. 그 소리가 아까 전광판 숫자 떨어지는 소리와 같았다.
오후로 넘어가며 조사는 길어졌다. 나는 퇴근 처리만 하고 빠져도 되겠냐고 물었다. 온몸이 떨려서였다. 반장이 잠깐 내 눈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현장을 나오는데 바람이 샌드위치 패널을 지나며 길게 후— 하고 울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무전기를 봤다. 불은 꺼져 있는데, 귓불에는 여전히 마치 누군가가 아주 가까이 선 듯한 온기가 붙어 있었다.
출입구를 지날 때 전광판이 시야에 걸렸다. ‘무재해 0000일’이 붙박이처럼 멈춰 있었다. 바로 아래 “2인 1조 확인, 하나·둘! 오늘도 무재해” 문구가 바람에 흔들렸다. 나는 하나·둘을 소리 내 읽고 스스로 웃었다. 오늘은 무재해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바람은 표어를 그대로 흔들어 주었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방진마스크를 턱으로 내렸다. 귀끈이 땀에 젖어 축축했다. 버스가 들어와 끼익— 하고 섰다. 창가에 앉아 유리에 얼굴을 비추자, 내가 살아 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사실이 우스웠다. 내가 죽고 김 소장이 살아 있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둘 다 죽었을지도 모른다.
유리창이 가끔 미세하게 떨릴 때,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들이 뒤늦게 도착했다. 심장이 쿵 하고 치고, 안전화 앞코가 바닥을 한 박자 늦게 탁 찍고, 가슴 안쪽에서 하네스 금속 고리가 여전히 찰칵 걸려 있는 것 같은 잔상이 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귓불에 입김이 붙었다.
“하나.”
이번엔 내가 먼저 대답했다. “둘.” 목소리가 제대로 나왔다. 내 귀 안에서 울리던 메아리가 바깥공기로 넘어오는 느낌이었다. 그때 아주 조용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내 뒤쪽에서 또 다른 ‘둘’이 따라왔다. 버스 진동과 함께 좌석 등받이가 딱— 하고 떨리는 순간이었다.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지 않는 게 현명하다고 느꼈다. 대신 눈을 감고 방진마스크 속 습기를 한 번 세게 빨아들였다. 쇠와 콘크리트 냄새가 아닌, 에어컨과 오래된 직물 냄새가 들어왔다. 오늘 나는 죽다 살아났다. 이런 건설현장 일은 다시 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며칠은 더 버티겠다.
집에 와서 샤워를 했다. 어깨를 때리는 물줄기 소리가 사고 방송 템포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사고 났다— 사람이 떨어졌다—” 욕실 환풍기 소리에 묻혀 리허설처럼 돌아갔다. 거울을 보며 타월로 얼굴을 닦았다. 눈, 코, 입—모두 있었다. 한참을 들여다봤다. 어딘가 흐릿한지 확인했다. 괜찮았다. 그제야 의자에 앉아 오늘 있었던 일을 글로 적기 시작했다.
김 소장의 사고는 결국 아무도 읽지 않는 기사의 한 페이지로 끝났다. 나는 그 현장에 있었고, 무전기와 확성기와 바람 사이로 섞여 들어오는 같은 문장을 들었다. 그리고 얼굴이 없는 그가 일어나 “휴, 살았네”라고 말하는 것을, 나만 봤다. 구급대는 그를 사망으로 기록했다. 종이 위의 글자는 단단하다. 내가 본 건 종이가 아니다. 공기였다. 공기에 그려진 빈자리였다.
잠들기 전, 폰 알람을 06:10으로 맞췄다. 내일도 간다. 등록금은 내야 한다. 다만 나는 규칙을 바꿨다. 누가 “하나”라고 부르면, 나는 바로 “둘”을 크게 말한다. 그게 살아 있는 방법 같아서다. 사고로 배웠다. 현장에는 여러 종류의 소리가 있다. 와이어 윙—, 철근 띵…, 방진포 퍼덕—, 전광판 딱—. 그리고 그 모든 소리를 묶어 자기 목소리처럼 흉내 내는 문장 하나가 있다. “사고 났다, 사람이 떨어졌다.” 그 문장이 어디서 들리든, 나는 대답한다. “둘.”
다음 주 초, 단톡방에 공지가 올라왔다. 사고 경위, 안전 강화, 작업중지권 안내. 맨 아래 줄에 사망자 성함이 있었다. 내 머릿속으로 노란 헬멧 안쪽의 땀 테가 떠올랐다. 그 테두리 바깥으로는 얼굴 자국이 없었다. 그 헬멧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생각하다가, 나는 결국 그곳으로 갔다. 야간조가 시작되기 전, 해가 지기 직전의 현장은 색이 옅었다.
출입구 옆 전광판을 다시 봤다. 낮 동안 바꿔 달았는지 0003이 깜박였다가 0004로 올라갔다. 그런데 곧, 아주 잠깐이었지만 확실히 보았다. 0004가 0000으로 한 번 더 떨어졌다가 다시 0004로 돌아오는 것을. 아무도 그걸 보지 못한 눈치였다. 나는 웃음이 났다. 어제의 딱—딱— 소리가 재생 버튼을 찾은 듯했다.
건물 코너를 돌아서려는데 발끝에 무언가 툭 걸렸다. 노란 안전모였다. 누가 벤치 밑에 밀어 넣었는지, 어둠 속에서 겨우 색으로만 보였다. 주워 들었다. 안쪽을 확인했다. 땀 테가 선명했다. 그 테두리 바깥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명찰을 봤다. 그 이름이었다. 어젯밤 들것에 실려 간, 그리고 보고서에 사망으로 올라간 김 소장의 이름. 나는 헬멧을 조심히 내려놓았다. 그 순간 옆을 스치던 바람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며 귓불에 바짝 붙었다. 아주 가까운 데서, 스피커가 아니라 사람 입김의 온도로, 문장 하나가 연습 테이프처럼 매끄럽게 흘렀다.
“사고 났다, 사람이 떨어졌다.”
나는 등줄기에서부터 손끝까지 서늘한 물이 내려가는 걸 느꼈다. 그래도 이번엔 규칙대로 했다. 턱이 자연스럽게 들리고, 입이 열렸다. 나는 살아 있는 쪽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둘… 아저씨, 죄송합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전광판이 멀리서 딸깍 하고 한 번 더 변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누가 넘어지지도, 번들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그냥 바람이 지나갔다. 나는 그 헬멧을 제자리에 밀어 넣고 현장 안으로 들어갔다. 등록금이 모일 때까지만 버틸 거다. 그동안 누가 하나라고 부르면, 나는 둘이라고 답할 거다. 그리고 언젠가 이 일을 그만두더라도, 아마 그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게 내가 살아 있었다는 가장 단순한 증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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