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은 강물을 밀어내고 숨겨둔 뻘을 다시 드러냈다. 강둑 아래로 얌전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파랑이’가 보인다. 외출한 아버지가 돌아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몰래 ‘파랑이’를 타고 바로 앞 갈대섬에 닿고 싶은 미진이는 마음이 급하다. 하지만 안간힘을 써도 단단히 묶인 밧줄은 풀릴 기미조차 없다. 그리고 설사 풀린다 해도 오랜만에 몸체를 반쯤 뻘 위에 얹고 쉬는 파랑이를 물속까지 끌기는 어림도 없다. 좀처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꼼짝도 하기 싫은 모양새다. 아버지와 무언의 약속이라도 있었는지 주인 외에는 당최 말을 듣지 않는다.
아쉬운 대로 발이 묶인 배 위에 올랐다. 바닥에 등을 깔고 누워 하늘을 올려다본다. 오늘은 여느 때보다 더 높고 푸른 하늘이다. 솜뭉치보다 새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따가운 가을 햇살에 절로 눈이 감긴다. 잘싹잘싹 뱃머리를 연신 들이받으며 일렁이는 물의 속삭임을 온몸으로 느낀다. 나지막이 계속되는 금강이 들려주는 자장가다. 경직된 근육의 긴장이 풀리고 전신이 나른하다.
‘나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될까?’
‘어른이 되어서는 무슨 일을 하고 살까?’
수문이 만들어진 자리의 경계에는 숭어랑 잉어들이, 그리고 특히 갈치처럼 길고 빛나는 은빛의 ‘웅어’가 많이 올라온다. 아버지의 막사에서 찾은 기다란 막대에 노끈을 달고 연장통에서 몰래 가져온 구부러진 쇠꼬챙이를 매달았다. 미끼도 없는 낚싯대를 물속에 던져 넣고 휘휘 저어 본다. 분명 큰 놈들이 다니는데 낚을 수가 없다.
성질 급한 아이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금세 달아올랐다. 순간 ‘홱’하고 낚싯대를 한쪽에 내팽개친다. 아버지가 장어잡이에 쓰던 뜰채가 떠올랐다. 쏜살같이 달려가 집 주변을 살피는데 마침 한쪽에 얌전히 놓인 뜰채를 발견했다. 이번엔 좀 더 튼실하고 좀 더 긴 막대에 뜰채를 이었다.
곧바로 수문을 향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린다. 드디어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아 가슴이 벌써 요동친다. 서둘러 아래로 내려가서 두리번거리는데 어찌 된 일인지 조용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점프하며 약을 올리던 물고기가 잠잠하다.
‘아니 대체 어디로 숨은 거지?’
뜰채를 물속에 집어넣고 건져 올리기를 여러 차례인데 허탕이다. 아이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가 지루했을까, 아니면 아이에게 잡힐까 두려웠던 것일까. 천천히 그리고 잽싸게도 낚아채 보지만 대체 물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슬며시 화가 치밀어 바로 옆 큰 돌을 주워서 휙 던져보았다. ‘풍덩’하는 요란한 소리에 아이가 더 놀랐다. 그제야 조금 반응을 보이는데 더 멀리 달아난다.
아버지가 그물을 치면 민물새우며 웅어 숭어까지 그렇게도 많이 잡히더니 오늘은 감감무소식이다. 낚시꾼이 성질 고약한 아이라는 걸 어찌 알았을까. 잡기만 하고 그냥 놓아주려고 했는데 마음이 바뀌었다.
‘날 화나게 했으니 아빠처럼 그물로 확 잡아버릴 테야.’
‘우리 아빠가 죄다 잡아 줄 거다.’
‘그리고 절대 놓아주지도 않을 거다.’
협박하며 돌아서는 미진이 뒤로 다시금 물고기들이 몰려든다.
‘네가 낚인 거야.’
‘우린 애송이 상대 안 해.’
금강의 물속 생명체는 참으로 약았다. 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비로소 ‘첨벙첨벙’ 튀어 오르는 몸짓이 힘차고 경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