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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경선 Sep 09. 2024

나비처럼 날아서 -6

6.

남형사는 사무실 자리에 앉아 포탈에 들어가 ‘이경수’를 검색했다. 박혜진과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람이었다. 박혜진과 고등학교 동창으로 현직 프로야구선수라 했다. 일요일까지 원정 경기라 월요일 오후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이경수는 서울이 연고지인 피닉스팀의 9년차 선수로 1군에서 맹활약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드래프트에서 상위 순번으로 입단했고 신인상까지 탔었다. 한마디로 잘 나가는 선수였다. 5게임 연속 결승타, 4게임 연속 홈런, 역전 만루홈런 등 대단한 활약을 거두고 있었다. 특이한 기사들도 눈에 띄었다. 비 신사적인 행동으로 물의를 빚은 기사였다. 삼진 아웃 당한 후 심판에게 욕설하고, 실책 했다고 덕아웃에서 글러브를 집어 던지기도 했다. 

4년전엔 연예인과 염문설 보도도 있었다. <피닉스 이경수, 아이돌 출신 여가수 수라와 교제>라는 기사였다. 이를 부인하는 인터뷰도 있었지만 유명인 교제설은 거의 사실이라는 경찰서 출입 기자의 말이 생각났다. 인기척이 들리더니 김형사가 부스스한 얼굴로 털썩 자리에 앉았다.

“빨리 나오셨네요?” 

“어제 좀 마셨나 봐?”

“그래 보입니까?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기들 만나서 한잔했습니다. 여자 동기들이 더 하더라고요. 계속 고! 고! 하는데, 11시 좀 넘어서 겨우 빠져나왔네요. 어제 이야기하다 보니 박혜진 사건에 대한 관심이 장난 아니던데요. 야구선수한테 버림받아 자살했다는 등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오더라고요.”

“혹시 친구들한테 사건 내용 흘린 건 아니지?”

“당연히 안 했죠. 형사라고 저한테 대놓고 물어보던데 단 한마디도 발설 안 했습니다.” 

“사건 내용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조심해. 심지어 가족이 물어봐도 함구해야 돼. 예전 지방 근무할 때 선배 형사 한 분이 그랬다가 된통 혼났어. 오지랖 넓은 선배 부인이 술김에 피해자 인적 사항 몇 가지를 덜컥 말해버렸네. 그게 이웃집 부인들을 통해 인터넷에 퍼져서 엄청 곤경에 빠졌어.  감찰 세게 받고 징계받아 한지로 전출되어 버렸지. 결국 그 선배 진급도 못하고 지금도 시골 경찰서 전전하고 있어. 특히 이번 사건은 초미의 관심사라 조심, 또 조심해야 돼. 어제 박혜진 집에 유서나 일기장 그런 것 없었어?”

“샅샅이 찾아봤는데 없었습니다. 본인이 직접 쓴 것은 시 노트 정도였습니다.”

“현장 감식반도 못 찾았다 하니 유서를 안 남긴 거야? 못 남긴 거야? 회사 안에도 없었겠지? 책상이나 서랍장, 사물함 같은 곳 말이야.”

“안 그래도 어제 박혜진 집 가기 전에 사무실부터 들렀었는데 없었습니다.” 

“박혜진이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람 신원 확인됐어. 어제 전화 왔던데 박혜진과 고등학교 동창이래. 프로야구 선수라는데, 이경수라고 알아?”

“이경수요? 피닉스에서 뛰고 있는 그 이경수 말입니까?”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김형사가 금방 알아 차렸다. “지금 피닉스 주전 중의 주전이잖아요. 신인상 이후 주춤하다가 작년부터 타격이 살아나서 홈런도 펑펑 날리고 대단한 선숩니다. 박혜진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통화한 사람이 이경수다? 정말 보통 사건 아닌데요.”

