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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철나무꾼 Jul 28. 2024

나는 언제부터 혼자가 편했나

나도 모르는 나를 만난 날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은 나를 혼자두지 않았다. 내가 혼자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 있지 못했다.

보살핌이 필요한 갓난쟁이 아기 때는 차치하고라도, 유치원에 들어가고 학교 생활을 시작하고 사회인이 되어서도 사람들은 꼭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내가 대단한 인기가 있어서도, 사람의 이목을 끄는 고유한 매력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그냥 사람 사는 사회가 그런 거였다. 그들은 무리에 쉽게 끼어들지 못하는 사람이 소외감을 느끼는 것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일 뿐이었다.


 유치원 입학은 그런 의미에서 내게 사회생활의 시작과도 같았다. 부모님이 몇 달 며칠을 고민해서 원아 모집에 지원하고, 너무나도 간절하게 입학하기를 바라고 염원하던(추첨날 이야기는 귀에 피가 날 것 같을 정도로 들었다.) 그 대형 유치원에 들어가게 됐을 때, 나는 이미 사회에 내던져진 것이다.


 유치원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유치원 로비에서 오열했던 때다. 엄마도 무척이나 당황했을 것이다. 엄마아빠와 나를 조금씩 분리해야 할 시점이었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며 성격도, 사회성도 발달했으면 하고 바라서 유치원에 보낸 것일 텐데, 시작부터 험난했으니 말이다.

지금도 회사 앞 직장어린이집에서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 울고 보채는 아이들을 보며 그때를 떠올린다.


 하지만 울며 생떼 부린 기억이 무색하게 나는 금세 유치원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적응할 수 있었다. 지금도 스스로의 사교성으로 친구를 사귀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는 내게, 금방 친구를 만드는 친화력은 아쉽게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한 살 많은 언니들이 급식 먹으러 갈 때나, 유치원 버스에 타고 집에 갈 때 내게 찰싹 달라붙었다. 언니들은 내가 혼자인 게 안쓰러워 보였던 걸까? 그 언니들은 서로서 내가 정은이(개명 전 이름) 옆에 앉을 거라며 다투었고, 정말 친언니처럼 살뜰히 나를 보살펴주고 챙겨줬다. 지금 생각해도 유치원 적응의 80퍼센트는 이 언니들의 도움이 컸던 것 같다. 나는 그런 관심에 고마우면서도 은근한 귀찮음을 느꼈다. 생각해 보니 난 이때부터 혼자가 편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학창 시절에도 스스로 친구를 사귀는 데에 서툴렀다. 제일 이해가지 않았던 게 화장실을 꼭 친구와 함께 가는 것인데, 당시 친구가 화장실을 함께 가주지 않아서 서운해했던 게 생각이 난다. 나는 정말 왜 같이 가야 하는지,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잠이나 더 보충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친구는 자신을 귀찮아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소수의 친구들과 깊은 관계를 유지하는 걸 더 원했고, 나와 잘 맞지 않는 친구를 감당하고 견뎌낼 인내력은 부족했다. 그래서 지금도 곁에는 성격이 비슷한 친구들이 소수로 남아있다.

 그렇다고 내가 무심하고 만사 귀찮아하는 사람은 결코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다. 나는 그저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 혼자가 편하다. 내게 집중되는 이목도,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한 반응도 쑥스럽고 부끄러울 때가 많다. 자력으로 친구를 사귀지 못했던 이유도 이와 같다. 그럼에도 먼저 다가와 준 사람들, 적응하도록 이끌어준 사람들 덕분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내고 있다.


 내 감정, 내 욕구를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고,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하는 성격은  ’ 너랑 말하기 전까지 네가 나를 싫어하는 줄 알았다.‘는 오해를 정말 많이 불러일으켰다. 나는 그저 다른 사람과 친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남보다 오래 걸릴 뿐, 기쁜 일에 함께 기뻐하고, 슬픈 일에 함께 슬퍼하고, 힘든 일에 위로할 줄 안다. 그럼에도 혼자가 편한 가장 큰 이유는, 그게 나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편할 거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함께 영화를 보러 갔는데 나는 재밌게 봤지만 상대방은 지루할 수도, 함께 떠난 여행에서 나는 모든 풍경이 새롭고 즐거운데 상대방은 지치고 힘들 수도, 나는 카페에서 책을 읽고 싶은데 상대방은 좀 더 활동적인걸 하고 싶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럼 서로 불편하니 차라리 혼자 하고 싶은 걸 맘껏 하면 좋지 않을까? 이런 순진한 생각에서 출발했던 것 같다.


 좀 더 머리가 굵어지고, 6년이라는 짧은 사회생활을 해나가면서, 함께 하는 일이 좋을 때도 있다는 걸 느낀다. 서로서로 도와가며 행사를 무사히 끝냈을 때, 다 함께 단합대회에서 친목을 쌓았던 일들, 서로서로 잘 알지 못했던 세 명의 동료들과 떠났던 직장 배낭여행까지. 혼자일 때 결코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과 신선한 관점들. 그것들을 공유하는 데서 오는 친밀감. 조금 더 거창하게 이야기한다면 그건 사람으로서의 성장이 아닐까? 때로는 관계 속에서 부딪힐 수밖에 없는 불편함도, 좀 더 친해지기 위해 견뎌야 하는 어색함도 모두 안은 채로 사람은 그렇게 사회 속에서 서로 어울리며 살아가야 마땅함을 느낀다.


 평소에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도 쑥스러움을 타는 성격 탓에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동료가 다른 부서로 가게 된 날. 그래서 한참 울었던 날. 나도 모르는 나를 만난 날이다. 어쩌면 나는 혼자가 편하다는 이유를 방패 삼아 나의 외로움을 꾹꾹 눌러왔던 것은 아닐까? 내가 진정으로 바랐던 것은, 사람의 온기와 따뜻한 관계, 그것에서 출발하는 나의 안정되고 행복한 모습이 아닐까.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있기에 세상은 아직 따뜻하고 매력적인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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