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후, 아들 내외와 사랑스러운 손주들이 모처럼 집을 채웠다. 현관에서부터 북적이는 온기가 집 안 가득 번졌다. 그런데 언제나처럼 환하게 웃어야 할 며느리의 얼굴빛이 어딘가 창백해 보였다. 마음이 쓰였다. 아들이 곁에 앉아 덤덤한 듯 아닌 듯, 걱정을 담아 털어놓았다.
"신장에 돌이 있어 밤새 고생했어요. 물을 많이 마셔 빼내긴 했는데... 아이 낳는 것만큼 아팠대요."
그 말에 아내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얼마나 힘들었니. 나도 신장결석 때문에 입원까지 했는데..."
아들은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인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엄마가 입원을? 언제요? "
”너의 대학 시절이었잖아.”
아들의 반응은 그의 삶에 어머니의 입원이 기억에 남아있지 않을 만큼 평화로운 대학 시절을 보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아내는 아들을 보며 맑게 웃었다.
“신장결석 검사하다가 우연히 양성 종양까지 발견해서, 같이 수술했잖아. 간병인 대신에 너희 삼부자가 번갈아 가며 밤새 곁을 지켜줬는데... 기억 안 나?"
아들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지만,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기억이 안 나는데..."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 이 단순하고 무심한 아들을 어찌해야 할까.
"허허. 우리 아들은 힘들고 어려웠던 기억이 없으니, 몸속에 돌이 들어앉을 일은 없겠구나."
아들의 망각은, 우리 가족이 그만큼 그 시간을 잘 이겨냈다는 뜻이리라.
십수 년 전 아내가 일주일 정도 입원을 앞두었을 때, 우리 집 남자 셋은 완전히 패닉 상태였다. 늘 곁에 있는 그녀가 결코 ‘당연한’ 존재가 아님을, 그녀의 부재가 가져올 빈자리를 절감했다. 입원 전, 아내는 오히려 더 바빴다. 빨래해서 속옷과 양말, 셔츠 등을 옷장에 가득 넣어두었다. 우리 집 세 남자가 제대로 못 먹을세라 반찬과 간식으로 냉장고를 채웠다. 우리가 밥을 못 지어먹을까 봐 토스터 기기와 식빵, 과일잼과 튜브 치즈까지 준비해 놓았다.
우리 삼부자는 마음을 모아 엄마와 아내의 입원 대책 회의를 했다. 나는 차로 함께 가서 입원 수속과 퇴원 시 집으로 데려오기로 했고, 수술 당일은 연차를 내어 온종일 곁을 지키기로 했다. 두 아들은 하교 후 매일 병원을 찾아 엄마 곁을 지키기로 했다. 수술하기 하루 전인 입원 첫날은 외할머니가 곁을 지킬 예정이었다. 수술 직후 이틀은 전문 간병인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 뒤로는 아빠와 두 아들이 간병인 대신 하루씩 엄마 곁을 지키기로 했다. 병실에서 자며 엄마를 응원하고 말벗이 되어주며 위로하기로 했다.
매일 저녁, 온 가족이 병실에 모였다. 평소 엄마의 질문에 ‘네’, ‘아니에요’로 짧게 답하던 아들들이, 엄마가 아프니 대학 생활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다정한 말벗이 되었다. 아내가 배를 잡고 끅끅 웃는 걸 보고 내가 “엄마 배 아프니 그만해!” 했지만, 즐거워하던 아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병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자면서 아내는 행복해 보였다. 아이들은 엄마가 아파서 몸을 뒤척이면, 자리에서 일어나 “엄마 괜찮아?”하며, 걱정해 주었다. 병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낸 아내는 하루하루 얼굴이 환해졌다.
아내는 많은 걱정을 안고 병원에 들어섰지만, 한층 행복해진 모습으로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우리 집 남자들은 다시 이전에 무심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아이들 대답은 또다시 단답형이 되었지만, 우리는 깨달았다. 그녀의 부재가 집을 얼마나 텅 비게 하는지, 그리고 그녀가 있다는 것만으로 이 집이 얼마나 따뜻하고 큰 축복인지...
문득 아들이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 엄마 수술하고 입원했던 거 기억나?"
전화기 너머로 작은 아이의 확고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당연히 기억나지. 우리 대학 다닐 때 일이잖아. 형이랑 아빠랑 나랑 셋이서 간이침대에서 쪽잠 자고."
동생의 명확한 기억에 아들은 멋쩍은 듯 전화를 끊으며 중얼거렸다.
"아, 이제 나도... 희미하게 기억나는 것 같다."
나는 아들의 '망각'이 마음의 평화 속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있다. 엄마의 고통이 그의 일상에 큰 파장을 일으키지 않았을 만큼, 우리는 서로를 감싸는 든든한 울타리였다. 그 해맑은 무심함과, 결국은 확인한 사랑의 기억에 온 가족이 소리 내어 웃었다. 며느리의 창백한 얼굴로 시작된 따뜻하고 엉뚱한 대화 속에서, 가족 간의 끈끈한 연대와 사랑의 깊이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소중한 주말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