남형사는 다시 마우스를 잡고 경찰 내부망에 들어가 이경수 신상정보를 검색했다. 서울 동일고등학교 졸업, 부모님은 살아있고, 1남 2녀중 막내였다. 미혼이었으며 거주지를 보니 독립해서 따로 사는 것 같았다. 전과기록도 없었고 속도위반 등 가벼운 벌금만 몇 번 있었다. 자기 자리에서 모니터를 열심히 들여다보던 김형사가 벌떡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확 밀쳐지면서 다른 의자와 부딪히는 소리가 컸다.

“박혜진 사망 몇 시간 전, 그러니까 수요일 저녁 잠실야구장에서 피닉스의 경기가 있었습니다. 이경수가 그 경기에 출전을 했는데요. 피닉스가 원정팀이라 3루쪽 덕아웃을 사용했고요.”

“이경수가 잠실야구장에서 시합을 했다고? 박혜진이 이경수를 만나러 야구장에 간 것 아냐?” 

남형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끄러미 김형사를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왜 이경수는 사망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진 듯했지? 처음 듣는 것 같았거든.” 

“사건발생 당일 저녁 때도 경기를 했을 건데 몰랐다? 언론에서 얼마나 떠들었는데요. 혹시 알고도 잡아 떼는 것 아닙니까?”

“아니야 처음 들을 수도 있어. 사망자 신원이 이경수에게 알려지지 않았으면 알 수가 없지.”



월요일, 남형사는 자리에서 부검결과 소견서를 빠르게 읽고는 책상에 툭 던지며 가볍게 인상을 썼다. “한마디로 자살이라는 건데.”

김형사가 소견서를 집어 들어 읽기 시작했다.

“사체 경직도, 체온, 잔류물의 소화정도 등을 봤을 때 사망 시각은 새벽 1시로 추정된다. 직접적인 사인은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 시신의 체중이 목에 걸린 스카프에 실리면서 경부를 압박하여 기도를 폐쇄시켜 질식사로 이어졌고목에 난 삭흔(索痕)과 시반(屍斑)으로 봐서 자살에 의한 질식사의 전형적인 형태다타살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위에서 약물 잔여물은 발견되지 않았고, 혈액 약물검사는 최종 부검결과 때 알려준다고 나와 있네요.

“삭흔이 스카프 자국과 동일하다고 해서 교살이 아니라는 법이 있을까?” 팔짱을 끼며 듣던 남형사가 혼자 말 하듯이 질문을 던졌다.

“외부 힘에 의해서 생기는 흔적의 형태가 아니라는 말인 것 같은데요. 근데, 사체 뱃속에 태아가 발견되었답니다. 박혜진 임신했었네요.” 

“저번 주 산부인과에 갔을 때 말을 들어 알고는 있었어. 의사가 임신했다고 했을 때 타살이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국과수에서는 자살이라고 하니까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지 모르겠네.”

“저도 갈피를 못 잡겠네요. 과연 임신한 여자가 자살할 수 있을까요? 아빠는 또 누군지? 직장 동료나 유족의 말로는 사귀는 남자도 없다고 했잖아요.”

“아무리 친한 들 제 삼자인 거고, 당사자 말고는 알 수 없는 게 남녀 사이라고 하잖아. 지금으로서는 박혜진 주위 남자는 이경수뿐이야. 이경수를 잘 살펴봐야 할 것 같아. 박혜진 핸드폰은 아직 소식 없어?”

“계속 전원이 꺼져 있는데요. 사건 이후 한 번도 전원이 켜지지 않은 것 보면 뭔가 이상합니다.”

“그러니까 말이야. 자살이라고 하는데 핸드폰은 사라져버리고. 뭐가 뭔지 모르겠어. 안개가 걷히는가 했더니 다시 구름이 끼고. 과학수사팀 증거물 분석은 어떻게 됐대?”

“지문감식 결과 나왔는데요. 핸드백에서 유효한 지문은 모두 박혜진 것이었습니다. 스카프나 정장에서도 특이 사항 없었고요.”

“옷이나 스카프에서 머리카락이나 섬유조직 같은 미세 증거물 나온 거는 없었고?”

