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때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에겐 대학 2학년 여름의 일이었다. 시험 끝나고 다들 기가 빠져 “어디든 가자”가 합의였다. 문제는 예약이었다. 시즌 한복판이라 인기 숙소는 전부 꽉 찼고, 겨우 하나 잡은 곳도 펜션이 외진 산자락에 있었는데 예약이 잘못돼 있었다. 강원도 ○○군 산자락의 그 펜션은 휴대폰도 잘 터지지 않는 곳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날, 펜션 측은 “사흘 뒤 체크인으로 되어 있어요”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그럴 리 없다고 난리치자 관리 아저씨가 누군가와 오래 통화를 했다. 얼굴에선 영 내색이 안 좋았다. 한참 뒤 내민 제안은 이랬다. “근처에 임대 산장이 하나 있다. 직원 숙소인데 담당이 휴가 중이고, 산속이라 시끄럽게 놀아도 민원은 없을 거다. 우리 실수니 비용은 펜션가에서 30% 깎아 처리하겠다.” 다만 오늘 안에 청소·전기·수도 점검을 해야 해서 시간이 걸린다며, 오후까지 시간 보내다 관리사무소로 다시 오라고 했다.
해질 무렵, 사무소 앞에서 아까 본 사람과 다른 이가 우리를 기다렸다. “전부 준비됐어요. 멧돼지 내려오니 밤엔 밖에 돌아다니지 말고, 전기는 차단기 여기, 수도는 이 밸브. 휴대폰은 안 터지니 거실 직통전화 이 버튼 누르면 사무소 연결돼요.” 설명이 너무 자세하고 필사적이었다. 불안했지만 이미 해는 기울었고, 다른 선택지도 없었다. 친구들은 “무슨 멧돼지냐”며 킥킥거렸다.
산장은 2층 목조였다. 30년은 된 티가 났다. 외관은 낡았지만, 묵은 때라기보다 누가 오래 ‘쓰지 않은’ 깔끔함이었다. 리모델링이 되어 있어서 꽤 좋았다. 부엌, 거실, 2층 다락방. 현관 위에는 센서등, 거실 장식장 윗선반에는 붉은 봉투가 하나 보였다. 그땐 바비큐랑 술 생각뿐이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첫날밤은 실컷 떠들고, 방 안에 조용히 내려앉을 무렵이었다. 산속이라 소리가 또렷했다. 개구리 소리, 냉장고가 덜컥 켜질 때 금속 진동, 보일러 웅— 하는 낮은 소리. 친구 하나가 새벽에 화장실 갔다 와서 “밖에서 쿵… 쿵… 북 같은 게 났다”라고 했지만, 다들 졸려서 “바람에 뭐가 흔들렸겠지” 하고 넘겼다.
둘째 날 저녁, 우린 고기 먹고 담력 테스트랍시고 산길을 쓸데없이 올랐다가, 밤 열 시쯤 산장으로 돌아왔다. 현관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스무 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문 손잡이를 쥔 채, 등만 우리 쪽으로. 멀리서 발소리를 내며 다가가도 돌아보지 않았다.
“저기요, 여기 뭐 하세요?” 리더 격 친구가 먼저 외쳤다. 반응 없음. 10미터, 5미터, 1미터. 내 손이 그 남자의 어깨에 닿을 만큼 가까워졌는데도, 그는 손잡이만 쥐고 있었다. 친구가 짜증을 못 참고 팔을 휙 잡아챘다.
그 순간, 우리는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손목에서 팔꿈치까지가 뼈가 있는 사람이라면 나올 수 없는 각도로 휘었다. 남자는 그제야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눈은 초점을 잃은 채, 입가에는 침이 가늘게 흘렀다. 가까이 보니 옷은 젖은 먼지로 얼룩져 있었고, 신발은 한 짝뿐이었다. 그는 우리를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아닌 사람처럼 숲 쪽으로 비틀거리며 사라졌다. 우리는 너무 무서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린 문을 걸어 잠그고 거실에 모였다. “방금 그거 뭐야?” “사람이야? 귀신이야?” 혀가 굳어 말을 더듬는 사이, 멀리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일정한 간격의 둔탁한 소리. 바람 소리와는 달랐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현관 쪽 커튼을 젖히고 밖을 보았다. 어둠 속에서 둥근 무언가가 진입로에서 우리 쪽으로 구르며 다가왔다. 쿵— 구르고, 멈추고. 쿵— 구르고, 멈추고. 그렇게 큰길에서 산장 앞마당까지 다가왔다.
센서등이 탁 켜졌다. 그 짧은 빛에 우리는 본 걸,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건 덩어리였다. 하얀 상복 같은 천 조각들, 검은 정장 바지, 맨 팔, 맨얼굴, 어린아이의 팔꿈치, 할머니의 볼, 남자의 등—사람의 부분들이 서로 눌어붙어 둥글게 엉켜 있었다. 눈들은 전부 다른 곳을 보고 있었고, 입들은 침을 흘리며 열렸다 닫혔다. 누구 하나 떼어낼 수 없게 서로에게 붙어 있었다. 하나 굴러갈 때마다 안쪽에서 북 같은 소리가 울렸고, 젖은 흙과 비린 쇠 냄새가 바람결에 섞여 들어왔다.
