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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자식, 세상 불공평한 관계

출산 직전 친정집에서의 요양

by 루이제

오늘은 출산 하루 전날이다.

제왕절개 수술 날짜를 잡아두고 하루하루 날짜를 세면서 어느새 두 자리 수가 한 자리 수가 되더니 이제 드디어 D-1.


2주 정도 남았을 때부터는 정말로 많이 힘들었다.

오른쪽 다리 고관절 통증으로 인해 정상적 보행을 못한 지 벌써 한 달째...

3월 초부터는 지팡이의 도움 없이는 아예 다리에 무게를 실어 걷지 못하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한 달 넘게 내가 좋아하는 외출도 산책도 못 하고 집에서 그렇게 시들어가고 있었다.


걸을 때는 고관절이 너무 아파서 제대로 걷지를 못하고, 1분만 의자에 앉아있어도 엉덩이가 미친 듯이 저렸다.

밤에 잘 때도 자세 한 번 바꿀 때마다 쇠꼬챙이로 찌르는 듯한 골반 통증에 잠이 홀딱 깰 정도였다.

걷지도, 앉지도, 편하게 눕지도 못하는 신세....

정형외과에 가도 모든 건 출산 후로 미뤄야 한다는 말뿐이었다.

그렇게 진단명도 모른 채로 증상 완화를 위한 도수치료만 수차례 받았다.

아이와 만날 날을 기다리며 기대감에 부풀어 보내야 할 시간을 그렇게 고통, 우울과 싸우던 막달.

혼자 나쁜 생각도 정말 많이 했다.


막달엔 1주에 1킬로씩 찌는 경우도 흔하다는데, 나는 오히려 힘들어서 계속 살이 빠졌다.

현재 아기 몸무게는 3.3kg인데 전체 몸무게는 임신 전보다 약 7kg 밖에 늘지 않은 상황.



절망의 늪에서도 구원의 손길은 있었다.

엄마아빠는 몇 주 동안 주말마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해서 집 냉장고에 넣고 가주었고, 평일에도 먹을거리를 사다 주었다.

막바지엔 내가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다 못해 친정집으로 나를 불렀다.

엄마 침대를 점령한 나 때문에 엄마는 거실에서 잠을 청하면서도 불편한 기색 하나 없었다.

아빠도 시그니처 요리인 오므라이스와 김치찌개를 만들어주고, 산부인과에도 함께 가주었다.


그렇게 수술 전 3박 4일을 엄마네서 먹고 자면서, 한 달 동안 호전이 없던 내 다리가 놀랍게도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



요즘 한참 빠져있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도 마침 금명이가 친정에 돌아가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나왔다.


금명이는 친정집에서 며칠 머물고 서울집으로 올라오기 전 식탁에 부모를 위한 니베아 크림, 시집 노트와 함께 짧은 메모를 올려놓고 나왔는데, 그때 나오는 내레이션에 또 뜬금없이 오열을 하고 말았다.


많이 받고 아주 작은 걸로도 퉁이 되는
세상 불공평한 사이가 우리였다.

부모가 내게 해주는 것을 나는 한없이 넙죽넙죽 받기만 했고, 그들은 나에게 아무리 많은 걸 주어도 부족하다고 느꼈다.



당근마켓에서 4,000원 주고 산 지팡이가 친정에 온 첫날에 똑하고 부러졌는데,

아빠는 다음날 새벽배송으로 바로 튼튼한 새 상품을 주문해서 세팅해 주었다. (내가 이제 며칠 안 남아서 괜찮다고, 새거 필요없다고 해도 아빠 고집은 못 꺾는다)


내가 아무것도 안 해도 밥 해주고, 빨래해주고, 안방도 거실도 내어주고, 물건도 갖다주고, 말 그대로 무엇이든 다 해주는 부모님 덕에 정말 꼼짝도 않고 회복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이게 바로 친정의 힘일까?



출산을 하루 앞두고 친정에 와서 느끼는 사랑을 오래도록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해 본다.

부모가 자식한테 주는 무한한 사랑에 나는 언제쯤 보답할 수 있을까.


내일이면 우리도 곧 한 아이의 부모가 될 텐데...

내가 부모가 되어 줄 사랑을 헤아리는 건 왜 이렇게 까마득하게만 느껴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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