“상의에서 모발 다섯 가닥이 검출되었습니다. 미세 섬유조직은 검출되지 않았고요. DNA 분석결과 모발 세 가닥은 박혜진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어깨 쪽에서 발견된 나머지 두 가닥은 박혜진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사람 머리카락으로 자연적으로 빠진 게 아니라 외부 힘에 의해 빠진 거랍니다. 모근 부위가 부정형으로 되어 있어 강제 탈락된 것으로 본답니다. 염색도 했고요.” 

“타인의 머리카락이 강제로 빠져서 옷에 붙어 있었다?”



신사동 가로수길. 이름 그대로 길 양쪽으로 가로수가 펼쳐져 있었다. 은행나무였다. 길이 좁았지만 나무 뒤로 깔끔하고 독특한 건물들 때문에 답답하지는 않았다. 가로수 길 안쪽 끝, 전면 유리로 된 건물 이층에 있는 카페 ‘에이블’로 올라갔다. 입구 쪽에는 나무로 된 장식장에 각종 과일들이 예쁘게 놓여 있었다. 조용한 카페였다. 평일이라 한산해서 이경수를 찾기 쉬웠다. 창가 쪽 테이블에 덩치 큰 남자 한 명이 모자를 쓴 채 앉아있었다. 

“저기 있네요.” 김형사는 얼굴을 알아보는지 빠른 걸음으로 성큼 걸어갔다. 이경수가 엉거주춤 일어나 흰색 모자를 살짝 들었다 놓았다. 모자 가운데 자수로 불사조 형상이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피닉스 팀 로고였다. 남형사가 사건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했다. 이경수의 표정은 침울했고 미동도 없었다. 

“기사 보니 요즘 성적이 좋던데요. 얼굴도 잘생겨서 여성 팬이 많겠습니다.” 

“뭐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경수는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 머그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박혜진씨 하고는 어떻게 아는 사이였습니까?”



서울 동일고등학교 운동장엔 야구부 선수들이 한창 훈련 중이었다. 봉황대기 전국고교 야구대회가 얼마 안 남았기 때문에 감독의 성화가 대단했다. 러닝으로 시작된 훈련이 수비연습, 타격연습으로 이어졌다. 학생들 수업이 끝날 때쯤에는 거의 파김치가 되었다. 운동장 그물 망 옆으로 저녁을 먹으러 교내식당으로 향하는 학생들의 긴 줄이 이어졌다. 행렬을 지켜보는 선수들의 허기진 배는 등에 쩍 달라붙을 정도였다. 조금만 참으면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힘이 더 나는 날도 있긴 했다.

이경수는 배팅 훈련을 막 끝내고 그물망 끝에서 글러브를 끼고 서 있었다. 다른 선수가 타격한 공이 학생들한테 가서 다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뒤로는 잡담을 나누며 식당으로 가는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멍하니 있는데 갑자기 공 하나가 강하게 땅을 치며 날아왔다. 급히 글러브를 갖다 댔으나 공은 옆을 통과해서 그물망 쪽으로 날아갔다. 공교롭게도 땅바닥과 접한 그물망의 약한 면을 뚫고 나가 학생들 쪽으로 향했다. 

“아!” 하는 짧은 비명소리가 들렸다. 여학생이 비스듬히 쓰러져 발목을 잡고 있었는데 혼자인 듯 주위에 일행도 없었다. 경수는 글러브를 벗어 던져 놓고 급히 달려갔다. 여학생은 세게 맞았는지 일어서질 못하고 있었다. 뒤에서 선수들이 뛰어오고 학생들도 몰려들기 시작했다.

“부축해드릴 테니 한번 일어나 보실래요.” 경수가 손을 잡아 일어서는 것을 도왔다.

“아! 도저히.” 일어서다가 고통스러운지 다시 주춤했다. 경수는 당황해서 여학생 오른쪽 어깨를 잡고 중심을 잡았다.

