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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R Jul 16. 2024

깊은 강

심리학 전공자 우애령의 자전소설 ㅡ 한 사람을 알려거든 삼대를 알아야

오랜만에 읽은 소설이다. 우애령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이 책은 작중 치매를 앓고 있는 화자의 어머니 “연이”의 회상을 통해 그의 가족사를 풀이해 나간다. 저자도, 화자인 주인공 “나”도 심리학 전공자로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삼대를 알아봐야한다고 한다.

그래서일지 <깊은 강>은 강화할아버지, 그의 아들 표림과 부인 연이, 이들의 자식과 동생들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연대기순으로 다루고 있다. 저자는 본인 가문의 일대기를 통해 스스로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치유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누구인지 알고자하는 인간 본연의 욕망에 덧붙여 가문에 흐르고 있는 수난의 서사를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 엮어내는 것이다. 전쟁을 겪으며 자식을 셋이나 잃은 강화할아버지, 이념에 사랑을 잃은 고모, …  주인공 영주의 가문 사람 하나하나가 가진 이야기는 우리 역사를 관통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식민지 시대와 6.25 를 겪은 세대는 집단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게 확실하다. 사실 이야기 한 편린만 잡아와도 두고두고 트라우마가 될 사건들인데 이걸 직격탄으로 맞은 가족이 심지어 해방 이후에 꽤나 풍족하게 살았다는 이유로 행복한 축에 속한다는 건… 우리 현대사회가 얼마나 불안한 기둥 위에 자리잡았나 보여준다고 할 수밖에. 그래서 우리사회의 어른들이 참 안쓰럽다.


프롤로그는 환각 섬망에 시달리는 연이의 노년 순간을, 그리고 에필로그는 연이의 임종 직전까지를 자식들 입장에서 서술하면서 수미쌍관을 맺는다. 그러나 에필로그에서는 죽음을 앞둔 연이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지 않고, 다만 자식들이 이제는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다음 세대, 이들의 자식 세대에 기대어 사는 다음 삶의 막이 열리는 것을 느끼면서 끝낸다. 소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른들을 잃을 때 한 세대가 지나가는구나 싶은 순간이 있다. 그럴 때 어찌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느껴지고 심지어 숭고하기까지 해서 서글프다.


저자 우애령은 인스타툰 펀자이씨 툰의 어머니이신데, 여러 이유로 항상 글로라도 뵙고 싶은 분이다. (<선유실리> 라는 글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유토피아가 있다면 그곳일지…)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을 보면 인성을 스스로 다스리는구나 싶어 부러울 때가 있다. 융을 인용하며 질문을 던지는 저자의 글 한토막을 소개하며 짧은 리뷰를 끝맺는다.


처음 미국에서 심리학 공부를 시작할 때 영주의 마음에 강하게 와 닿았던 것은 ‘융’의 이야기였다. 인간은 자신의 모든 역량을 성취하고 실현하는 쪽으로 가려는 경향이 있다는 가정을 내세우며, 우리가 행복하든 불향하든 자신의 삶 전체를 살지 않는다면 우리 영헌이 온전해질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그는 오랫동안 영주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전쟁터처럼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표류하게 되면 인간은 감히 자기실현이라는 꿈같은 목표는 가져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존이라는 최우선 과제에 휘둘리면서 반세기를 넘어 살아온 영주 부모 세대는 자신의 삶 전체를 살아온 것일까. 아버지 표림과 어머니 연이가 겪어온 일제강점기의 잔재와 해방, 한국전쟁, 그리고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두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 불행과 굶주림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나 그런대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행복을 찾은 것일까?(p.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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