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콜 포비아(call phobia)라니..
각종 SNS와 메신저 프로그램이 생겨나고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세상이다.
메신저의 발달은 콜 포비아(call phobia, 통화 공포증이 있는 사람)의 증가에 크게 기여한 게 분명하다.
전화보다는 메시지가 더 편한 요즘이니 말이다.
나 역시도 전화 통화보다 문자메시지를 선호하는 사람이다.
내가 언제부터 전화보다 문자를 선호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생각해 보았는데, 그건 스마트폰 사용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아니었다.
휴대폰이 생긴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에 친구들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게 재미있기도 했지만 문자가 주는 재미보다 전화 통화가 싫은 정도가 더 컸던 것 같다.
전화 통화는 문자메시지가 주지 못하는 것들을 준다. 상대방의 말투, 어조, 말의 빠르기, 목소리의 높낮이 같은 반언어적인 소통은 똑같은 내용의 텍스트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함축한다. 문자메시지로 소통하는 것보다 어쩌면 더 진정성 있는 소통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통화가 싫다. 친구들과의 약속에서 길이 엇갈렸을 때도 전화 한 통이면 해결될 것을 굳이 문자 메시지를 보내 ‘지금 어디야?’ 하고 묻곤 했다.
연애 초에는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전화 통화를 하자는 남자친구의 말에도 집이 방음이 안 돼서, 나갈 상황이 아니어서,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어서 통화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통화를 피하고 메시지로 대화하자고, 몇 번을 고집했던 나를, 남자친구는 답답하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모든 전화 통화를 피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아니다. 직장에서 업무 용건으로 전화하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가능하고, 오히려 메신저보다 이 방법을 선호한다.
내가 싫어하는 건 가족, 친구, 지인과의 안부전화인 것 같다. 물론 나도 그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정말 궁금하고, 듣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 방법이 꼭 통화여야만 할까?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차갑고 정이 없게 느껴지더라도 내가 선호하는 건 문자메시지다.
멀티태스킹이 안 되다 보니 통화를 하면 무조건 전화기만 붙들고 있어야 하는 상황도 싫었고, 대화하다가 찾아오는 잠깐의 정적이 너무나도 싫었다.
그리고 말은 녹음하지 않으면 사라지지만 문자는 계속 남기에 메시지가 좋다.
처음엔 친구들에게 몇 번 전화가 오다가 그마저도 내가 먼저 하지 않으니 연초, 명절, 생일 특별한 날에만 가끔 문자를 주고받는다.
곁에 남은 가장 친한 친구들은 나와 같이 통화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나는 왜 통화가 두려웠을까. 일 외에 평소에 통화를 거의 안 하다 보니 어쩌다 걸려오는 가게의 전화, 가스 검침원의 전화에도 심장의 쿵 내려앉는다. 다시 전화를 걸기 전, 나는 그들이 먼저 문자를 보내주었으면 했다.
어쩌면 자주 만나지 못해 목소리라도 듣고 싶고, 목소리로 안부도 확인하고 싶었을 텐데. 그동안 나는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많은 상황들을 밀어냈다.
오늘은 에스테틱에 갔다가 나오는 길에 부재중 전화가 온 걸 확인했다. 모르는 번호라 순간 마음이 불편했다. 알고 보니 가게의 전화였고, 배송기사의 전화였다.
이런 불편함을 조금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남편에게도 저녁 사진과 함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연애 때 후회되었던 일 중 하나가 전화 통화를 많이 하지 못한 것인데,
어쩐지 미안하기도 하고 목소리도 듣고 싶어서 전화했다. 그땐 이상하게도 미안하다고 얼른 가겠다고 문자 아닌 전화로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남편은 핸드폰을 자주 보는 편은 아닌 것 같다. 신호가 한참 가다가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메시지가 나온다. 결국 통화는 못하고 집에 서둘러 들어가게 되었지만,
오늘 느낀 이 잠깐의 마음이 난 좋았다. 이제 나를 향해 찾아오는 타인의 따뜻함과 걱정을 더 이상 밀어내지만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