“이런. 어떡해요. 죄송합니다.” 타구를 날린 선수가 뛰어와서 왼팔을 잡아 부축했다. 이제서야 여학생은 천천히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이렇게 이경수와 박혜진의 만남이 시작되었고 둘은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학업과 운동이라는 각자의 본분은 달랐지만 둘은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었다. 경수는 운동 문외한인 혜진에게 야구에 대해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혜진은 시집을 선물하며 경수가 부족했던 인문학적인 시야를 넓혀줬다. 이성 간 만남이 처음이라 서툴렀지만 서서히 서로에게 물들어져 갔다. 아직은 좋은 이성 친구지만 곧 사랑이 다가올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한달 뒤 더운 여름날. 봉황대기 전국 고교야구대회가 열렸다. 동일고등학교가 준결승전에 진출했고 혜진은 친구 미혜와 수원 야구장에 갔다. 프로야구 인기에 밀려서인지 주말인 데도 수원 야구장은 그리 붐비지 않았다. 6대5로 지고 있던 동일고의 8회말 공격에서 이경수가 역전 3점 홈런을 쳤다. 혜진과 미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껴안으며 기뻐 어쩔 줄 몰랐다. 하지만 동일고는 9회 마무리 투수 난조로 10대8로 패하고 말았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둘은 건대입구역 쪽으로 가는 전철을 탔다. 건국대학교 앞 먹자골목 중간에 자리잡은 닭갈비집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에 경수와 친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반가워. 이 친구는 야구부에서 나랑 제일 친한 친구야 인사해.”

“나 홍기복이야. 다친 다리는 다 나았어? 내가 주범인데, 기억나?”

“당연 기억해. 그땐 내가 딴 생각하느라 공을 못 피한 거지.”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로 분위기가 자연스러워 지면서 닭갈비도 익기 시작했다. 경수와 친구는 운동선수라 그런지 식사량이 대단했다. 각종 사리며 추가로 주문한 양이 처음 시킨 것보다 몇 배는 더 되는 것 같았다.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겨 신나게 놀다가 10시쯤 나왔다. 경수와 혜진은 집이 근처라 같이 가기로 하고 기복, 미혜와 헤어졌다. 

경수는 혜진에게 건국대학교 안에 들어가서 산책하자고 했다. 정문을 지나 ‘일감호’라는 호수 주위 도로를 걷다 끝 자락 벤치에 앉았다. 경수가 혜진의 손을 살짝 잡았다. 말없이 혜진을 옆으로 바라 보았고 시선을 느낀 혜진은 호수만 쳐다 보았다.

갑자기 경수가 얼굴을 들이 밀고는 혜진의 목을 당기며 입술을 붙였다. 혜진은 눈을 감았고, 찰랑이는 물결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부드럽고 거친 숨결이 일감호를 맴돌다가 멀리 깜깜한 밤하늘로 사라졌다. 

경수와 혜진은 풋풋한 사랑을 이어갔다. 친한 친구인 기복, 미혜한테도 숨기며 은밀한 사랑이 주는 달콤한 유희를 즐겼다. 사실을 모르는 기복은 혜진에게 문자를 통해 친근함을 표시하다 사랑고백 메일까지 보내왔다. 혜진은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고, 이후 기복과는 서먹한 관계가 되었다. 

해가 바뀌어 고3이 되면서 경수와 혜진은 분주해졌다. 경수는 프로야구팀 입단을 위해 엄청난 훈련을 소화해냈다. 전국규모 야구대회에서 선발로 출전,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결국 9월에 열린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피닉스의 지명을 받았다. 혜진도 국어국문과로 유명한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에 온 힘을 쏟았다. 대학교 주최 백일장에서 수상을 여러 번 했고 학교 성적도 가파르게 올랐다. 다음 해 원하던 사립 명문 대학 국문과에 합격을 했다. 정신없이 고3 생활이 마무리되면서 경수와 혜진의 거리는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프로야구팀 입단 후 경수는 신인선수로 눈코 뜰 새 없이 훈련에 매달렸다. 혜진도 문학 동아리에 들어가 열심히 습작활동을 하느라 경수와 연락도 뜸해졌다. 기복은 프로야구팀에 지명을 못 받고 대학교 야구 특기생으로 입학했다. 같은 대학생 신분으로 혜진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다시 친한 친구로 돌아섰다. 

