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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지 말고 전시하라

by 김재현

우리는 늘 불안을 안고 산다. 인간은 미래를 인식하는 힘을 갖고 태어난 유일한 종인데, 이것이 스스로를 불안하게 한다. 우리는 손해를 무서워한다. 특히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나 아깝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우리는 흘러가는 시간을 그토록 두려워한다.


흘러가는 시간을 어떻게 부여잡을 수 있을까? 어딘 가에 새겨 넣으면 된다. 돌에 새길 수도 있고 종이에 적을 수도 있다. 우리 뇌에 기억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에 많은 사람들은 흘러가는 시간을 대부분 휴대폰에 넣는다.


제야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던 종각, 많은 사람들이 그 기념할만한 순간을 휴대폰에 넣기 위해 손을 뻗어 하늘을 향해 내놓았다. 다음에 다시 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흘러가는 시간을 부여잡아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책을 읽으며, 열심히 적는 행동도 이런 불안을 해소하는데 좋다. 실제로 정리한 내용을 다시 들춰볼까? 해보니까 그렇지 않더라. 그냥, 그 순간을 기록하며 불안을 해소하고 순간을 더 만끽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다면 기록을 더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기록을 전시하면 된다. 그냥 흘러가는 순간이 아쉬워 습관처럼 제야의 종이 울리던 밤을 촬영했다면 아마도 그 영상을 다시 찾지 않으리라. 하지만 성인이 된 2010년부터 제야의 종소리를 촬영해 왔고 그것을 폴더에 전시해 뒀다면 어떨까? 사진 무덤에 파묻혀있을 순간이 다시 태어난다.


우리는 불안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래서 기록한다. 어쩔 수 없이 기록해야 하는 운명이라면 그것을 그럴싸하게 전시해 두는 게 어떨까? 현대인에게 휴대폰은 저주이자 축복이다. 저주 때문에 우리는 기록에 집착한다. 다행히도 우리는 축복도 받았다. 기록을 전시해 둘 무한한 공간을 선물 받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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