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편한 내가 올해 10월에 결혼을 한다. 내게 결혼은 가수 문문의 ‘결혼’ 노래 가사와 같은 것이었는데.. 결혼에 대한 생각은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사랑을 하고 좋은 집을 갖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더더욱 혼자인 내가 결혼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명절날 친척 어른의 잔소리, 이제는 좋은 사람을 만나야지 하는 어른들의 말에도 결혼은 나와 너무나도 먼 세계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지인 자녀의 결혼식에 축의를 할 때도 ‘그 돈은 어차피 회수하지도 못할 돈’이라고 자조 섞인 말도 우습게 했었다.
연애 공백기가 길어지면서 결혼과 연애라는 화제에서 나는 점점 멀어졌다. 다시 연애를 시작했어도 결혼에 대한 무관심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 만남을 그만두는 과정도 자연스러웠다.
한동안 이전 연애에서 받았던 상처를 극복하려고 미친 듯이 일만 했다. 그러다 새로운 사람을 알고 싶었고, 근황이 궁금했던 사람 생각이 났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서해에서였다. 정말 가기 싫었던 직장 워크숍에서. 혼자 온 나를 살뜰히 챙겨준 룸메이트를 따라 나갔던 술자리에서 다른 부서에 이런 직원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동족의 느낌이 강하게 났다.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굳어있었고, 눈동자가 방황하고 있었으며 조금 쑥스러워하는 듯했다. 그때 이 사람과는 워크숍이 끝나고도 연락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지만 그러기에 우리는 서로 낯을 가렸다.
워크숍에 갔다 오기 무섭게 코로나에 걸렸다. 스트레스에 취약해도 몸만은 튼튼해 코로나에 절대 걸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끝물에 걸렸다. 아주 지독한 코로나였다. 며칠 두통과 인후통을 앓다 직장에 갔는데 사내 메신저로 예상하지 못했던 연락을 받게 되어 놀라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그 후로도 몇 번 메신저 연락이 왔었다. 메신저란 수단이 없었다면 우리가 만날 수 있었을까 싶을 만큼 둘 다 어설펐고, 어색했다. 그런 어색함이 난 싫지 않았다. 부서 이동이 결정된 12월 말, 다시 온 연락이 정말 고마웠다. 누군가가 내 근황을 궁금해한다는 사실이 그때의 공허함과 외로움을 달래주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대하기 조심스러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진 못했다.
한 달이 넘는 시간이 갔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고 먼저 다가간 적도 손에 꼽을 만큼 수동적인 나는, 그 사람의 근황이 궁금했다. 같은 직장이다 보니 잘 지내고 있냐는 사적인 메신저를 보낼까 말까 정말 많이 고민했고, 결국 보냈다. 그 사소한 인연은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 만나면 만날수록 좋은 사람,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다른 사람에게 그런 궁금함이 든 건 오랜만이었다.
만난 지 7개월이 지났다. 만남의 횟수로 자주 다투었던 우리는 결국 결혼이라는 제도로 우리를 묶고 평생 함께할 것을 결심했다. 결혼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앞으로의 인생의 방향을 결정할 만큼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기에 늘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이렇게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앞으로의 인생에서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조바심이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의 뿌리를 흔들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비로소 마음을 연 것이다.
결혼하자는 말을 듣고 나서는 한동안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소라의 ‘청혼’을 출퇴근길에 들으며 한참을 흥얼거렸다. 앞으로 어떤 파장이 일어날지 어떤 가시밭길 같은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