뜨문뜨문 연락하던 혜진과 경수는 1학년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엔 연락이 아예 끊어졌다. 서로 전혀 다른 집단에 속해 있어 지향점도 달랐고 생활패턴도 달랐다. 둘은 그렇게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때 시작되었던 설 익은 사랑이 성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끝이 났다.



이경수는 창 밖을 쳐다보며 짧은 한숨을 쉬고는 차분하게 말을 시작했다.

“혜진이는 같은 고등학교 친구였습니다. 친하게 지냈던 친구 중의 한 명이었고요. 졸업 후 각자 생활에 바쁘다 보니 연락이 끊어지게 됐죠. 그러다 1년전에 우연히 만나게 되어 가끔 연락하고 지냈습니다. 따로 만난 적은 거의 없었어요.”

“사건 당일 오후 5시에 박혜진씨와 통화를 했더라고요. 그리곤 밤 11시경 다시 세번이나 전화를 했던데요. 통화연결은 안됐지만.” 

“오후 5시 전화는 훈련 마치고 쉬고 있을 때 온 건데 그냥 안부 전화였습니다. 전화를 못 받은 거는 그 날 경기가 늦게 끝나서 그랬던 거고요. 그리고,”

이경수의 말을 끊으며 남형사가 들어왔다. “안부전화라면 어떤?”

“말 그대로 친구사이 안부전화 아니었겠습니까? 잘 지내냐 한번 보자 그랬던 것 같습니다. 곧 경기가 시작되는 지라 길게 통화는 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밤 11시경 전화는 왜 못 받았습니까?”

“그날 아마 10시 30분 전후로 경기가 끝났을 겁니다. 경기 끝나자마자 동료들과 야구장 근처 식당으로 가는 바람에 전화를 못 받았나 봅니다.”

남형사는 팀 동료 선수 연락처를 받아 적고 질문을 계속했다.

“그날 잠실야구장 CCTV에 박혜진으로 보이는 여자가 나와요. 11시쯤 3루 덕아웃 방면 복도로 들어 가던데요.” 

“혜진이가 그날 야구장에 왔다고요?” 순간 이경수 눈동자가 흔들렸고, 남형사는 놓치지 않았다.  

“3루 덕아웃에 있던 누군가를 만나러 갔을 것 같은데요. 그날 피닉스가 3루 덕아웃에 자리잡고 있었죠?”

이경수는 머그잔을 들었다가 빈 잔을 확인하고는 바로 내렸다.

”제가 그날 혜진이를 만났다고 의심하는 것 같은데, 혜진이 얼굴 보지도 못했습니다. 1년전에 만나 한두 번 정도 봤을 뿐인데, 그 시각에 어떻게 만납니까?” 

“최근에는 안 만났다는 거네요? 확실합니까?”

“네 맞습니다. 안 만났어요. 아까 혜진이가 3루 덕아웃 쪽으로 가는 장면이 찍혔다고 했죠? 3루 덕아웃으로 가는 길에 상대팀 라커로 빠지는 길도 있습니다. 저희 팀 덕아웃으로 왔다는 것도 확실치 않은 것 아닙니까?”

“김형사 맞아? 중간에 상대팀 라커로 빠지는 길도 있어?” 수첩에 적고 있던 김형사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고개를 들었다.

“거긴 미로 같이 복도가 이어져 있더라고요. 상대팀 쪽으로 가는 길도 있었고, 식당 가는 길도 있었습니다. 근데 아무 관련 없는 상대팀 라커에 갈 일이 있었을까요?”

“관련 있고 없고는 저도 모르죠. 그 친구의 마음 속을 제가 어떻게 압니까?” 이경수가 인상을 썼다. 

“그 시간에 박혜진씨가 이경수씨한테 전화를 3통씩이나 했습니다. 그것도 야구장안에서요. 박혜진씨 야구장 방문이 본인과 상관이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남형사가 이경수를 뚫어지게 보면서 소리를 높였다. 

“저랑 통화도 안 됐는데 제가 그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고등학교 때 잠시 친했던 친구라고 했잖아요. 우연히 같은 장소에서 목격됐다고 억지로 엮으시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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