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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베이글이 싫어요.

by 달빛소년

베이글이 싫다는 말은 맛의 문제가 아니다. 줄을 서고, 사진을 찍고, ‘핫플’을 소비하는 순간 보이지 않게 되는 노동의 구멍이 싫다는 뜻이다. 최근 한 유명 베이커리 관련 비극적 보도를 봤다. 사실관계는 물론 조사로 더 확인되어야 한다. 내 관심사는 특정 브랜드의 흑백논쟁이 아니라, 우리가 소비자로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외면하는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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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근무시간은 정시 8시간으로 찍는다. 하지만 가방에는 늘 노트북이 들어 있다. 퇴근 스탬프를 찍은 뒤에도 하지 못한 일은 계속해야 한다. 초과근무를 기록하면 “일이 느려서 남는 사람, 제떄 일을 못하는 사람”으로 분류될까 봐, 장부에는 ‘정시 퇴근’이 남고 내 하루는 카페와 집에서 계속된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누구도 멈추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매일 목격하는 표준의 부재다.


표준이 없으면 책임은 개인의 미덕으로 미끄러진다. 열정, 오너십, 브랜드 사랑. 이 말들은 예쁘지만, 휴식 시간과 인력 배치, 피크 타임 수당 같은 최소한의 기준이 없을 때 미덕은 쉽게 셀프 착취로 변한다. 개점 준비와 오픈 러시가 반복되는 구조라면, 그것은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요즘 MZ는 금방 포기한다”라고 말하지만 묻고 싶다. 무엇을, 누구의 대가로, 얼마나 오래 버티라는 건가.


평균도 믿지 않는다. “우리 회사는 평균 주당 ○○시간이야” 같은 문장은 피크를 지운다. 사람의 몸은 평균으로 일하지 않는다. 특정 주, 특정 요일에 몰리는 최장 연속 근무시간, 주간 최고 근로시간, 교대 간 최소 휴식시간 같은 지표가 진짜다. 이 지표가 보이지 않으면, 문제는 언제나 개인의 태도 탓으로 돌아온다. 누군가는 집에 가고 누군가는 집에 가지 못한다. 그저 그 복불복의 불평등한 주사위 던지기가 계속되는 것이다.


소비자인 나도 책임을 나눈다. “맛있다”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그 맛이 만들어지는 방식을 묵인한다.

그래서 다음 세 가지 질문을 나부터 한다.


1. 인력 충원과 교대 근무는 충분할까?

2. 피크 타임 수당과 휴게 시간이 제때 보장되는가?

3. 문제가 불거졌을 때의 태도 즉, 해명, 자료 공개, 사과, 재발 방지가 신뢰할 만한가?


거창한 캠페인이 아니라, 이 질문을 조용히, 그러나 끈질기게 던지는 소비자가 많아질수록 업계의 표준은 올라간다. 노동의 구멍이 메워질 것이다.


나는 다시 말한다. 나는 베이글이 싫다. 정확히는 노동의 구멍을 보지 않는 방식이 싫다. 누군가의 새벽이, 심장이, 관계가 뚫리는 동안 우리는 사진만 남긴다. 빵은 둥글고 가운데가 비어 있다. 매출 그래프도 둥글게 올라가지만 가운데가 비어 있으면 결국 무너진다. 우리가 사랑하는 건 빵의 식감이지, 사람의 체력을 갈아 넣은 식감이 아니다. 그 모습은 업무 걱정에 잠을 못 자고 새벽에 알람이 울리자마자 눈을 떠야 하는 나와 닮아 있다.


조사는 계속될 것이다. 결론이 어디로 가든, 이번 일은 업계 전반의 안전 설계·피크 관리·인력 운영·내부 소통 표준을 손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문장 하나만 바꾸자.


“줄 서는 가게가 대단하다”가 아니라 “사람을 지키는 가게가 오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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