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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육아휴직은 처음이지?

잠시 '멈춤' 버튼을 누르다

by 루이제

임신 35주 차, 남의 이야기처럼만 들리던 육아휴직을 시작했다.

대다수는 부러워하고, 소수는 커리어 단절을 걱정한다.


부러워하는 사람들의 주요 반응 : "와,,, 이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야? 너무 부럽다."

걱정해 주는 사람들의 주요 반응 : "돌아가면 자리는 그대로 있는 거야?"


그렇다. 이제부터 출근을 안 해도 되고, 다행히 언제 회사에 돌아가도 내가 일할 책상은 있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게 2018년이니까, 그 이후로 이직을 위해 잠시 쉰 기간을 제외하면 햇수로만 8년 차다.

현 직장에서 정식으로 일을 시작한 건 2021년이므로 올해로 5년 차가 된다.

임신기간 동안 모성보호시간 등 각종 제도를 이용할 수 있었던 점, 휴직을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 커리어 단절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점 등은 공직에 종사하는 메리트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제도적 뒷받침을 떠나 한 개인으로서의 정서적 부분은 또 다른 부분이다. 잠시 직장이라는 조직에서 벗어나는 데에 대한 '공허함'이 나를 들이닥쳤다.


소속을 내려두고 이렇게 오래 쉬어본 적이 얼마만인가.


2027년 3월 초까지 휴직원을 써놓고 보니 2년이라는 시간이 내 앞에 덩그러니 놓였다. 물론 그전에라도 복직 시점은 얼마든지 당길 수 있다. 다만, 우리 집은 양가 부모님의 육아 도움을 받기가 어렵고 스타트업 회사에서 일하는 남편의 육아휴직도 요원한지라 가정보육과 어린이집 등하원은 거의 전적으로 내 몫이 될 것이다. 즉, 향후 육아 상황에서 어떠한 변수가 닥칠지 모른다. 그래서 어린이집을 최대한 늦게 보낸다는 가정 하에 최대 2년 정도의 휴직시간을 두었다.


만 13개월부터 직장 내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지만, 어린이집 결원 상황도 확인해야 하고 내가 아이 등하원을 위해 출퇴근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지 복귀 시 사무실 상황 및 조건도 따져봐야 한다. 현 상황에서 예측 가능한 범위를 벗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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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제 평일 아침에 일어나도 어딘가로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현실이 시작된다. 매일 아침 무거운 몸을 일으켜 회사에 가고, 일을 하고,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퇴근하던 일상과 이제 당분간 안녕이라니. 그 모든 것들을 소화해 내던 시간을 이제 온전히 나 혼자 누리게 된다.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설레기도 하고, 한편으론 살짝 걱정도 된다.


2년 동안의 일본 유학시절에 외로움, 무한한 시간과 싸우는 것이 가장 힘들었기 때문에 아직도 내 안에는 트라우마가 남아있다. 특히 아기를 낳기까지 아직 한 달가량 시간이 남아있는데, 이 시간을 온전히 나 혼자 보내야 한다는 것이 막연하게 두려웠다. 임출육 경험자들은 출산까지 남은 이 시간을 충분히 즐기라고 당부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그 뒤로 이렇게 조용하게 쉴 시간은 더 이상 없다며. 엄마가 되기 전 마지막 휴가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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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임신 32주 차부터 발목, 갈비뼈, 중둔근 통증 3종 세트로 갖은 고생을 하고 있던 터라 2월 초부터는 하루빨리 쉬고 싶긴 했었다. 마지막엔 사람들도 부지런히 만나러 다녀야 하고, 짐 정리도 하느라 몸에 더 무리가 갔다. 일단 그래서 2월까지는 무얼 하려고 하기보다 온전히 쉬면서 회복 주간으로 삼으려고 한다.


발목 힘줄염과 늑간근 염좌로 3주 정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다가, 지금은 엉덩이 바깥쪽 신경통이 생겨서 걷는 것조차 힘들다... 발목 안쪽이 아파서 바깥쪽 다리에만 체중을 실어 걷다 보니 중둔근 과부하로 인해 생긴 통증이다. 입덧 등 임신 초기에 힘듦이 집중되는 '초기파'가 있다면 나처럼 후기에 아픔이 몰려있는 '후기파'가 있다고 한다. 평소에도 관절, 인대가 좋지 않고 근육이 탄탄하지 않아 안 그래도 쉽게 다치는 체질인데, 임신 후기에 나온다는 '릴랙신 호르몬'으로 인해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실제로 나의 발목과 늑간근과 엉덩이가 다친 이유는 계단 오르기, 침대시트 교체, 걷기 등 아주 사소하고 어이없는 것들로 인해서였다. 아픈 곳은 신체에서 전부 오른쪽에 쏠려있다. 평소 골반이 틀어져있고 자세 등 전체적인 몸의 밸런스가 좋지 않다는 게 후기 때는 이렇게 약점으로 작용한다. 아기 낳고 나면 꼭 체계적인 PT나 필라테스로 근육을 키우고 몸의 균형을 맞춰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 들어서 고생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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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재는 육아휴직 이후의 일상을 공유해보고 싶어서 시작했다. 아이를 갖는다면 누구나 거쳐가는 통과의례지만, 막상 육아휴직 시기를 어떻게 보내는지에 대해서는 상세히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을 글자 그대로 정말 '쉼'(休)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지도 스스로 실험해보고 싶다.


무엇보다, 휴직 후의 일상을 무료하게 보내지 않기 위해 일상의 루틴을 만들고 글을 쓰고 싶었다. 아직 휴직계 종이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인 지금, 가장 따끈따끈한 상태로 잘 담아낼 수 있는 것부터 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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