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의 끝, 그리고 그 이후
토요일 아침, 나는 평소처럼 책상에 앉아 커다란 컵에 담긴 커피를 마시며 체트 베이커의 재즈를 듣는다.
커피를 내리고, 음악을 틀고.
그런 행동을 할 때 잠깐 무의식에 빠져든다.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나중에 떠올리려 해도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면 이미 시간이 흘러버린 느낌이 든다. 하지만 사실 무의식이란 허상처럼 덧없다. 무의식을 의식하는 순간, 이미 의식으로 변해버린다. 무의식 속에서는 시간이 흘러가지만, 의식하면 시간은 '사용하는 대상'으로 바뀐다. 우리는 시간을 사용하는 감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대인이다.
그래서 때로는 시간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사실이 답답하다. 눈에 보이는 결과를 남긴 날은 오늘 하루를 보람차게 보냈다며 만족하지만, 감정에 휘둘려 괴로웠던 날은 불안에 시달린다. 그래서 정신적 건강을 위해 매일 최소한 한 가지는 하려고 노력한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존재로서 남기고 싶다.
하지만 조금 더 내 자신에 대하여 솔직해지자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재즈 카페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커피를 마시고 싶다. 뜨끈한 방 안에서 하루 종일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읽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과 하루 종일 영화를 보고 싶다. 그리고 밤에는 함께 잠들고 싶다.
그렇다고 일하기 싫다는 건 아니다. 위에 적은 것들은 달성하기 대단히 어려운 목표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불안은 마음의 문제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아직 20대라서인지 조금이라도 쉬고 있는 내 모습이 불안하게 느껴진다. 아직 아무것도 이뤄낸 게 없는데. 쉬고 싶다는 마음이 생산성이 낮다고 비판받는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남에게는 별 볼 일 없는 그런 하찮은 일상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매일을 의미로 가득 채우는 것만으로 무엇이 남는지 나는 알 수 없다. 허상이 허상을 재생산하는 자극적인 구조 안에서 무의미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보다는 무의미의 의미에 대하여, 그리고 의미의 무의미에 대하여 고찰하고 싶다.
오늘도 무언가를 하지 못했다고 자책하지 않고, 오늘은 한 가지 일에 집착할 필요가 없어서 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조금씩 하루에 작은 여유를 만들어 가며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가는' 감각을 되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