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무지라는 이름의 유토피아, 대도시라는 이름의 디스토피아
12년 만에 서울에서 친구를 만났다. 그는 한때 목포라는 작은 항구도시에 살던 친구였다. 그의 집은 가톨릭 교회였고, 그는 현재 신학을 공부하며 성직자가 되기 위한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그는 "신은 죽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이 친구는 현대 사회에서 종교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실천적인 관점에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런 그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우리는 서로의 생각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일본에 살았고, 오랜 시간 동안 한국에 돌아오지 않았다. 한국이라는 땅과 마주하기 어려운 트라우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을 살다 보면 언젠가 마주해야만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순간이 온다. 그 강인함이 나에게 생겼다고 생각하니, 아직도 살아갈 희망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둠 속에서 목적지를 알 수 없지만, 저 멀리 보이는 등대를 향해 걸어가야 하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서울의 일본식 이자카야에서 하이볼을 마셨다. 한국에서는 하이볼에 소다 대신 토닉워터를 넣어 약간 달콤한 맛이 나기도 한다. 나는 쓴맛을 더 좋아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위스키 앤 소다라고 불린다고 했다. 우리는 "지금"과 앞으로의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대화의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가 내뱉은 몇 마디 말과,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이나 존경하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만 희미하게 남아 있다.
우리는 취기가 오른 상태로 이태원을 함께 거닐었다. 문득 나는 그에게 물었다.
"앞으로 서울은 어떻게 변할까?"
그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그 순간 네온 불빛에 물든 이태원 거리를 맥주 캔을 들고 걸었던 기억만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