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돈황에서 혜초 스님을 그리다

by 두류산

바람이 사막을 건너

뜨거운 모래가 노래하는 곳

낙타의 발굽 아래 길이 생기고

사람의 걸음마다 문명이 숨을 쉰다

동서양을 잇는 비단길 길목

한 점 오아시스, 돈황(敦煌)

명사산(鳴沙山)엔 모래가 울고

월아천(月牙泉)엔 초승달이 머문다

사막의 열기를 품은 낙타의 등

모래가 우는 능선을 넘고

초승달 닮은 샘을 돌아

마침내 사막 위의 사원

막고굴(莫高窟)에 닿는다


칠백 굴 안에 숨겨진

벽에 스민 붓끝은 천 년의 손길

그 안에 신라의 젊은 구도자

혜초 스님의 자취

장안을 지나 인도를 거쳐

페르시아 먼 끝까지

두 발로 써 내려간 수만 리 여정

왕오천축국전이

막고굴 벽에서 세월을 기다렸다


남천축국 달 밝은 밤

스님은 계림을 떠올렸다

붓은 고향에 전할 소식을 쓰지만

천축은 땅끝 서쪽에 있고

신라는 하늘가 동쪽에 있으니

기러기조차 닿지 않는 이국의 밤

그리움은 편지 대신

달빛에 흐르는 구름에 실어 보내는

한 줄 시로 변하여

가슴을 울린다


오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리움은 사막의 모래 속에 다시 피어나

달빛처럼 고요히 우리에게 전해진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카프카의 <변신>이 내미는 거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