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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철나무꾼 Aug 23. 2024

살아 있기를 잘했다

그렇다고 죽고 싶었다는 건 아닙니다

 오랜만에 본가에 갔다. 독립 후 부모님을 뵈러 혼자 본가에 간 건 오랜만이었다. 본가에서 필요한 짐을 챙기다 일기장 생각이 났다. 공무원으로 발령받기 전, 몇 달간의 여유가 있었는데 그때 무료함을 이기지 못하고 하루하루 열심히 썼던 일기장이다. 지금은 매일매일 쓰라고 해도 못쓰겠는데.. 지금보다 더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던 그 때 하루하루 차곡차곡 일기를 적은 게 참 신기했다. 결국 고민하다 일기장도 함께 챙겨 집으로 왔다.

 

 조그맣고 그리 두껍지 않은 일기장에는 6년전의 내가 그대로 있었다. 앞으로의 발령을 기대하는 나, 어딘가에 소속되어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됨에 감사하는 나, 아이돌 브로마이드 수집에 열을 올리는 나, 무료한 일상을 기다리지 못하고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나까지. 모두 내 모습이었지만 한편으론 낯설었다. 생각과 말투가 어렸고, 행복감을 느끼는 역치도 낮아서 작은 것에 만족하는 모습이 우울감과 염증을 느끼는 지금의 내 모습과는 사뭇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는 삶의 방향이 불확실할 때,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생의 의미를 찾지 못할 때 많은 우울감과 불안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럴때마다 억지로 마음을 다잡곤 했었다. 지금은 힘들지만 언젠가는 살아있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올 거란 말을 속으로 삼키면서. 뻔한 말이었지만 다짐했던 말들이 그랬고 그 말은 무료한 날들 앞에서 나를 지탱해주는 버팀목이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 자존심과 자존감이 나락을 향해 치달았다. 한 해 한 해 합격이라는 결과물을 내놓지 못할 때마다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을 정도였다. 이 시험이 뭐길래 나를 이렇게 작게 만드는 건지 세상 모든게 싫게만 보였다. 그렇게 오래 공부를 하다 마침내 합격했을 때가 일기의 시작점이었다. 그 이전에 있었던 일들은 기록조차 하기 싫을만큼 내게는 상심뿐인 날들이었던 것이다.


 합격했던 날은 혼자가 아니어서 더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당시 파****에서 아르바이트 근무를 하는 중이었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져 교대를 해야하는데, 모두가 집에가지 못하고 나의 합격여부를 궁금해했다. 그래서 문자는 언제 온대? 부터 시작해서 합격했는지 못했는지 확인하고 가라는 말들. 6시가 되기 몇분 전, 거짓말처럼 온 문자에 모두가 기뻐하며 지난 시간에 대해 위로하고 앞으로의 날들에 대한 축복의 말을 해주었다. 수험생활과 취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했던 내게는 그날이 성인이 되고 살아있기를 잘했다고 느낀 최초의 날이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났다. 학생일 때의 시간은 더디게만 갔는데 취직을 하고 어설프게라도 사회생활을 해내가다보니 벌써 6년이다. 합격했던 그때의 행복과 안도감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 그때 느꼈던 감동만큼 살아있기를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이 사실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세상에 내가 쓸모있음을 증명했던 날. 불합격했다고 나의 존재를 부정할 일은 아니지만 비로소 마음 편히 한숨을 내쉴 수 있었던 날이었다.


 나에게 살아 있기를 잘했다는 말은 '예전엔 죽고 싶었다'를 함의하는 말이 아니다. 그저 주어진 하루에 내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가다 보면 좋은 일도 찾아오고, 살아있어서 이 행복과 기쁨을 느낄 수 있음에 안도하고 감사하게 될 것을 믿을 뿐이다. 그렇게 벅찬 생의 감각은 사는 동안 몇 번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다시 마주치지 못할지도.. 그렇기에 어떤 순간적인 쾌락보다 진하게 남아 상심한 나를 다시 일으킨다. 


 누구에게나 굳게 믿고 있는 신념은 있다. 나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옛 말을 믿는다. 보이지 않는 괴로움이 나를 눈물짓게 하더라도 지나간 모든 슬픔들이 따뜻하고 벅찬 생의 기쁨이 되어 다시 돌아올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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