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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노 쌤 Jul 21. 2022

공부도 균형이 필요하다.

 - 니콜라 푸생 <시간이라는 음악의 춤>

우리나라 고등학생은 극한 직업이다. 특히 수험생은 극한의 삶을 살아야 한다. 성인의 주당 최대 근무시간은 52시간이다. 이 정도 시간을 공부하면 학생은 좋은 대학 원하는 과에 들어갈 수 없다. 초등학생조차도 방과 후 학원에 가야 한다. 시험 기간에는 식사 시간도 아껴야 한다. 학원을 실어 나르는 학부모는 간편식을 미리 준비해 아이가 학원 이동 중 차에서 끼니를 해결하도록 한다. 과거에는 3당 4락은 더 이상 아닐지라도 자기 삶을 모조리 공부에 투자하도록 강요한다. 워라벨이라는 개념은 학생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다. 


푸생의 <시간이라는 음악의 춤>은 매우 안정적인 구도다. 원과 삼각형을 마술처럼 사용한 미술 교본이다. 네 명의 여인은 서로 두 손을 잡고 원 구도를 그리며 춤을 추고 있다. 하늘의 아폴로와 아래 양끝의 아기로 이어지는 삼각형 구도를 사용해 역동적인 장면에서 안정성을 느끼게 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자기만의 의미를 가진다. 시간의 신 사투르누스 연주에 맞춰 춤을 추는 여인은 쾌락, 부, 가난, 근면을 상징한다. 우리 인생은 여인들의 춤처럼 삶의 많은 요소가 함께 어우러진다. 

생명체는 항상성 조절로 생명을 유지한다. 항상성 조절은 몸을 일정 범위에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다. 몸은 체온, 혈당, 삼투압 등 많은 요소를 조절한다. 뜨거운 여름 야외에서 적절한 수분 공급과 체온 조절에 실패하면 일사병으로 쓰러진다. 항상성 조절의 실패는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기에 우리 몸은 조절 범위를 벗어나기 전에 강한 경고를 보낸다. 식욕이나 갈증과 같은 욕구가 바로 그것이다. 갈증을 느낄 때 물을 마시면 갈증이 해소된다. 욕구 해소는 심적 편안함과 안도감 등으로 보상한다. 뜨거운 여름 타는 갈증에 시원한 얼음물을 마신다고 생각해 보면 잘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은 자기 욕구를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 개인이 해결하지 못하는 욕구가 사회에 표출되면 욕망이 된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시청하는 먹방도 개인의 비뚤어진 욕구 충족 방법이다. 이런 극단적 행위는 개인의 욕구 해소가 주는 심적 보상을 보장하지 않는다. 먹방은 일종의 사회 체계에 대한 감정 표출이다. 극단적 자극은 더 강한 극단적 자극을 요구한다. 평형에서 멀어질수록 일탈의 세기는 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상위권 학생이 자기 성취를 위해 더 많이 노력하면 할수록 하위권 학생은 더 무기력해지고 학업을 포기하게 된다. 이 극단의 교육은 모두를 욕망이라는 괴물의 먹이로 만들 뿐이다.


우리 교육은 골프 퍼팅을 하며 공이 어디까지 굴러가는지 보지 않는 것 같다. 삶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은 스스로 획득되는 본능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배워야 한다. 학교에서 감정에 귀 기울이고 반성하며 감정을 조율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작품 <시간이라는 음악의 춤>처럼 학생이 안정된 구도에서 역동적인 춤을 출 수 있게 만들어주어야 한다. 


모두 자기 행복을 위해 공부한다. 지금처럼 무한 경쟁만 강조하는 교육의 끝은 불행이다. 경쟁은 감정을 공유할 친구도 시간도 허락하지 않는다. 학생에게는 스터디라벨이 필요하다.  


<시간이라는 음악의 춤(The dance to the music of time)>

예술가: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

국적: 프랑스

제작 시기: 1640년경

크기: 82.5×104㎝

재료: 캔버스에 유화

소장처: 윌리스 컬렉션(Wallace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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