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 슬기로운 부부생활 노하우
임신할 때 겪은 일들은 오래간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 것 같다. 물론 나는 아직 임신중(이제 곧 32주 차)이지만, 임신 초기부터 시작해서 남편은 물론 주변에서 들은 말들은 뇌리에 콕 박혀 각인되어 있다. 회사 사람이나 친지에게 들은 무례한 말들은 기억의 저편으로 보내버리고, 이번엔 우리 부부 사이에서 있었던 훈훈한 에피소드들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상황 1.
나 : (거울을 보며) 임신해서 이제 계속 배가 나오고 몸이 막 변할 텐데 어떡하지?
남편 : 나는 이제부터 우리에게 일어날 그 어떠한 변화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어. 임신했는데 배가 나오는 건 당연한 거야. 그런 건 아무 걱정하지 마.
'어떠한 변화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이 어찌나 큰 안정감을 주던지.
임신 초기에 일찍이 이렇게 말해준 남편 덕에 나는 임신 후 몸의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조금 더 빨리 받아들이고 긍정할 수 있었다.
비단 임신 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출산 후에 아이가 더해진 일상은 또 얼마나 큰 변화일 것인가. 거기에 대해 내가 앞서서 큰 걱정을 하지 않게 된 것도 남편의 저 말 덕분이다.
상황 2.
나 : (긴 연휴, 집에서 낮잠 자고 일어남) 흑. 여보는 이렇게 열심히 작업하고 있는데, 나는 오늘 한 일이라곤 낮잠 잔 것밖에 없네.
남편 : 임산부에겐 잘 쉬고 잘 자는 게 최우선 임무지. 여보는 지금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너무 잘하고 있는 거야.
이 순간에 감동해서 진심으로 살짝 눈물 날 뻔했는데 티를 안 내려고 꾹 참았다.
내가 평소 낮잠을 자거나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걸 싫어한다는 걸 남편도 안다. 다소 비생산적인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죄책감을 갖지 않도록 해준다는 게 정말 고마웠다.
상황 3.
나 : (유튜브 홈트 영상 보며 낑낑거리면서 임산부 요가 따라 하는 중) 헥헥...
남편 : 뭐든 참 열심히 하는 모습이 귀여워. 주변의 다른 임신한 아내들은 전혀 안 움직이려 해서 걱정이라던데 여보는 너무 잘 하고 있어. 역시 '루틴' 하면 루이제를 따라갈 사람이 없어. 이런 점에서 진심으로 여보를 존경해.
이때 사실 엄청난 걸 하고 있던 것도 아니고 20분짜리 요가 영상을 따라 하고 있을 뿐이었는데, (맘카페에 보면 출산 직전까지 웨이트를 하고 하루에 1~2시간씩 운동을 하는 등 아주 비범한 예비맘들이 많다...) 이렇게 칭찬을 들으니 멋쩍기도 하면서 괜히 으쓱해진다.
별거 아니지만 칭찬을 들으니 하루에 정해놓은 운동량을 채우는 동기가 되고, 칭찬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한번 더 움직이게 된다.
상황 4.
나 : 점점 살이 너무 많이 찌는 것 같아 걱정이야...
남편 : 살 좀 찌면 어때? 임신했을 땐 살 좀 쪄도 티도 안나고 럭키비키잖아? 차라리 이 시기를 더 적극적으로 즐겨!
임신 중 회상할 만한 일들은 위에 열거한 에피소드 외에도 정말 많다. 실천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남편은 늘 말보다 행동으로 증명해왔기 때문이다.
내가 신경이 예민해져서 짜증을 내고 투정을 부려도 언제나 잘 받아주었고, 입덧이 심한 기간 동안 부엌일을 도맡아 해 주었으며, 손목이 약해진 뒤로는 청소기 돌리는 일은 남편이 거의 다 직접 한다. 체하거나 배뭉침 같은 증상을 겪을 땐 옆에서 마사지를 해주고 차분하게 해법을 찾아주었다(그야말로 T의 사랑법). 내가 우울할 땐 수영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자유수영을 같이 가주었고, 순도 100% 집돌이인 사람이 실외 데이트 장소를 찾아놓고 나를 밖으로 끌어내주었다.
엄선된 육아서적도 사서 같이 읽어보곤 했는데, 시중에 무분별하게 판매되는 애매한 육아도서가 아니라 정말 과학적으로 검증된 책을 어디서 알아오곤 한다. 밥 먹을 때면 태요미네 유튜브를 시청하며 양육 방식에 대해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아이를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 부모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대화하고 토론한다.
카시트, 유아차, 아기의자 등 큼직큼직한 육아용품 서치 및 구매는 당연히 물건 고르기를 좋아하는 남편 몫이다. 나는 성향상 물건 고르는 걸 귀찮아해서 어떤 브랜드가 있는지조차 잘 모르는데, 어느 순간 정신차리고 보니 신생아 디럭스 유아차는 물론이고 요요, 트립트랩까지 필수템은 이미 남편이 중고로 구비해두었거나 가족, 지인들이 필요한 물건을 물어올 때 적시에 이야기할 수 있도록 브랜드와 모델명까지 꿰고 있었다. (남자들이 차에 관심 갖는 것만큼 육아용품을 신중하게 골라주면 아주 큰 도움이 된다!)
아무튼 남편 덕분에 임신생활이 그나마 안온했던 것 같다. 사실 남편 자랑은 어디 나가서 하기도 힘들다... (사람들의 본성은 남의 집 행복한 얘기보다 불행한 얘기를 듣기를 좋아하므로) 그래서 까먹기 전에 브런치에 올려본다. 우리 부부가 함께라면 앞으로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문제 없을 것 같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