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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꼬 그래 쌔빠지게 해샀노

경상의 말들

by 고강훈


새해 첫 책은 너로 정했다.


저녁에 동네 마실 가는 기분으로 현관문을 나선다. 운동을 해야지 하는 심정으로 무작정 걸어간다. 오늘따라 억수로 칼바람이 분다. 20분을 쭉 걷다가 익숙한 곳에 도착했다.


사실 운동은 핑계였다. 새해 첫날에도 진주문고를 들렀지만, 두 아이와 같이 간 터라 아쉽게 책은 구매 못 했다. 아이들은 책보다는 화려한 스티커 북과 덤으로 주는 장난감에 혹하여 아이들 챙기기에 바빴다.


혼자 오면 역시 천천히 서점을 둘러보며 책을 찾는 탐험의 시간을 즐긴다. 이런 시간에 잠시 머물다 보면 매장 직원이 마감 시간이라고 알려주거나 아내의 전화를 받고 서점 밖을 나서기도 한다.


“오데고? 안 오나?”

“쫌~ 이따가.”


새해 첫 책은

만다꼬 그래 쌔빠지게 해쌌노 「경상의 말들」이다.

제목이 눈에 들어오기도 했지만, 익숙한 말들이 눈에 띄었다. 경상도 사투리가 인용된 100개의 문장들. 자연스레 손이 가게 되고 책장을 넘기며 흐뭇한 표정을 짓게 된다. 이 책을 단디 들고 집까지 쌔빠지게 걸어간다.




할매예, 희한타예.

할매캉 내캉 이바구하고 있으모는

내가 오데 살고 있는지 알겠데예.

내가 갱상도 사람인 기 딱 표티가 나더라고예.

와, 글 속에는 할매 말을 고치삐까.

할매예, 할매 없으모는 인자 할매 말도 없어질건디.

우짜꼬예.

「경상의 말들」 권영란, p.12


익숙한 사투리들이 나오는 책이라 옛 생각과 함께 흐뭇한 표정을 짓게 된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동안 표준어를 거부하며 버티다 고향에 내려오니 개인적으로 너무 편하게 산다. 투박한 경상도 말투와 억양 때문에 동물원 원숭이 취급을 안 받아도 되고, 어디를 가든지 불필요한 해석 없이 내 말을 한 번에 알아듣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말끝을 올리거나 억양을 숨기는 노력은 해봤지만 역시 고치기 힘들었다. 게다가 혀끝과 구강 구조의 문제인지 모르겠으나 경상도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발음도 문제였다.


내가 제일 어려워하는 발음이 ‘ㅡ’와 ‘ㅓ’의 구분이다.


‘사천읍’을 ‘사천업’이라 해도 알아듣고 ‘와이퍼’를 바까야 되는데 ‘와이프’를 바꾼다고 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그리고 더운물이라 말하지 않더라도 ‘따신 물’을 먹거나 ‘뜨뜻한 물‘을 먹을 수 있었다. 사투리를 알아들은께네 억수로 좋다.



“경상도 사투리 찾기가 와 이리 어렵노.”


원고를 쓰는 내내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책방에 있는 소설, 시, 에세이는 대부분 훑었다. 경상도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을 법한 책들도 모두 꺼내 보았다. 책을 펼져 가장먼저 작가의 고향부터 확인 했다.


사투리를 찾기도 어려웠지만 찾더라도 풀어낼 이야기기 없다면 인용할 수도 없었다. 가능하면 다양한 작품을 소개하고 싶었기에 박경리, 이문열, 허수경······경상도 사투리를 무시로 썼던 작가의 작품에서 마냥 가져올 수도 없었다.


「경상의 말들」 조경국, p.216


KakaoTalk_20250107_070530955_01.jpg 경상의 말들

#지역의말들

#유유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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