“문 닫아!” 누군가 소리쳤고, 내가 커튼을 움켜쥐었다. 잠시 뒤 여러 번의 ‘쾅’이 들렸다. 그때는 문과 벽을 ‘난타’하는 줄 알았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 ‘쾅’은 덩어리가 마당의 소나무, 데크 난간, 외벽 모서리에 부딪힐 때 났던 충돌음이었다. 굴러와—부딪히고—멈추고, 그 충격이 목재를 타고 집 안으로 전해지니 우리에겐 사방에서 두드리는 소리처럼 들린 것이다. 유리는 미세하게 떨렸고, 그 진동이 이가 달싹이는 촉감으로 올라왔다. 어둠 속 여러 손바닥이 유리를 스칠 때 나는 얇맑은 소리도 간헐적으로 섞였다.
“관리실에 전화!” 누군가 외쳤다. 우리는 현관 옆 직통전화로 달려갔다. 두세 번 신호음 뒤, 우리를 산장으로 데려왔던 그 아저씨가 받았다. 우리는 엉켜서 말했다. 남자, 팔, 덩어리, 구르는 소리, 충돌— 숨이 넘어가듯.
“……아직도 나와?” 관리 아저씨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설명은 나중에 할게. 거실 장식장 윗선반 붉은 봉투 있지? 그 안에 부적이랑 테이프, 금줄이 있어. 문지방 위에 금줄 걸고, 현관·거실 출입구·창틀에 부적을 테이프로 붙여. 부엌 오른쪽 두 번째 서랍의 소금을 문 밖으로 세 번 뿌리고. 절대 밖으로 나가지 마.”
우리는 말을 끊고 움직였다. 의자를 끌어올려 붉은 봉투를 꺼냈다. 정말 부적·금줄·테이프가 있었다. 손이 떨려 테이프가 자꾸 엉켰다. 현관 중앙부터 부적을 붙이자, 바로 그 지점의 충돌음이 한 박자 늦게 작아졌다. 소금을 하나, 둘, 셋 뿌리고, 금줄을 문지방 위에 걸었다. 창문에도 빨간 종이를 눌러 붙였다. 바깥을 보지 않으려 했지만, 실수로 한 번 눈이 갔다. 여러 팔 사이, 어깨보다 높은 곳에 어울리지 않게 아기 얼굴 크기의 얼굴 하나가 끼어 있었다. 눈은 우리 쪽이 아니라 천장을 보고 있었다.
시간은 끔찍하게 더디게 갔다. 쿵— 쾅—쿵— 소리의 박자가 점점 느려졌다. 부딪힐 때마다 송진 냄새가 올라왔고, 데크 난간에서 목재 가루가 가볍게 날렸다. 유리 진동이 끊기고, 마지막 무게가 데크에서 내려앉는 소리가 사라질 때쯤—새벽빛이 창으로 번졌다. 먼저 들린 건 차 소리였다. 마당 자갈을 밟는 바퀴, 발소리, 초인종. “여보세요! 괜찮아요?” 문 밖에서 여럿의 남자 목소리가 겹쳤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보고, 문을 열었다.
어제 사무소에서 만난 두 아저씨와 동네 어르신 셋이 서 있었다. 한 분은 흰 두루마기, 한 분은 짚으로 꼰 금줄을 들고 있었다. 얼굴엔 진짜로 미안한 표정이 붙어 있었다.
“정말 미안하네. 괜찮을 줄 알았다가….” 두루마기 어르신이 말했다. 우리는 분노와 안도가 동시에 솟구쳤다. “왜 이런 데를 손님에게 빌려주신 거예요?”
그제야 그들이 짧게 얘기를 꺼냈다. “원래는 공동묘지 언덕이었어요. 관광 개발로 버스 진입로를 내며 묘역을 잘라냈고, 그 위에 수련원이 들어섰죠. 어느 여름밤, 수학여행 버스가 졸음운전으로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절벽 아래로 전복됐습니다. 수습 때 아이들과 보호자들의 유품과 옷가지가 한데 엉겨 있었고… 그때부터였죠. 밤이면 덩어리가 굴러와—쾅, 나무·난간·외벽에 부딪히고—멈추는 소리가 이어졌어요. 우린 그 뒤로 금줄치고 부적 붙여 막았는데, 십여 년 잠잠하길래 다시 쓰다가… ”
우리는 화를 냈다. 그들은 교통비·식비·숙박비 전액 환불, “다음에 오면 그곳 말고 펜션동 할인해 드리겠다”
까지 약속하며 비밀을 부탁했다. “터는 비워 두고, 금줄 다시 칠 겁니다.”
“졸업 무렵 다시 가려다 전화해 보니 ‘철거했다’는 답만 들었다. 사진을 보내 달라 하자, 금줄만 매달린 나무 기둥 하나가 서 있었다고 했다.”
그날 밤 이후, 가끔 한밤중의 규칙적인 소리가 들리면—세탁기 탈수나 옆집 망치질 같은 게 쿵… 쿵… 일정하게 이어지면—나는 무심코 문지방을 본다. 내 눈엔 아직 보이지 않는 금줄이 걸려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한동안은, 문을 열기 전에 세 번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세 번째 박자에서만 문을 연다. 왜냐면 그 덩어리는 두 번째 박자에 맞춰 굴러왔고, 세 번째에서야 멈췄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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