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엔 녹보수라는 식물이 살고 있다. 5년째 같이 지낸 오랜 친구다. 책상에서 잘 보이는 곳에 앉아 있으니 매일 눈을 마주치며 위안을 주는 벗인 셈이다.
어느 날 친구의 두꺼운 줄기가 화분보다 더 내려가 바닥에 닿았는데, 그 많은 잎을 업고 있으니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잎이 덜 자란 줄기는 하늘을 보며 세상 무서울 것 없이 당당한데 오래 산 줄기는 오히려 겸손이 땅을 향했다. 나무는 가지를 갖고 줄기는 잎을 낳았다. 그렇게 뻗어나간 새로운 갈래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 더 많은 잎은 더 깊은 책임을 의미하듯 고개가 땅을 향한다.
나무의 속성은 뿌리에도 있다. 뿌리 또한 갈래다. 수많은 갈래는 땅과 부지런히 악수해 가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한다. 내 친구가 오늘도 내일도 저 자리에 앉아 있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손 덕이다. 그렇게 단단한 뿌리가 새 생명을 지탱한다.
때로는 외롭게 그 자리에 꼿꼿하게 서서 누구에게나 쉴 곳을 만들며, 잠시 쉬었다 떠나는 이들을 붙잡지 않았다. 그저 다시 돌아와도 다시 반기며 쉴 자리를 내어줄 뿐.
오랜 벗은 늘 있던 자리에 여유롭게 앉아 눈빛 만으로도 어리석은 친구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