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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tain가얏고 Oct 20. 2024

남의 일에 관여치 말라!

(2년 전 어느 날에...)

 직원들과 오랜만에 시간을 냈다. 일에 치인 그간의 노고에 대한 포상인지 날씨마저 좋다. 모처럼 가을을 온몸으로 느끼며 영상으로 옮겨 담느라 여념이 없다. 알록달록 단풍 든 산행은 고사하고 근처 공원에도 나가지 못한 채 겨울을 맞나 했는데 감사한 마음이다.   

   

 수목원 곳곳의 갈대는 위를 향해 흔들흔들 고운 물결 바람에 일렁이며 리듬을 타는데, 수려한 버드나무 아래 길게 늘어진 가지는 치렁치렁한 치맛자락 슬쩍슬쩍 잡아 올려 옷매무새를 다진다. 연못의 비단잉어와 금붕어는 한가로이 노닐고, 벤치는 삼삼오오 수다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 차지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제발 쉬엄쉬엄 지나가라고 매달리고픈 심정으로 구석구석을 누빈다. 직장에서 잠시 벗어난 일탈이 이처럼 달콤할 수가 있나 싶다.      


 퇴직일까지 스무날 남짓한 동료와는 이번 외출이 공식적인 마무리 행사다. 만남과 헤어짐은 언제나 설렘과 아쉬움을 남긴다. 첫 만남에서의 무뚝뚝함에 멈칫했고, 환한 웃음에 마음을 열고 다가갔다. 힘든 일이 닥치면 달려와 걱정해 주는 배려심 깊고 정의감에 불타는 그녀다. 조급하고 직설적인 성격 외에 장점이 도드라지는 정 많고 마음 따뜻한 분이다. 때로는 직언도 서슴지 않아 당황스러울 때가 있지만 쓴소리는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주위에 퇴직하는 분들이 하나둘 느는 걸 보니 나이 들어감을 실감한다.     

 

 수목원을 벗어나 근처 카페로 이동한다. 외곽의 한적한 곳에 자리한 카페는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새다. 쥔장인 듯한 남자가 아직 포인트 벽돌로 외벽을 쌓고 있다. 빵 카페임에도 빵 종류가 적다며 투덜거리는데, 언제나처럼 감정 표현에 솔직하고 귀여운 그분이다. 창가에 자리 잡고 밖을 내려다보니 늦가을 정취가 여유롭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건너편 팀도 예사롭지 않다. 이 시간에 여유로운 사람들이라니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잠시 떠나온 자리, 역시나 직장인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까다로운 상사 이야기를 단골 메뉴로 추가한다.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에서 알게 된 ‘삼채’라는 채소가 있다. 삼채는 매운맛, 단맛, 쓴맛의 세 가지 맛이 난다고 해서 삼채(三菜), 또는 인삼의 어린 뿌리 같다고 해서 삼채(蔘菜)라고도 말한다. 잎과 뿌리 그리고 꽃을 식재료와 약초로 사용하는 채소다. 미얀마 고산지에서 자생하던 식물로 미얀마에서는 국민 채소로, 유럽에서는 고급 식재료라고 한다. 삼채의 효능은 당뇨, 혈압에 도움이 되며 피부 개선과 뼈를 튼튼하게 하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인간관계에서도 삼채 그 이상으로 한 가지 맛이 아닌 여러 가지 맛이 난다. 그래서 알면 알수록 더 모를 것이 사람의 마음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직장의 새로 맞이한 상사와 관련한 이야기는 씹으면 씹을수록 매운맛과 쓴맛만이 난다. 그래도 계속 씹다 보면 언젠가 단맛이 나는 날도 올까?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심상치 않은 두 분이 어우러져 있다. 초반에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패인 감정의 골이 깊어 보인다. 눈치 없는 나의 오지랖으로 순간 서로 서먹하다.  딱히 중재하려던 바도 의도했음도 아니다. 한때의 서운한 감정을 풀어내지 못할 게 뭐가 있나  싶었을 뿐이다.


 칭찬이나 험담도 상대가 없는 자리에서 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함에도 그만 가을 감상에 젖어 간과하였다. 둘 사이의 묵은 감정은 둘이서 해결해야 함이다. 결국 불편해진 속내로 눈치를 살피며 수습 방법을 고민한다.      


 때로는 상처를 들추지 말고 지나치는 지혜로움도 필요하다. 구태여 생채기를 헤집어 딱지가 앉을 여유조차 주지 않는 것만큼 미련한 일도 없다.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은 상당히 중한 일이다.      


‘남의 일에 관여치 말라!’ 어느 노스님의 말씀을 떠올리고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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