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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철나무꾼 Aug 04. 2024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 세상

갓생을 결심했지만 항상 조져지는 건 나였다.

 그는 빙수집에서 내게 청혼하고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함께 걷는 길에 올려다본 밤하늘에 총총이 박힌 별무리들이 오늘따라 더 아름답게 보였다.

마치 우리가 결혼을 결심한 것을 응원이라도 하는 듯이 제자리에서 빛났다. 잠시 울컥했지만 기쁜 감정이 더 커서인지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세상의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만 보였던 날. 모든 날들이 그날 같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결혼을 결심하고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서로의 부모님께 인사드리는 일이었다. 걱정이 앞섰다. 남자친구의 부모님께 인사드리는 건 긴장은 되어도

걱정되지는 않았는데, 남자친구를 우리 집에 데려올 일이 너무 걱정됐다. 여태껏 남자친구를 부모님께 소개한 적이 없었고, 부모님의 허락을 구해야 하는 일이 오랜만이었다.

예감은 적중했다. 언제 인사를 드리면 좋을지 조심스레 여쭤보았더니, 날이 선선할 때 데리고 오라는 말. 정확한 날짜를 잡고 싶어서 그다음 날 재차 여쭤보았을 때,

뭐가 그리 급해서 만난 지 1년도 안되었는데 결혼을 하냐는 짜증과 화가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나도 고집이 있었고 첫 단계부터 선선한 날을 기약하며 물러설 수는 없었다. 다음 주 토요일은 괜찮으시냐고 했더니 이번엔 부모에게 통보하는 거냐고 더 큰 화가 돌아왔다.

울고 싶었다. 결혼준비를 시작하는 일. 모두가 처음이라 어색한데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앞으로의 불안과 불면이 예상됐다. 아빠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허락을 구해야 하는 입장이기에 결국 주말 어느 날, 남자친구를 데리고 집에 갔다.


 아직도 생각난다. 집으로 불러 남자친구를 소파에 앉히고 권위적인 말투로 이것저것 물어보는 아빠. 그리고 분주하게 식사를 준비하는 엄마. 그 사이에서 어색하게

굳어있을 수밖에 없었던 내 모습도 기억이 난다.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지친 하루였다.


 며칠이 지났다. 부모님은 자꾸만 집을 어떻게 마련할 거냐고 내게 물었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식장도, 식 날짜도 잡지 않았는데 떼인 빚을 독촉하는 채권자처럼

출근 전, 퇴근 후에 매일 같이 물어봤다. 집 문제가 먼저가 아니라 예식장을 잡는 게 먼저인데 집과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계획에 대해 집요하게 물어봤다.

그러다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아 울기도 했다. 울지 않은 날보다 울면서 잠들었던 날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마침 직장도 바쁜 시기였다. 우리 팀은 한창 물이 들어와서 노를 저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사무실에서 자잘한 일들을 하고 수시로 관외출장을 갔다.

직원들의 요청에 응해야 하기도 했고, 내야 하는 자료는 왜 이렇게 많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머릿속에 잡념과 불안이 가득한데 일이 수월하게 될 리가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금방 끝낼 일들을 한참을 붙잡아야만 했다.


 부모님의 성화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아빠와 엄마는 내 나이 때 집을 장만했다. 0부터 시작해서 24평 아파트를 마련했던 이야기를 늘 자랑처럼 했던

부모님은 내가 힘든 게 싫었던 거다. 하지만 알았을까? 그런 걱정이 나를 더 힘들게 하고 미치게 만든다는 사실을.


 여러 자잘한 일들을 맡아서 하다가 바쁜 직원들을 대신해 관외출장도 여러 번 갔다. 그래서 더더욱 사무실에 앉아 일할 시간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업무가 밀리고

내야 할 자료들을 제때 내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들어갈 때 열심히 해보자고 1월 1일부터 출근했던 내가 이제는 직장 안에서 피폐해지고 있었다.

오늘 하루 뭘 했는지도 모른 채 퇴근 후 집에 오면 다시 잔소리가 반복됐다. 직장도, 집도 미치게 힘들었다. 퇴근하고 힘들면 집에서 쉬어야 하는데 내게 이미 집은

안식처가 아니었다. 감옥이고 무덤이었다.


 시작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모든 게 어렵고 막막했다. 세상이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혼자 책을 보고, 드라마를 보고, 음악을 듣고, 걷기도 하고. 혼자 이런저런 활동들을 하며 에너지를 채우곤 했던 과거의 내가 그리웠다.

’ 요즘 사람들이 아들보다 딸을 선호하는 이유가 뭔지 아냐, 집 때문이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처음으로 엄마에게 실망했다. 예쁜 딸들이 직장까지 가져 벌써 자리 잡은 게 부럽다는 친척들의 말, 지인들의 말에 수줍게 웃던 엄마가

속물처럼 보였다. 속이 상해 눈물만 났다. 목이 메어 아팠다.

엄마의 말이 너무 서운해 엄마는 그럼 내게 뭘 해줄 수 있냐고 물어봤을 때, 너무나도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네가 번 돈으로 네가 알아서

혼수며 가구며 장만해야지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냐는 대답이 돌아왔고, 그 말을 들은 나는 더 이야기할 의욕을 상실한 채 좀비처럼 출근하고 퇴근했다.


 불면은 더욱 심해졌다. 매일 자는 시간이 2~3시간 남짓이었고, 매일 먹어야만 하는 약을 먹는 것도 잊었다. 왔던 길을 잊어버려 뱅글뱅글 돌면서 헤맸다.

이때 병식이 있었더라면. 스스로 병원에 들어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이게 양극성 장애의 재발이라는 걸 알지 못한 채 짜증 내고, 패악을 부리고, 아이처럼 울고 그렇게 나는 미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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