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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변신>이 내미는 거울

by 두류산

그는

가족의 버팀목인

아들이었고

오빠였으며,

생계를 떠받치던

집안의 기둥이었다

고달픈 직업은 매일 피를 말렸고

현실은 암막처럼 빛을 가려

결국

딱정벌레로 변신했다

더 이상 말할 수 없고

돈도 벌지 못하는

거대한 벌레가 되었다


그의 변신에

가족은 절망의 그늘 아래 웅크렸다

절망은 슬픔이 되었고

흉측한 몰골을 참아내며

연민으로 돌보았으나

연민은 인내로

마침내는

날 선 짜증으로, 혐오로,

결국엔 외면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저것에서 벗어나야 해요”

그 한마디가

날카로운 가위 날이 되어

가족이라는 이름을

찢어버렸다


그는

가족을 부양하는 자에서

부양받는 짐이 되었고

뜯긴 벽지처럼 밀려나

가족들의 냉대와 증오 속에서

고독하게 굶어 죽었다

사랑은

기여의 대가인가?

유용함의 보답인가?

그가 피폐해질 때까지

기댔던 가족은

그가 부서졌을 땐

등을 돌렸다

그의 죽음 앞에선

감사 기도를 올렸고

가위눌림에서 깨어난 듯

교외로 소풍을 떠났다

벌레가 된 그에게

“괜찮아, 넌 그대로 소중해”

그 한마디를 건넸다면

그는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지 않았을까?


카프카는

그레고르의 딱딱한 등껍질 너머로

질문을 던진다

어쩌면 우리는

자녀에게, 배우자에게, 부모에게

조건부 사랑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존재보다 성취를

이해보다 책임을

요구하고 있는 건 아닐까?

가족이 무능하고 짐스럽고

벌레처럼 변해도

사랑으로 안아줄 수 있을까?

자녀가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은둔의 외피를 두르고 있어도

두꺼운 등껍질을 토닥일 수 있을까?

치매든 엄마가

욕만 내뱉는 괴물로 변해도

신장 투석에 지친 아버지가

벌레 같이 기어 다녀도

사랑으로 안아줄 수 있을까?


카프카는

우리 얼굴에 거울을 들이민다

가족이 벌레로 변해도

여전히 사랑할 수 있나요?

그 존재를

있는 그대로

품을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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